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말틴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 요약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19-01-03 22:51
조회
64
 

과목명 : 기독교사상사


교수명 : 허명섭 님


발제일 : 2005년 5월 3일                            


 M. DivⅠ5차 2002307086 최성민


           


                     『「말틴 루터의 종교 개혁 3大 논문」 내용요약』

   I . 서론

  이 책은 1520년에 발표된 루터의 저술물들 가운데서 「독일 크리스찬 귀족에게 보내는 글」, 「교회의 바벨론 감금」, 「크리스찬의 자유」 의 세 가지 논문을 한 데 묶은 것이다.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에 제시한 ‘95개조 논제’ 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개혁의 불길을 당긴 이래로 1520년에는 종교개혁운동이 본 궤도에 올라, 교황 레오 제 10세가 교서를 내리는 등 기성 로마 카톨릭교회와의 대립이 현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개혁자 루터는 그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하고, 그 신앙의 내용을 명백하게 밝힐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때에 나오게 된 저술물들 가운데 그 해 8월, 10월, 11월에 각각 발표된 이 세 논문은 특별히 빛나는, 종교개혁의 위대한 기념탑이다. 여기에 취급된 내용들은 사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로마 카톨릭교회뿐만 아니라 개신교 내에 있어서 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즉 개인의 윤리적 책임, 하나님과 인간의 능력에의 의존문제, 개개 인간의 자유에 관한 등이 그러하다.1)


「독일 크리스찬 귀족에게 보내는 글」(To the Christian Nobility of the German Nation)에서 루터는 이 논문에서 먼저 교회의 3가지 담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첫째는 교회가 지닌 영적인 권한으로 인해서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특권, 둘째는 교황의 성경해석권으로서 어느 누구도 성경을 통해서 교황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한 특권, 셋째는 회의 소집권을 오로지 교황에게만 국한시킴으로서 어느 누구도 회의로서 교황을 비판하지 못하게 한 특권. 이상의 3가지 담이 지금까지 로마교회를 세속화 시켜 왔으며, 교회를 지켜주는 특권이었는데 이제는 교회가 부패하고 썩었기 때문에 평신도를 통해서 교회가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종교개혁의 대원리 가운데 하나인 “만인제사직” 이론을 주창하였다. 루터는 사제의 중재라는 중세의 대원칙을 무너뜨렸다. 이상과 같은 루터의 만인제사직 이론은 중세인들을 사제의 공포와 전횡으로부터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신앙의 자유와 의미를 되찾게 해 주었다.


 


  「교회의 바벨론 감금」(Babylonian Captivity of the Church)은 루터가 「독일 크리스찬 귀족에게 보내는 글」을 발표한 2개월 후에 나온 글이다. 이 논문은 당시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성례관을 신학적으로 조리 있게 설명하고 반박한 글이다. “바벨론 감금”이란 말은 성례전의 왜곡된 가르침을 일례로 통칭하는 말이다. 곧,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움에 패하여 오랫동안 바벨론이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 고난의 생활을 한 것처럼 그리스도 교회의 성례전이 중세기 로마 교회에 의하여 “포로”가 되었던 현실을 비유해서 붙인 표현이다.


 


  「크리스찬의 자유」(The Freedom of a Christian)는 기독자는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 절대 자유인이다. 어떠한 잘못을 범했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는다. 그리스도안에서 인간화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모든 이에게 속한 가장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필자는 세 가지 논문들을 요약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본인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Ⅱ. 내용요약


 

1. 독일 크리스찬 귀족에게 보내는 글(To the Christian Nobility of the German Nation).


