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cms)한경직목사 (3)_기독교와 예술

작성자
itmedia
작성일
2012-12-10 07:07
조회
75


기독교와 예술(시편 二十七-)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二十七?)



 



오늘은 기독교와 예술이라는 문제로 말씀하고자 합니다. 먼저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상식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면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여 연구하여 알려고 하는 이지적 방면(理智的 方面), 무엇을 뜻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려는 의지적 방면(意志的 方面)과 무엇을 느껴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정서적 방면(情緖的 方面)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지(), (), ()의 소유자인 바, 지력을 통하여 참()을 구하고 의()를 통하여 선()을 구하고 정()을 통하여 미()를 구합니다.



 



이와 같이 지, , 의의 삼자는 우리 인간 생활에 있어서 최고의 이상이며 최고의 가치인 진, , 미를 탐구하려 애쓰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인간 생활의 이상은 인격의 구성 요소인 진과 선관 미를 탐구하여 이 삼자가 완전히 조화되며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는 경지에 도달하여 인격을 완성하는데 있다고 할 것이며 이 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생활이 성경에 이른 바 거룩한 생활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이지가 진리를 자연계에 구할 때에 과학이란 부문이 발전되었고, 의지가 인간 생활에서 선을 구할 때에 도덕이란 부문이 나타나게 되었고, 정서가 아름다움을 구할 때 예술이란 부문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고로 우리 인간 생활에 풍성하려면 이 세 가지 방면이 다 풍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삼자는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기독교를 떠나서는 부패케 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전 인간 생활을 성화(聖化)하고 정화(淨化)하는 만큼 과학은 향상하고 윤리(倫理)는 성화(聖化)하며 예술은 정화(淨化)하는 것입니다. 만약 과학이 발달하여 기술과 지식이 향상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종교적 감화가 없이는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는 때가 있을 것이며, 인간 도덕에 있어서도 종교의 감화가 없이는 그것이 인권을 유린하며 인간을 구속할 수 있을 것이요, 미의 사상의 구체화인 예술도 종교적 감화 없이는 오히려 인류의 문화를 부패케 하며 인간을 타락케 하는 때가 비일비재(非一非再)일 것입니다.



 



예술은 미를 탐구하는 부문인 만큼 여러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으나 음향을 통하여 표현된 미의 사상의 구체화를 음악이라고 하며, 문자를 통하여 표현된 미의 사상의 구체화를 시() 또는 문학이라고 하고, 형태와 모양을 통하여 표현된 미의 사상의 구체화를 건축 혹은 조각이라 하고, 색채와 형태를 통하여 표현된 미의 사상의 구체화를 회화(繪畵)라고 합니다.



 



이 음악과 시와 문학과 건축과 조각과 회화 같은 예술적 작품이 없다고 하면, 우리 인간 사회는 그 얼마나 쓸쓸할 것입니까? 지금도 찬양대의 좋은 찬양이 있었거니와 만약 이것이 없고 찬송이 없다면 우리의 예배는 얼마나 건조무미한 예배가 될 것입니까? 음악가의 머리를 통하여 나오는 좋은 음악과 위대한 작품이 없다면, 만약에 도시를 건설할 때에 예술적 가치를 무시하고 단지 사람이 사용하는 데만 편리하게 짓는다든지, 가정에 있어서 방안에 한 폭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쓸쓸하고 단조한 생활이 되겠습니까?



 



