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주선애 교수 간증(35)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19-07-26 15:56
조회
134



주선애 (35)          황장엽 별세 소식에 ‘하나님, 그 영혼 받아주세요’





‘한번도 공개적으로 고백하지 않았지만


하나님 앞 기도하기 좋아한 사람이니 그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왼쪽)가 2009년쯤 황장엽 선생(가운데)과 수잔 솔티 북한자유연합 대표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2010년 10월 9일 토요일 오전 8시 30분. 전과 다름없이 황장엽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은 휴대폰이 생긴 뒤부터 6년간 빠짐없이 아침이면 같은 시간에 내게 전화를 거셨다. 그날도 다른 말씀 없이 “건강하시우?”하는 물음을 건넸다. 나도 다른 얘길 꺼내진 않고 “선생님도 건강하시지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포털사이트에서 영상이 노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이튿날 아침. 그날은 온누리교회 창립 25주년 기념예배를 위해 상암월드컵경기장에 모이는 날이었다. 축사 순서를 맡았던 터라 마음이 좀 분주했다. 시계를 보니 8시40분이었다. ‘왜 선생님 연락이 없지?’ 황 선생님은 6년 동안 하루도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혹시 조찬 강연을 가면 그 전날 연락을 주셨다. 나도 피치 못할 모임이 있어 연락받지 못하면 그 전날 말씀드리곤 했다. 때로 내가 잊어버리고 그 전날 알리지 못한 경우엔 아침 식사 모임 중 전화를 받으러 방 밖으로 나와 전화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전화가 없었다. 몇 번이나 전화했는데도 받지 않았다. 불안했지만 도리가 없어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예배가 시작되고 기도가 끝났을 때 한 자매가 곁에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황장엽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방송에 나왔습니다.”

“정말?”하며 되묻고는 내 몸이 벌벌 떨리는 걸 느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맞은편 강단에 앉아 있던 하용조 목사님에게 소식을 전했다. 목사님은 예배 도중 황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수만명에게 알렸다. 나는 순서자 자리에 앉아 마음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그 영혼을 받아주세요.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전도하며 봉사한다고 했지만 한번도 주님을 모시기로 공개적으로 고백하거나 세례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좋아하고 혼자 신앙을 간직하고 살아온 사람을 하나님은 아시오니 그를 불쌍히 여기소서.’

간절히 기도했다. 사람들이 물었다.

“황 선생님이 구원을 받았을까요?”

“나는 모릅니다. 하나님이 아시지요.”

그를 전도하기 위해 나 이상 애쓰던 수잔 솔티 북한자유연합 대표는 장례식장에서 내게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고 그가 천국에 갔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번은 솔티 대표가 황 선생님을 위해 긴 편지를 영어와 한국어로 써서 보내 왔다. 평생 이렇게 마음과 정성을 다해 편지를 써본 일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편지엔 황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이야기와 꼭 한 가지 부탁이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주체사상을 내려놓으시고 예수를 믿으세요.’ 황 선생님은 편지를 받고 내게 건네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주 선생하고 똑같군.”

솔티 대표는 편지로 약속한 날에 한국에 와서 황 선생님을 만나면서 또다시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하도록 권했다. 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결국 침묵하시더니 “주 선생한테 맡기고 나가시오”하는 게 아닌가. 솔티 대표의 그 큰 눈이 눈물로 빨개졌고 곧바로 방을 나갔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발걸음을 돌리며 기도했다. ‘하나님, 강압적으로 할 수 없는 전도, 무능한 내게 맡기신 뜻이 무엇인지요. 저의 연약함과 미련함을 용서하시고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가 그토록 원하던 통일을 주시옵소서. 영생을 허락하시옵소서.’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기도는 끊어지지 않았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