 

  본서는 루터가 1520년에 기록한 논문이다. 루터는 이 논문을 1520년 6월 중순부터 쓰기 시작하여 그해 7월에 완성하여 8월에 출판하였다. 이 논문은 두 주간도 못되어서 4000부의 책이 매진되었고 라이프찌히에서 재판까지 나온 관심거리의 책이었다. 불타는 확신과 유창한 독일어로 쓰여진 이 책은 급속히 독일 전역에 유포되었다. 이것은 루터가 로마와의 분리가 이미 불가피하다는 것을 확신한 후에 나온 최초의 출판물이며2) 루터는 이 논문에서 개혁운동의 참 뜻과 목적을 연방군주들에게 제시하였다.3) 루터가 이 책을 기록한 것은 그리스도계를 개혁시킬 필요성을 느낀 나머지, 개선해야 할 여러 가지 점을 들어 그 당시 독일의 크리스찬 귀족에게 보낸, 하나의 뜻있는 권면과 충고의 글이라고 볼 수 있다.(p.17)


 


  본 논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기본적인 문제를 논하는 부분과 실제 문제를 취급하는 부분이다. 그 첫 부분은 천년 가까이 서방세계의 사회, 경제, 정치, 법조, 종교계의 기반을 이루고 있었던 문제들을 이른바 “로마의 세 가지 담”에 비유하면서 신학적으로 논박한 것이다.(17)


 


  첫째 담은 세속적 계급 위에 있는 영적 계급의 담인데 이러한 계급은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 루터의 주장이다.(29) 루터는 모든 크리스찬들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계급”에 속하는 것이며 그들 가운데는 직무상의 차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제는 그저 하나의 관리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크리스찬은 모두 세례를 통하여 사제로서 성별을 받는다는 것이다. 루터는 세속적 계급에 대한 영적 계급의 우위성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모든 크리스찬은 다 사제라는 “만인 제사장직”를 선언한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첫째 담은 영적 계급이 세속적 계급 위에 있다는 주장 곧, 교회의 권세가 세속권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인데 이에 대하여 루터는 이 계급의 구분 자체를 부정하고 만인제사장설을 내세워서 세속 통치자들의 종교적 기능과 권한을 높이 주장했다. 이것은 모든 기독교인들 사이에는 직무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고 지위나 신분의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루터는 세속 군주들도 교황과 똑같은 신분을 가지고 있으므로 세속 군주들이 하루 속히 교황의 영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교황이 교회의 개혁을 거절하는 경우에는 세속 군주들이 교회가 성서의 교훈에 따라 본래의 위치로 복귀하여 자유를 회복하려는 일에 마땅히 원조와 보호를 게을리 하여서는 안된다고 하여 세속 군주들이 교회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호소하고 있다.


  둘째 담은 성서 해석자인 교황과 교황 무오설4) 즉 교황만이 성서를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38) 이것에 대하여 루터는 되지 못한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교황의 무오설이 사실이라면 성서는 어디에 필요하고 무엇에 유용하겠는가? 우리는 성서를 불태워 버리고 성령을 소유하고 있는 로마의 불학 무식한 수령들로 만족하자”(39)고 비꼬아서 말한다. 그는 고린도전서 14장과 요한복음 6장을 근거로 하여 교황의 무오설을 부정하면서 성서 해석이나 그 해석의 확인이 홀로 교황에게만 속한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조작된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다 사제들이고 다 한 신앙과 한 복음과 한 성례를 가지고 있다면, 왜 신앙 문제에 관하여 바르고 그른 것을 시험하고 판단할 권능을 가져서는 안되는가? 그러므로 신앙의 대의를 지지하고 이것을 이해하고 변호하며 모든 오류를 책망하는 것이 모든 크리스찬에게 마땅한 일이다.”(41) 이상과 같이 루터는 만인제사장을 근거로 논박했다. 즉 교황은 스스로 유일한 권위자라고 생각하며, 교황은 악인이거나 선인이거나 간에 신앙문제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교황(敎皇) 무오(無誤)의 거짓 주장을 하여 우리를 납득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황은 이 문제에 대하여 성서적으로 한마디도 증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유들로 인하여 교회에는 이단적이고, 부자연스럽기까지 한 규정들과 교회법이 교회에 들어왔다. 이 문제에 대하여 루터는 성서적인 근거(고린도전서 14:30)를 제시하면서 모든 크리스찬은 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요한복음 6:45)고 하였다. 즉 성서 해석이나 그 해석의 확인이 홀로 교황에게만 속한다고 하는 것이 전혀 조작적인 이야기이며 그들은 여기에 대하여 한 글자도 증언하지 못한다고 비판을 가하였다.


