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담

"목사님, 배 고파요"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20-08-21 16:04
조회
114

“목사님 배고파요”

엄상익(변호사) 

                                                                                                                                            

 
서울역 앞의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가면 노숙자들이 우글거리는 삼층 건물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터미널 같은 분위기다. 벽에 대형 텔레비전이 걸려있고 그 앞에 플라스틱 의자들이 줄지어 있다.

노숙자들 오십 명 가량이 그 앞에서 말도 없이 가만히 있다. 대부분 노인들이다. 시큼한 냄새가 밴 답답한 공기가 꽉 차 있다.

이층은 그들에게 공짜 밥을 주는 식당이고 삼층은 이층침대가 군대 막사같이 줄지어 있다.

비 오고 눈 오는 날 그곳에 와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가는 것 같았다. 
  
 젊은 변호사를 데리고 몇 번 그곳에 법률상담 봉사를 간 적이 있었다.

젊은 변호사는 그곳에 밴 노숙자의 냄새를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괴로워했다.

그곳을 지원하는 어떤 여성은 똥 냄새가 나서 그 장소는 가기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곳 일층의 노숙자들이 있는 공간 사이에 짐승을 이동시킬 때 사용하는 작은 철창의 우리가 있고 그 안에 노숙자 비슷한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가 앉아 있다. 그 건물을 관리하고 노숙자들을 돌보는 오십대 목사다.
  
 그를 여러 번 봤다. 항상 명랑하고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같이 기쁨에 찬 모습이었다.

폭력을 쓰는 노숙자에게 얻어맞아 코뼈가 부러진 적이 있기 때문에 짐승우리 같이 만들어놓고 그 안에 앉아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말 낮은 자세로 임하는 성자(聖者)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냥 좋고 재미있어서 그 일을 한다고 했다. 코미디언 같이 폭소를 터뜨리면서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내게 말해주기도 한다.

하나님은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그의 코를 막아버리신 것 같다. 그리고 그가 항상 기뻐하도록 그의 뇌에서 화학물질이 분비되게

하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전쟁이 일어난 시리아의 난민 아이들을 돌보는 목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난민촌으로도 이따금씩 총알이 날아오고 폭탄이 터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 목사는 순교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죽는 게 두렵지 않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아직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죽는 순간 죽을 용기와 기쁨을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두레 수도원을 하는 김진홍 목사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우리가 극도로 가난하던 시절 그는 신학대학을 나오고 바로 빈민들이

모여 살던 청계천으로 가서 빈민교회를 시작했다고 얘기했다. 이상은 좋았어도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그는 도저히 그곳에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그곳을 탈출하려고 마음먹었다. 마지막으로 판자촌을 걸을 때였다.

한 집의 방 앞에 아이들의 신이 헝클어진 채 놓여 있었다. 방문이 반쯤 열려져 있었다. 그가 무심히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대낮인데도 아이 세 명이 누워있었다. 열세 살짜리 맏이가 그를 보면서 힘없는 소리로 “목사님 배고파요”라고 했다.

막내인 세 살짜리도 그를 보자 “배고파”라고 했다. 
  
 아이들 아버지는 폭력사건으로 경찰에 잡혀하고 길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엄마는 나가서 사흘째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사흘을 굶고 힘이 빠져 누워있었던 것이다. 그는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밀가루국수를 사다가

아이들을 먹였다. 그는 그 순간 세 살짜리 꼬마의 얼굴에서 예수님을 보았다고 했다. 빈민들과 평생을 함께 하게 된 동기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에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면 예수님에게 진짜 나타나신 건지 자기가 환상을 본 건지 물어보겠다고 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의미하는 십자가에 오르기 전에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내가 이 잔을 마시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겉으로 보이는 예수의 마지막은 가장 처참한 죽음이었다. 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천 년 동안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겼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의 터널 저쪽에 있는 밝은 빛을 본 것 같다. 하나님의 영(靈)이 내린 사람들에게는 그 잔을 마시는 게 더 이상 고통이 아닌가 보다. 그들 영혼의 깊은 곳에서 세상의 쾌락과 비교할 수 없는 환희가 흘러나오는 같아 보였다.

보통사람인 나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영역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