요한 칼빈 선생은 말하기를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가련한 가운데 빠져 있는 인간을 위로하기 위하여 예술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예술은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좋은 음악과 시와 소설과 그림은 우리에게 무한한 위로를 줍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술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합니다. 위대한 음악을 들을 때, 위대한 문학을 읽을 때 우리는 마치 별천지(別天地)에 거하는 것 같은 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괴로울 때에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늘을 우려로 보시며 경건한 태도로 기도하시는 화폭(畵幅)을 볼 때, 혹은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는 화폭을 대할 때에 우리의 번 민은 어느덧 사라지고 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도회지에 가든지 하늘에 솟아 있는 예배당의 종각을 보게 되는데 그 종각은 모든 인간에게너희는 아래만 보지 말고 위를 쳐다 보라고 하늘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 같은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정화하고 성화 하는 위대하고 고상한 예술인 반면에, 저속하고 부패하고 야비한 예술도 있어서 우리의 사회나 가정에 악영향을 주는 것도 있습니다. 위대한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지만, 유행가나 수심가 같은 음탕한 노래는 우리의 마음을 속화시키고 부패하게 합니다. 좋은 소설이나 위대한 문학은 우리의 인격을 감화하고 고상하게 하지만, 소위에로문학, 연 문학(軟文學)은 우리의 생활을 속화하고 야화(野花), 음탕하게 합니다. 고상한 그림은 우리의 정신을 정화하지만, 나체화, 외화(猥畵) 등은 한없이 인심을 타락케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민족이건 국가이건 간에 예술과 막대한 관계를 가지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어떤 개인이나 청년이 늘 부르는 노래를 보아서 그 청년의 인격을 점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학생이 좋아하는 문학을 통하여 그 학생의 장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고상한 작품을 노래하며 고상한 문학을 즐기는 자는 그 인격 수준이 향상하며 고상하여지지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그의 노래가 속된 것이며 읽는 작품이 저속한 것이면 그의 인격은 점점 내려가서 마침내는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 민족이나 한 사회나 한 시대에 있어서도 거기서 읽혀지는 예술품을 보아서 그 장래를 알 수 있으니, 건전하고 고상한 예술일수록 민족과 사회를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사회와 국가에 위대하고 고귀한 창작적 작품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 위대한 예술적 창작은 어디서 옵니까? 위대한 음악과 문학과 건축과 조각과 회화와 연극 등은 어디서 옵니까? 물론 위대한 예술적 천재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대한 예술적 천재란 위대한 인격적 심령의 소유자이어야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결코 가지 인격 이상의 작품을 창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심령이 아름다워야 참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것이며, 타락한 인간은 그 죄를 회개하고 중생 하여야 참 위대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작품의 배후에는 위대한 심령과 인격이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잘 아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보세요, 어거스틴의참회록(懺悔錄)을 보세요, 프랜시스의태양의 노래, 번연의천로역정(天路歷程), 차알즈 웨스레의 명작 찬송, 토마스 아 켐피스의그리스도를 본받아, 밀톤의실락원(失樂園), 다윗의 시편 二十三, 사라 아담스의내 주를 가까이등 위대한 예술 작품은 그들의 위대한 심령을 통하여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위대한 예술가가 되려면 먼저 죄를 씻고 위대한 심령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위대한 예술적 창작은 하나님을 아는 데서 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였지만, 예술적 견지에서 보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예술의 근본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하나님은 최고의 예술가이시며 창작가이신 까닭입니다.



 