  셋째 담은 교황과 공의회의 담이다.(42) 즉 공의회를 소집하거나 결의를 확인하는 것이 홀로 교황에게만 속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루터는 아무런 성서적인 근거가 없이 자신들의 법령에만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교황과 공의회 즉, 교황만이 종교회의를 소집하거나 결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이것에 대해서 루터는 이것은 전혀 성서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회의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니케아 종교회의5)는 로마의 주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콘스탄틴 황제에 의하여 소집되고 확인된 사실을 근거로 하여 강력하게 반박한다. 또한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필요성이 있고 또 교황이 그리스도교계에 거리낌이 될 경우에는 소집할 수 있는 처음 사람이 모든 몸의 한 성실한 지체로서 참으로 자유로운 공의회를 성립시키기 위하여 그 일을 행하여야 한다. 이 일은 세속적인 당국자처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43)


   루터는 이 논문의 첫째 부분에서 직업적인 차이가 있기는 하나 신자간의 근본적인 차이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당시 교회의 세 가지 담을 파괴한 것이다.


  둘째 부분에서 루터는 공의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과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당면한 실질적인 문제들을 27개 항목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취급하였다. 교회 내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분야 등 다방면에 걸쳐서 문제의 핵심들을 다루어 개혁을 제안한 바 있다. 루터는 공의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여러 가지 문제점들과 개선되어야 할 당면한 실제적인 문제들을 취급한다. 이는 그의 개혁이 종교생활 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전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곧 루터가 성속을 분리하지 않고 일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루터는 먼저 교황의 교만한 마음에 대하여 질타를 가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마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하여 날마다 울고 기도하는 일과 모든 겸손의 본을 세우는 일 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황은 교만하여 영혼 구원에 관하여는 관심을 지니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을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47-49)


  추기경은 독일의 재산들을 독일로 가져가기 위하여 만들어진 직분이기에 하나님 예배를 땅에 떨어뜨리게 하였다고 질타한다.(49) 루터는 추기경은 단 한 사람도 없을 지라도 교회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교황청 역시 다 없어지고 단 하나만 남더라도 신앙 문제에 있어서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52) 첫 수입세와 교황의 달, 자유 교구령, 성록령 등은 교황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악법이었다는 것을 루터는 비난하였다.(53-69) 그러면서 루터는 첫 수입세의 폐지(70)와, 로마의 임명에 대한 금지(71), 그리고 개교회의 권리회복을 주장하였다.(72-74) 교황은 이런 모든 고상한 상행위(교황의 생각에 비추어 볼 때)를 위하여 로마에 거래소인 교황청내의 집을 세웠는데 성록령과 교구령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다 이리로 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는데 루터는 이러한 행위를 창녀의 집에 비유하였다. 루터는 또한 세속적인 문제를 가지고 교황의 법정에서 심판하는 것에 대한 배제를 주장하였으며, 주교 법정의 재판관들에 의하여 자행되는 난폭한 착취를 모든 주교가에서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결혼생활에 관하여도 자신의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결혼 생활을 자유롭게 행하고,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하든지 않든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였다.(94) 이외에도 루터는 죽은 자의 미사를 폐지할 것(102-103)과, 성사금지를 폐기할 것(104), 성자의 날(105)이나 순례(108-112)도 금지할 것을 촉구하였다. 즉 루터는 본 논문에서 신학적인 것보다는 실제적인 개혁의 방침을 세웠는데 교황권의 악정과 직임 임명, 과세는 억제되어야 하며, 부담이 되는 의식은 철폐되어야 할 것이다고 하였다. 독일 교회는 마땅히 독일 민족교회 산하에 있어야 하며 교직자의 결혼은 허락되어야 하며, 수많은 성일은 줄여서 산업과 사회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탁발 교단들을 포함한 구걸은 금지되어야 할 것은 말하였다. 또한 사창가는 폐쇄되어야 하고, 낭비는 억제되어야 하며, 대학의 신학 교육은 개혁되어야 한다고 하였다.(135) 그러면서 루터는 마감말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주장이 바르다면 나는 지상에서는 정죄를 받아야 하고 다만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늘에서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크리스찬들과 전그리스도교계의 주장은 홀로 하나님 한 분에 의해서만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모든 성서가 보여주기 때문이다.”(152)


 

2. 교회의 바벨론 감금(Babylonish Captivity of the Church).


