시사

미국 최연소 연구소장이 딘 한국인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20-03-08 17:21
조회
112

미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세계 최고 연구소에서 최연소 연


구소장이 된 한국인


3개월이나 기다려 모셔가려던 자랑스러운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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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20. 3.3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미국은 비단 국방력만 강한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분야에서도

세계 최고로 불립니다.

학연, 지연, 혈연보다는 능력 위주로 평가하다보니 누구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전세계 모든 인종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런 미국에게 자존심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연구소가 있는데요, 바로 벨 연구소입니다.

이 연구소는 전화기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의 이름을 따 1925년 설립된 연구소입니다.

벨 연구소에는 미국 중앙연구소 뿐 아니라 인도, 한국, 아일랜드 등  8개 지역에 연구소를 두고

1만 명이 넘는 과학자와 26,00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는 초대형 연구기관입니다.

전기통신분야와 기초과학기술을 연구하는 민간기관으로 지금까지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실상부 전세계 최고의 연구소죠. 그런 연구소에서 지난 2005년 사상 최연소이자 사상 최초의

외국인을 연구소장직에 앉혔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45세. 바로, 김종훈입니다.

전세계 IT업계를 발칵 뒤집어버린 사건이었죠.


그의 가족은 그가 15살이던 1975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가난을 벗어나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그의 가족이 정착한 곳은

메릴랜드의 빈민가였습니다.

당시 적지않은 나이에 영어라는 장벽에 좌절하고 가난이라는 장벽에 하루 2시간 자는 생활을 하며

학비를 벌었습니다.  가난을 벗어나기위해 죽기살기로 공부한 결과 고등학교 졸업때는 전교 2등을

차지해 미국 명문인 존스홉킨스 전자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같은 학교를 거쳐 메릴랜드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는데 보통 4~6년이 소요되는 박사학위를 2년

만에 취득한 것은 아직까지 전설로 통한다고 하죠.

32살이던 1992년 그는 '유리시스템즈'라는 벤처회사를 차렸는데 회사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물급

이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윌리엄 페리'라는 인재를 영입합니다.

바로,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입니다.

그가 주목했던 분야는 통신기술 장비 사업이었는데 서로 다른 네트워크간  통신이 가능한 통신장비를

개발해 상용화시켰고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개발을 완료한 그 해에 세계 최고 통신장비 회사였던 '루슨트 테크놀로지'에 1조 3천억이라는 금액에

매각했고,  미국 400대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미국과 전세계 IT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놀라운 제의가 들어옵니다.


 미국의 자존심이자 세계 최고의 전자통신분야 연구소인 '벨 연구소'에서 소장직 제의를 받은 것이죠.

만약 그가 소장이 된다면 사상 최연소이자 최초의 외국인 소장이 탄생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국연구소에서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2005년 당시 벨 연구소는 과거의 영광에 매달려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해

 있었는데요. 김종훈이 설립한 '유리시스템즈'를 '루슨트 테크놀로지'에 매각했다고 위에서 잠시 말씀

드렸었는데 당시 벨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던 루슨트의 '헨리 샤키' 회장은 김종훈을 영입해 벨 연구소에

혁신의 바람을 주입하고 싶어했습니다.

역사상 그 소장직을 거절한 사람이 없었는데 김종훈은 3개월이나 거절했다고 하죠.

헨리 회장의 끈질긴 구애에 결국 소장직을 수락하고는 벨 연구소를 바꾸기 시작합니다.

그가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것은 연구소의 연구가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바꾸는 실용적인 기술과 접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술을 바로바로 시장에 투입할

수 있는 벤처팀을 만들었고 후퇴하던 연구소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명의 아시아인'에 선정되었죠.


사실 김종훈은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보셨을 이름입니다.

박근혜 정부 초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후보자였었습니다. 결국 중도하차하고 말았지만 당시 그의

결심은 강건했습니다.

미국은 평균 5년 동안 소득세 납부액이 1억 6천만원 이상이거나 순자산이 22억이상의 시민이

국적을 포기할 경우 국적포기세를 부과합니다. 그의 재산이 수천억이 넘었기때문에 그는 1,000억 이상의

국적포기세를 내야한다고 추정됐지만 얼마가 되든 다 내고 한국의 미래를 위해 일하고 싶어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청문회 준비과정에서 여러가지 의혹이 제기됐고 확인되지않은 소문까지 확산되면서

가족이 힘들어하는 모습에 결국 중도하차를 결심합니다. 이런 문화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하면서 다시는 한국에서 기업활동이나 정치활동에 대한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죠.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는 B선 실세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탄핵됐지만 김종훈의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사퇴는 너무 아쉬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과학분야만큼은 확실히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결국 한국을 위해 장관직을 수행하고 싶었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명언이 있어 남깁니다.


“오늘 내가 열심히 해서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낫게 살자.

오늘 1달러를 저축하면 내일 1달러 더 부자가 될 것이고, 오늘 단어 하나를 더 외우면 내일 가면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알게 될 것이고, 아무리 힘들어도 오늘 무언가를 하면 내일은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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