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보릿고개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20-06-15 10:46
조회
92

보릿 고개
 

보리 고개 조선(朝鮮)영조 35년 왕후(王侯)가 세상(世上)을 뜬지 3년이 되어 새로 왕후(王侯)를 뽑고자 하였다.


온 나라에서 맵시있고 총명하고 지혜로운 처녀 20명이 뽑혀 간택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이 중에 서울 남산골 김한구의 열다섯살 난 딸도 있었다.


드디어 간택시험이 시작 되었다. 자리에 앉으라는 임금의 분부에 따라 처녀들은 자기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방석을 찾아 앉았다.


그런데 김씨 처녀만은 방석을 살짝 밀어놓고 그 옆에 살포시 앉는 것이었다. 임금이 하도 이상하여,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식이 어찌 가친 존함이 씌여 있는 방석을 깔고 앉을 수 있으오리까라고 대답을 했다.


임금이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깊은 것은 무엇인가?


동해바다 이옵니다. 서해바다 이옵니다. 남해바다 이옵니다.하는데... 김씨 처녀만은 사람의 마음 속이 제일 깊은 줄로 아옵니다.


어찌하여 그러는고 -?


녜, 아무리 바다가 깊다 해도 그 깊이를 잴 수가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깊어 그 깊이를 잴 수가 없사옵니다.


이어 다른 문제를 또 내었는데-,


이 세상에서 무슨꽃이 제일 좋은고 -?


녜, 복사 꽃이옵니다. 모란 꽃이옵니다. 양귀비 꽃이옵니다.


그런데 또 김씨 처녀만은 녜- 목화 꽃이 제일 좋은줄로 아뢰옵니다. 그건 어이하여 그런 것인고 -? 다른 꽃들은 잠깐 피었을 때는 보기가 좋사오나, 목화꽃은 나중에 솜과 천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니 그 어찌 제일좋은 꽃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이어서 세번 째 질문을 하였다.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는 무슨 고개인고


-? 묘향산 고개지요. 한라산 고개이옵니다. 우리 조선에서 백두산 고개가 제일 높지요.


이번에도 김씨 처녀만은 또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보리고개가 제일 높은 고개이옵니다.


보리고개는 산의 고개도 아닌데 어이하여 제일 높다 하는고 -?


농사 짓는 농부들은 보리 이삭이 여물기도 전에 묵은 해 식량이 다 떨어지는 때가 살기에 가장 어려운 때입니다.


그래서 보리고개는 세상에서 가장 넘기 어려운 고개라고 할 수 있지요.


이에 임금은 매우 감탄하였다.이리하여 김씨 처녀는 그날 간택시험에서 장원으로 뽑혀 15세 나이에 왕후(王侯)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정순왕후이다.


이렇게 하여 "보리고개가 제일 높다"라는 속담이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힘 내라며 담아주시던 고봉밥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자식을 대하고 부모님을 대하고 이웃을 대한다면-, 모두가 좋은 부모요, 좋은 자식이요, 좋은 이웃일텐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구름도 흘러가고 강물도 흘러가고 바람도 흘러갑니다. 생각도 흘러가고, 마음도 흘러가고, 시간도 흘러갑니다.


좋은 하루도 나쁜 하루도 흘러가니 얼마나 다행인가 -! 흐르지 않고 멈춰만 있다면 물처럼 삶도 썩고 말텐데 이렇게 흘러가니 얼마나 아름다운가요.아픈일도 힘든일도 슬픈일도 흘러가니 얼마나 감사(感謝)하며, 세월(歲月)이 흐르는건 아쉽지만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으니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래요 어차피 지난 것은 잊혀지고 지워지고 멀어져 갑니다.


그걸 역사라 하고 인생이라 하고 세월이라 하고 회자정리(會者定離) 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쩌지요 해질녘 산등성이에 서서 노을이 너무 고와 낙조인 줄 몰랐습니다. 이제 조금은 역사가 뭔지 인생이 뭔지 알 만하니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벗들을 사랑해 주세요 언젠가 우리는 보고 싶어도 못 보게 됩니다. 그러고 어느 날 모두가 후회(後悔) 한답니다. 왜 좀더 벗들을 사랑하지 못했냐고요. 좀 더 세심하게 보리고개를 돌아보며 벗들에게 사랑이 가득한 특별한 날들을 만들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