 

  루터의 이 논문은 1520년 10월에 출판이 되었는데 이것은 루터의 가장 신학적이고 조직적인 논문 중의 하나이다. 이 논문은 신학자들과 지식층에 속한 사람들을 위하여 본래는 라틴어로 쓰여졌다. 이 논문은 루터의 성례관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루터는 여기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성례관을 신학적으로 조리 있게 논박하면서 그의 성례에 대한 뜻 깊고 새로운 해석을 말해준다.6)


이 논문은 루터가 「독일 크리스찬 귀족에게 보내는 글」을 발표한 2개월 후에 나온 글이다. 이 논문은 당시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성례관을 신학적으로 조리 있게 설명하고 반박한 글이다. “바벨론 감금”이란 말은 성례전의 왜곡된 가르침을 일례로 통칭하는 말이다. 곧,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움에 패하여 오랫동안 바벨론이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 고난의 생활을 한 것처럼 그리스도 교회의 성례전이 중세기 로마 교회에 의하여 “포로”가 되었던 현실을 비유해서 붙인 표현이다.(155)


또한 이 논문은 글을 쓴 대상이 신학자 층이었던 관계로 다른 글들보다 표면적으로는 덜 격렬한 어조로 쓰여져 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그릇된 점들을 주저함 없이 정면으로 공박하고 있으며 그 뜻에 있어서도 매우 급진적인 개혁 논문이다. 그는 당시에 통용되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일곱 가지 성례전을 모두 다루었는데 이 논문의 거의 대부분을 성찬과 세례를 취급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면 성례 전으로 취급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성서에 따라서 성례란 세례와 성만찬 두 가지 뿐이라고 하였으나 이 논문에서는 참회도 성례전으로 인정했는데 루터가 여기서 참회를 성례로 인정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표식이 있어야 하는데 참회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근거한 세례나 성찬도 같이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7)


  이 논문에서 취급된 요점은 성례전의 단순한 표지가 아니요, 성례전의 효력과 뜻에 관한 문제였는데 루터는 이 문제가 세례와 성만찬에서 진지하게 추구되어야 한다고 보면서 성서적 근거를 들어 성만찬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한다. 루터는 여기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상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그의 개혁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 나타난 그의 개혁사상은 그가 오직 성서에 권위를 두는 것과 성례전의 효력은 성례전을 받는 자의 믿음에 있다는 것, 그리고 시종일관 만인사제론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바로 이 개혁사상을 가지고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례전적인 삶, 사제직과 계층질서, 그리고 수도원적 제도와 그 삶의 양식 등을 개혁하고자 한 것이다.8)


  루터는 본 논문에서 카톨릭 교회의 성례를 비판하였다. 즉 카톨릭 교회의 7가지 성례인 세례, 성찬, 참회, 안수례, 견신례, 결혼례, 그리고 임종시의 도유식을 포함한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이 7가지의 성례 가운데서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로 보았다.(168) 그리고 한 가지 더 첨가한다면 참회까지도 성례로 보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참회와 같은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표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터는 나머지에 대하여 말하기를 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인정하신 것이 아니면 성례전으로 취급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루터의 논점이다.


