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네가 어디 있느냐?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18-12-08 18:07
조회
268




[오늘의 설교]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장 6~21절









[오늘의 설교] 네가 어디 있느냐 기사의 사진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아담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기 위해 질문합니다.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에 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또 묻지도 않고 살다가 죽어갑니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보면 세일즈맨의 아내가 죽은 남편의 무덤 앞에 묘비를 세웁니다. 그 묘비명에는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살다가 죽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전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질문은 또한 인간의 죄의 원인을 돌아보게 합니다. 인간은 교만, 낮은 존재감, 소유로 나를 치장하려고 할 때 죄를 범합니다. 그 결과 두려움이 찾아오고 하나님 앞에 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기 정체감이 없으면 많은 유혹과 시험에 빠져 듭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 내가 가진 것, 남들이 나에 대해 내리는 평판과 칭찬을 내세워 나를 규정하려고 합니다. 결국 우리는 이런 것들에 내 자신을 치장하느라고 세상에서 분주하게 삽니다.


예수님도 40일 금식하신 후에 사탄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물질 명예 권력 외부적인 것에 관해 시험합니다. 예수님은 남들의 의견, 나의 소유물, 하는 일을 통해 입증하려는 것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이 들려주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라는 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마침내 하나님 구원의 역사를 이룹니다.


죄를 짓는 것은 교만과 낮은 자존감에서 발생합니다. 존재에서 소유로 생각이 바뀌면 죄를 짓게 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네 인생은 네 것이다. 네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다. 너도 잘만 하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우리 속에 악한 생각을 날마다 집요하게 주입합니다. 성도는 늘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예배하는 대상, 진정 하나님만을 예배하는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것, 먹을 수 있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 등 그런 우상들에 예배하는가.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세상의 것으로 아무리 치장을 해도 우리의 존재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질문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어디 있느냐” 질문을 받았을 때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죄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죄에 따른 현상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서 여기 숨었습니다.” 죄에 대해서 핑계를 댑니다. “하나님이 저와 함께하도록 주신 그 여자가 줘서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잘 될 때는 자기 공로와 노력의 대가이고 안 될 때는 하나님 책임이고 누구 탓이라고 돌리는 것입니다. 아담은 숨어버립니다. 잘못도 문제이지만 잘못을 숨기는 것은 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용서할 자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나아가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모두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용서하시고 품으십니다.


오늘도 주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 음성 앞에 하나님 자녀 됨의 응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혹여나 우리의 죄악과 어리석음이 있다할지라도 그 용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회개하며 온전한 사랑의 관계 회복을 이루시는 복의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위희강 목사(익산 벧엘감리교회)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