태조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이 우주와 같은 최대의 작품, 최대의 걸작은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물론 오늘 우리가 보는 이 우주나 자연을 신학적 견지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본래 지으신 것과는 죄로 말미암아 달라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예술적 작품 아닌 것이 없습니다. 신비하고 위대한 우주일 뿐 아니라 얼마나 아름다운 우주입니까? 아침 동천(東天)의 서광(曙光)이 아름다운가 하면 저녁 서산낙조(西山落照)도 못지 않게 아름답습니다. 명랑한 가을 달밤이 아름다운가 하면 달 없는 밤의 수많은 별들도 비길 수 없이 신비합니다. 금강산에 천 기봉(奇峰)이 있는가 하면 작으나마 아담하고 신기한 평양의 모란봉과 능라도가 있습니다. 천하를 삼킬 듯한 태평양에 파도 고리가 있는가 숲 속으로 숨어 나오는 맑은 시내의 속삭임도 있고, 문자 그대로 사자의 사자후(獅子吼)가 있는가 하면 여름 아침 산곡(山谷)을 덮는 매미의 서늘한 노래, 황혼을 노래하는 저녁 벌레들의 음악과 반주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나뭇잎 하나 하나, 꽃송이 하나 하나, 새 한 마리 한 마리, 어린아이들의 눈동자 하나 하나, 이 모든 것 어느 하나가 위대한 작품 아닌 것이 없습니다. 여기 조각이 있고 건축이 있고 시가 있고 노래가 있고 그림이 있습니다. 이런 최고 예술가이시오 창작가이신 하나님을 모르는 영혼이 어떻게 위대한 작품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다 하나님께 예술을 배워야 합니다. 심령을 밝혀 하나님께 배워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위대한 예술적 창작은 예술의 이상 세계 즉 예술의 본향은 하늘 나라임을 아는데서 옵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 세계는 죄로 말미암아 타락되어 저주받은 세계입니다. 그러나 장차 올 신천신지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천국은 예술의 극치의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보면 성곽의 기초 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 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 째는 청옥이요 열 둘째는 자정이라. 그 열두 문은 두 진주니 문마다 각각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二十一?十九-二十一)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건축입니까?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여러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雷聲)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저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十九?-)라고 하였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입니까? 이는 참으로 모든 예술의 최고 이상입니다. 이와 같이 위대한 예술 작품은 예술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을 알며 죄 없는 신천신지(新天新地)의 세계를 예술의 최고 이상으로 아는 위대한 심령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와 예술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 교회는 예술의 어머니입니다. 기독교는 예술을 육성하였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초대 교회의 작품으로서 신약성서를 들 수 있으니 이는 문학적 견지에서 볼 때 참으로 아름다운 예술적 작품이 아니라 할 자가 없습니다. 물론 당시 예술이 우상 숭배와 같은 부도덕한 부패한 예술로 떨어졌기 때문에 초대 교회는 예술을 배척하였지만, 그러나 세기 이후부터는 교회에서 예술을 육성하여 기독교 음악, 건축, 조각, 회화 등의 많은 발전을 보게 되어 중고시대에 이르러서는 기독교를 떠나서는 예술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문예부흥 이후 근대에 이르러 예술이 교회를 떠나 독립한 감이 있으나 실상은 모든 위대한 예술가와 작품은 기독교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영국인에게 제일 위대한 영문학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세요. 그네들은 서슴지 않고 흠정역(King James Version) 영어 성경과 세익스피어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만약 독일인에게 물어 본다면 루터의 성경과파우스트라 할 것입니다. 그림으로 말하면 레오날드 다 빈치, 라파엘, 산리의 성화 외에 더 위대한 것이 어디 있으며, 조각이면 미켈란젤로의 작품보다 더 위대한 것이 어디 있으며, 사라고 하면 밀톤의실락원, 단테의신곡보다 더 위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교회는 예술을 창조하고 육성하고 보존하여 왔고 또 앞으로도 교회는 모든 고상한 예술의 어머니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생 대한과 예술과의 관계를 말하려 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과학 대한과 고상한 도덕 대한을 건설할뿐더러 고상한 예술 대한을 건설하여야 하겠습니다. 고상한 예술이 있어야 전전한 국가와 살 만한 사회가 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자 그대로 삼천리 금수강산, 예술적 강토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를 우리의 창작적 예술로 수를 놓아 더욱 미화하여야 하겠습니다. 대한 사람은 실라, 구구려 이래 예술적 천재가 많이 났던 것입니다. 한때 이조 시대의 문학 정치로 피폐되었으나, 이제 그 천재를 발휘할 기회는 우리 앞에 열렸습니다. 우리 젊은 청년들과 학도들은 과학 대한과 도덕 대한을 만드는 동시에 위대한 예술을 창작하여 이 대한 사회 거리거리에, 방방곡곡에 아름다운 문학과 건축과 조각과 그림으로 가득 채워서 우리 모든 동포가 행복 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예술 대한을 건설할 큰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 하려면 우리는 먼저 위대한 인격과 고상한 신앙을 가지는 심령이 되어야겠고 최고의 예술가이신 하나님을 알아야겠고 미의 최고 전형인 천국을 알아야겠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예술의 어머니가 되어 모든 기독교 예술을 창작할뿐더러 일반 예술을 성화 하는 모체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집도 아름답게 짓고 거리도 아름답게 만들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우리 방을 단장하고 우리의 노래를 우리의 곡()으로 불려야겠습니다. 우리의 예배당도 건축을 통하여 예배의 정신이 나타나게 지어야 하겠고 우리가 감화를 받아 성시(聖詩)를 쓰고 작곡하여 불려야 하겠습니다.



 



이상의 모든 것은 이 앞으로 하려니와 시작은 어디서부터 할 것입니까? 우리의 심령에서부터 할 것입니다.



 



옛 사람은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새 사람이 우리 마음속에 창작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이야말로 새 사람을 창조하는 최고의 예술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창조되어야겠고 우리는 우리의 심령을 먼저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 예술가올시다.



 



자연계의 아름다운 것 중에 제일 아름다운 것은 칠색이 영롱한 무지개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과학적으로 볼 때 물방울이 태양 광선에 비취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태양과 같은 주님의 빛을 우리의 마음에 받으면 무지개같이 아름다울 수 있을 것입니다.



(1946년9월29?베다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