  루터는 먼저 떡의 성례에 관하여 이야기한다.(170) 루터는 성만찬에서 평신도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예로 들면서 포도주 잔을 금지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만일 교회가 평신도들에게 한 가지 요소인 포도주를 빼앗을 수 있다면, 역시 다른 한 가지 요소인 떡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평신도들에게서 성만찬의 두 가지 요소를 거부하는 것은 사악하고 전제적이며, 어떤 교황이나 공의회도 이러한 권한을 지닐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루터는 성만찬에 있어서 화체설(化體說)9)의 미신적인 요소와, 성만찬을 희생으로 해석하는 점에 대하여 비판한다. 루터는 또한 희생의 미사를 비판한다. 중세 카톨릭 교회는 미사가 선행이고 희생제라는 의견보다 더 일반적으로 보유하거나 또는 확고하게 믿어지는 의견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미사 때마다 희생의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또한 우리의 죄사함의 보속을 위해서 인간도 희생의 제물로 바쳐지는 노력과 공로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더 이상 희생을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신앙이 따르며, 신앙 다음에 사랑이 따른다. 그리고 사랑은 모든 선행을 행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악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터는 세례가 성례에 관하여는 최대의 축복으로 여기고 있다.(224) 루터는 세례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에는 어디서나 반드시 신앙을 요구하며, 이 두 가지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약속이 없이는 믿을 수 없고, 믿음이 없다면 약속이 수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성례에서 신앙이 필요 불가결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례가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에 대하여 비판을 하고, 세례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 가운데 중세기 수도원 제도를 비판하면서 세례의 언약 외에 다른 언약은 있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루터는 성례에 관하여 말하면서 성례의 첫째가는 폐해는 참회를 완전히 폐기해 버린다는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교황청은 참회를 회개와 고백과 보상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할 때 그 하나 하나에 있어서 좋은 것은 다 제거해 버리고 거기에다 자기들의 변덕과 횡포를 가져다 놓았다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루터는 로마 카톨릭의 성례전 제도는 단순히 신자들을 사제에게 구속시키려는 노력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 한편 성례전의 참된 기능은 믿음으로써 우리가 거저받는 하나님의 약속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는 성례의 유일한 가치는 그것이 신의 약속의 증거이기 때문이며 성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죄가 용서되었다는 신의 약속을 표명하는 표시이며 신앙을 강화시켜 준다고 하였다.


 

3. 크리스찬의 자유


 

   이 논문은 밀팃즈의 권고에 따라 교황과의 화해를 위해 1520년 10월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내는 편지에 첨가된 글인데 고린도전서 9장 19절, 로마서 13장 8절이 본 논문의 주제가 된다.(274) 이 논문은 30개조로 된 작은 글이나 루터의 신앙체험이 역력히 나타나고 있으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총체가 담겨 있어서 루터의 저서 가운데 진주와 같은 글이다.


  루터는 이 글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명제로 제시한다.


  “크리스찬은 더할 수 없이 자유로운 만물의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하지 않는다. 크리스찬은 더할 수 없이 충의로운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된다.” (295)


  이 말은 그리스도인은 신앙에 있어서는 절대로 자유로우나 사랑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두 명제는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이나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며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밝혀주는 말이다. 루터는 사람에게는 영적이고 육체적인 이중적 본성이 있어서 한편으로는 무한히 자유롭고 영적인 내적 사람이 있고 또 한 편에는 현세적이고 외적인 옛사람이 있다고 말하였다.(297)


  여기에서 영적이고 내적인 자유자란 모든 믿는 자가 가지는 자유를 말한다. 사람의 영혼을 해방시켜 자유케 하는 것은 육적이고 외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이므로 그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자유자가 되었다는 것이다.(297-298) 이렇게 하여 자유롭게 된 자는 만물의 주인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적으로나 내적으로 자유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모든 믿는 자의 영혼이 신앙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신앙으로 맞이하여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가지게 되었다고 논증하였다. 여기에는 신앙 이외의 인간의 어떤 의식이 필요치 않는다. 내적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인데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이 복음은 신앙에 의해서만 받을 수 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결합할 수 있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 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설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영적 의로움을 받은 모든 자가 영적으로는 무한히 자유롭고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지만 그는 역시 현세적이고 외적이고 육적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살면서 육신과 정욕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며 또한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들을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크리스찬은 그의 이웃에 대하여 기쁘게 자발적으로 선행을 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기도와 봉사와 사랑으로 몸을 다스려야 한다. 따라서 크리스찬은 신앙으로는 그리스도안에서 살며 사랑으로는 이웃 안에서 산다. 그는 신앙으로 하나님에게 올려지고 사랑으로 그 자신 이하로 이웃에게 내려간다. 사랑으로는 아래로 내려와 이웃을 섬겨야 하는 것이 크리스찬의 사명이다.


  결국 루터는 이 논문에서 “만인 제사장직”을 주장하고 나섰다. 즉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 아래 얽매여 있지 않고,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그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그리고 이웃에 도움이 되도록 사랑으로 묶을 수 있기 때문에 종이라는 것이다. 루터는 선행이 선한 사람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한다고 하였다. 즉 선행이 선한 사람을 따르고 그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선을 행하는 사람은 어떤 공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신앙이라는 것이다. 신앙 외에는 아무 것도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 못하며 불신 외에는 아무 것도 사람을 악하게 만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논문에서 루터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스도시여! 우리로 이 자유를 이해하고 보존하게 하옵소서. 아멘.”


 

Ⅲ. 결론


 


  「독일 크리스찬 귀족에게 보내는 글」은 마틴 루터가 그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시기에 쓴 글이다. 16세기 초기의 그리스도계를 개혁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낀 나머지, 개선해야 할 여러 가지 점을 들어 그 당시 독일의 크리스찬 귀족에게 보낸, 하나의 뜻있는 권면과 충고의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논문은 출판 당시 2주간 이내에 4천부 이상이 매진되었다고 한다. 루터의 이 논문은 기본적인 문제를 논하는 부분과 실제 문제를 취급하는 두 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 첫째 부분에서는 천년 이상 가까이 서방세계의 사회, 경제, 법조, 종교 사상계의 기반을 이루고 있었던 이른바 “로마의 세 가지 담”에 관하여 신학적으로 논박하고 있다. 첫째 담은 영적 문제에 관하여 교황이 최고의 권위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 담은 성서 해석에 있어서 교황만이 유일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셋째 담은 교회 의회를 소집하는 권한은 교황에게만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이 논문에서 직업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신자간의 근본적인 차이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첫째와 둘째 담을 파괴하였다. 하나의 세례와, 한 분 하나님과, 하나의 신앙을 가진 평신도들은 사제나 감독과 마찬가지로 성별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렇게 가르치고 보면 자연히 교황의 말만 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게 된다. 셋째 담은 첫째와 둘째 담이 붕괴되면 자연히 허물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분야에 걸친 담들이 로마 교황권을 중심으로 하여 깊이 뿌리박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부분에서 루터는 공의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여러 가지 문제점들과 또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당면한 실제적인 문제들을 27항목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취급하였다. 교회내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분야 등 다방면에 걸쳐 문제의 핵심들을 다루어 개혁을 제안하였다. 한 가지 주시할 수 있는 점은 이상과 같은 실제적인 문제점들은 그 당시 독일에 있어서의 반 로마파, 특히 인문주의자들과 기사들의 논조와 흡사한 점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논문은 이제 교황청의 보루였던 세 성벽이 무너졌다고 선언하였다. 영적 지위가 세속적 지위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은 근거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신자들은 세례로 인하여 다 사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인제사직의 진리는 또한 교황만이 성서해석권을 가지고 있다는 두 번째 성벽을 무너뜨린다. 또한 교황 이외에는 아무도 개혁 공의회를 소집할 수 없다는 세 번째 성벽도 무너뜨린다. 개혁을 위한 “참되고 자유로운 공의회”는 세속 당국자들에 의하여 소집되어야 한다.10)


  다음 루터는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하였는데, 그의 제안은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실천적인 것이었다. 교황의 학정과 임명과 과세는 단절되어야 하고, 억압적인 직책은 철폐되어야 하며, 독일 교회의 관심사는 “독일 대감독”의 관할 아래 놓여져야 하고, 성직자의 결혼은 허용되어야 하며, 과다한 교회 축일은 산업과 절제를 위하여 줄여야 하고, 탁발 종단을 포함하여 걸식은 금지되어야 하며, 창녀촌은 닫혀야 하고, 사치는 억제되어야 하며, 대학의 신학 교육은 개혁되어야 한다. 루터의 글이 심원한 반응을 일으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진지한 사람들의 오랜 갈망을 대변했다.11)


  「교회의 바벨론 감금」은 1520년 10월에 나온 루터의 유명한 논문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라 할만한 이 작품은 그의 성례관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그의 새롭고 뜻 있는 해석을 보여주는 글이다. 본 논문은 그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성례관을 신학적으로 조리 있게 설명하고 반박한 글이다. “바벨론 감금”이란 말은 성례전의 왜곡된 가르침을 일례로 통칭하는 말이다. 곧,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움에 패하여 오랫동안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 고난의 생활을 한 것처럼 그리스도 교회의 성례전이 중세기 로마 교회에 의하여 “포로”가 되었던 현실을 비유해서 붙인 표현이다. 글을 쓴 상대가 신학자층이었던 관계로 다른 글들보다 표면적으로는 덜 격렬한 어조로 쓰여져 있다.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문제가 문제이니만큼 그릇된 이해점들을 주저함 없이 정면으로 공박하고 있으며, 그 뜻에 있어서도 매우 급진적인 개혁 논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카톨릭의 성례는 세례, 성찬, 참회, 안수례, 견신례, 결혼례 그리고 임종시의 도유식을 포함한 일곱 가지이다. 그러나 루터는 세례와 성찬 그리고 참회까지만 성례로 보았다. 그는 이밖에 다른 예전들은 성례전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이 논문은 거의 절반을 성찬과 세례를 취급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이것은 그 당시 로마 교황주의 사상의 억압 밑에 성찬의 성례가 “포로” 상태에 있었던 점을 강하게 말해 준다. 그 첫째 과오라고 불 수 있는 “포로 상태”는 성만찬에 있어서 평신도들로 하여금 성찬의 떡만 받게 하고 잔은 주지 않은 점이다. 그리고 둘째 과오는 이른바 로마주의 사상의 화체설이며 셋째 포로상태라고 볼 수 있는 과오는 성만찬을 희생으로 해석하는 점이다.


  「교회의 바벨론 감금」에 취급된 내용은 오늘날도 로마 카톨릭 사상과 프로테스탄티즘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뺄 수 없는 고전적인 문헌이다. 여기서 취급된 그 요점은 성례전의 단순한 “표지”가 아니요, 그 성례전의 “효력”과 “뜻”에 관한 문제이다.


  루터는 성례의 이름을 “그것에 표징이 결부되어 있는 저 (죄 용서의) 약속들”에 국한시키면서,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제정된 두 가지 성례, 즉 세례와 성만찬을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12)


  고해성사(회오, 고백, 사면)는 비록 외적 표징이 결여되어 있지만, 매일 세례로 돌아가는 것으로서 어떤 성례전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루터는 사적 고백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억눌린 양심을 위한 치료”로써 유지되기를 원했다. 모든 성례에서 중심적인 것은 표징(scramentum) 자체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하나님의 용서의 말씀(res sacramenti)이다.13)


  이런 점에서 볼 때 수도원 서약, 순례, 공로의 행위 등은 세례 때 대가 없이 믿음에 약속된 죄의 용서를 대신하기 위한 인위적 대체물이다. 나아가 루터는 평신도에게 잔을 주지 않는 것을 비난했고, 화체설에 의심을 표시했으며, 특별히 미사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사라는 교리를 거부했다. 그리고 견신례, 혼인성사, 사제 서품, 종유성사 등 다른 로마의 성례들은 성서에서 성례적 근거가 없다고 선언하였다.14)


  「크리스찬의 자유」는 「독일 크리스찬 귀족에 보내는 글」과 「교회의 바벨론 감금」을 출판한 후 루터는 1520년 11월 초에 「크리스찬의 자유」를 출판하였다. 이 논문은 회유적(懷柔的)인 정신으로 쓰여진 점에서 앞의 두 책자와는 달랐다. 그러나 이것도 크리스찬의 생활에 적용된 루터의 복음주의 신학에 대한 적극적이고 솔직한 진술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논문은 말팃쯔의 권고로 교회 내의 갈라진 틈을 메꾸려는 마지막 시도에 그 기원이 있다. 요한 스타우핏쯔와 그의 후계자 링크에게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에게 그가 결코 사적으로 교황을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우호적인 편지를 쓸 것에 대해 제안 받았다. 이에 대해 루터는 그들의 요구에 응하기로 하고 화해의 편지와 함께 종교적인 책자를 같이 쓰기로 합의했으며,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독일에서 공포된 “교황의 교서”에 자극을 받아서가 아니라는 점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이 글은 루터가 로마 교황과의 동등한 입장에서 마치 고해를 듣는 신부의 입장에서 교황에게 충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또한 루터의 복음주의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비록 이 논문이 중세기 말의 신비주의 정신을 나타내며 또한 많은 교황 지지자들에 의해 좋게 평가되기는 했으나, 이것은 믿는 크리스찬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된다는 사실과 또한 사랑으로 그의 이웃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명시해 주고 있다. 


  루터는 차분히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실존의 역설을 진술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주인들 중에 가장 자유로운 종이므로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종들 중에 가장 의무에 충실한 종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다.” 신자들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기 때문에 자유롭고, 더 이상 행위의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며,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 안에 있다. 신자들은 사랑에 의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삶을 영위하여야 하고 이웃을 도우며 살아야 하므로 종인 것이다.15)


 

Ⅳ. 본인의 견해


 

  루터의 종교개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어떻게 가난한 벽촌에서 태어난 한 젊은이가 가진 것도 없이 엄청난 일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루터의 성공에 대해서 분석해 보았다. 그렇지만 루터에게는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을 철저하게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다.


  루터는 말씀의 사람이었으며, 기도의 사람이었으며, 경건의 사람이었다. 성령의 도우심을 철저하게 믿으면서 모든 것을 기도로써 시작하고 기도로써 끝을 맺었던 사람이었다. 루터는 또한 자신의 개혁을 처음부터 이렇게 되리라고 계획표를 짜고서 밀고 가지 않았다. 루터는 일이 되어지는 대로 하나씩, 하나씩, 처리해 갔으며, 억지로 일이 되게끔 몰고 가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에 철저하게 순종하려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였다.


  루터가 단 하나 머리를 써서 세밀하게 이끌어갔던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절대로 개인자격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루터는 자신의 의견을 언제나 공중적인 전체 회의나 집회를 통해서 발표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루터는 당시의 시대적 조류인 회의 중심적 개혁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루터의 개혁은 철저하게 복음중심적인 원칙적인 싸움이었지 무력이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데에 힘이 있으며, 또한 동시에 지식인들과 지도층의 지지를 확보하였다. 루터는 개인의 인기를 편승해서 사람을 압도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본인이 몸소 터득한 복음의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심어 줌으로서 중세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해야 된다는 강한 사명감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본 종교개혁 3대 논문은 루터의 저서 가운데 가장 빛나는 책들이라고 여겨진다. 루터는 이 책들을 통하여 위대한 종교개혁을 이룩할 수 있었으며, 참된 신앙의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은 이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화가 치밀기도 하였고 때로는 무엇인가 가슴을 꽉 막고 있었던 체증이 풀리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하였다. 당시대의 교회가 너무나 부패하여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사악한 세상에서 루터와 같은 인물이 나와서 꺾이지 않는 정열로 당시의 권력에 담대히 맞설 수 있었다는 것을 보면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본 논문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마음 한 구석에 영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 오늘의 우리 교회에 루터가 나타나면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우리는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거듭나야 하겠다. 루터 당시에도 말씀이 없어서 무너지고 있었지 않았던가! 물론 우리들에게 체험도 중요하다. 그러나 말씀이 없는 체험은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거듭나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