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선지자들이 전한 주된 메시지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19-03-01 16:34
조회
55

선지자들이 전한 주된 메시지



[선지자들의 사역 지역별 구분]

​이러한 선지자들이 왜 어떻게 사역 하였는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그 사역연대와 시대적 배경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점점 악해지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것을 예언하고 또다시 회복할것을 예언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선지자들이었다.선지자들은 각 시대마다 이스라엘의 유다의 잘못된 모습을 경고 하고 있으며 어떤선지자는 자신의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도 있었고 메시아의예언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회복의 예언들을 하고있다.

​이스라엘의 역사중에서 다윗과 솔로몬 시대는 가장 번성한 시기였다. 그러나솔로몬이 죽고난후 이스라엘은 두 나라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리게 되고 하나님앞에 악한 왕들이 많이 나타나 나라를 부페시켰고 하나님을 멀리떠나 우상숭배를 하는 심지어는 성전의 문을 폐쇄하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왕들이나타났다.
이 스 라 엘 유 다 이 방 민 족
호세야

아모스

미 가
이사야, 다니엘, 예레미야, 학 개

요 엘, 스가랴 스바냐, 말라기

에스겔
요나

나훔

하박국

오바댜
​[선지자들의 사역 시대에 따른 구분1>]
앗수르 시대 갈대아 시대 포로 시대 포로 후기 시대
요 나, 호세야

요 엘, 아모스

미 가, 이사야
예레미야, 나 훔

스바냐 , 하박국
에스겔, 오바댜

다니엘
학 개, 스가랴

말라기
​[선지자들의 사역 시대에 따른 구분2>]
B.C 9Th B.C 8Th B.C 7Th Exilic Postexilic
요 엘

오바댜
호세야, 아모스

요 나, 이사야

미 가
나 훔, 하박국

스바냐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
학 개

스가랴

말라기

​[메시지 내용]


< B.C 9Th의 예언자(오바댜, 요엘) >


* 오바댜 *


​오바댜의 경우 그의 사역 연대에 있어 많은 의견이 모아진다.위의 서론에서의도표 에서도 오바댜의 사역시대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11절 말씀의 에돔의 침략에 대하여 여러 견해가 있기 때문이다. 에돔의 침략은 유다역사가운데 3번 일어 났는데 그 첫번째는 여호람 시대(B.C 853-841)(왕하 8:20-22,대하 21:8-10) 두번째 경우는 아하스 시대(B.C 743-715)(대하 28:16-18) 세번째경우는 B.C 586년 느브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레 함락 사건이다.(왕하 25:1-21,대하 36:15-20)위의 도표 선지자들의 활동시기 1>에서는 세번째 의견을따라오바댜의 사역기간을 포로시대로 보았고 도표2>는 첫번째 의견으로 B.C 9Th에오바댜가 사역한것으로 보는것이다. 본인은 첫번째 의견을 받아들여 서술해 나가고자 한다.


​오바댜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여호람은 선한 왕인 여호사밧의 아들 이었지만 이세벨의딸 이달랴와 결혼 함으로서 이스라엘에 해를가져왔다. 그는 자신의 왕위를 보존하기 위하여 그의 모든 형제를 죽였고 바알숭배도 허락하였다. 이러한 것은 이달랴의 영향 이었을것이다. 에돔은 유다의속국이었는데 여호람 시대에 독립 하였고 아랍인들과 불레셋인들이 왕궁가지 들어와 모든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왕자들까지 데려갔다. 오바댜는 아랍인들과불레셋인들에 의해 자행된 파멸직후 예언서를 기록 한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그는 이달랴의 통치 기간에도 계속 사역한것으로 보여진다.


* 요 엘 *


​요엘도 활동 시기에 대한 의견이 많이 있으나 요엘서는 요아스왕 시대인 B.C830년경 쓰여진 것으로 본다.가장 중요한 증거로 요엘서에 열거된 원수들에관한 것인데 두로와 시돈, 불레셋, 에굽, 에돔(욜 3:4, 3:19)이 나타나있고 앗시리아나 바벨론등이 언급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요엘은 앗수르와 갈대아 제국이 주도권을 잡고 있을당시 기록되었을 것이다.


​요엘의 역사적 배경은 오바댜의 역사적 배경 직후인것 같다.그들의 사역은 수년 동안은서로 중복 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달랴는 여호람이 죽자 그의 손자들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며 그의 손자중 요아스만이 여호시바에 의해 구출되어 여호시바와 결혼한 대 제사장인 여호야다에 의해 후에 왕으로 추대 되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영향으로 우상숭배를 금지 하였고 모세 율법의 제사제도가 부활 하였다. 요엘은 이러한 변화가 있은후 수년이 지나 예언서를 기록 하였다.


< B.C 8Th의 예언자(호세야,아모스,요나,이사야,미가) >


* 호세야 *


​오바댜와 요엘과는 달리 호세야는 그의 사역 연대를 정확히 기술하고 있다.그는 유다의 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 왕과 이스라엘의 여로보암2세때 사역 하였다.(호 1;10) 그는 이사야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 가운데 하 사람으로서 사역 기간은 40여년 이었다. 여로보암 2세가 물질적으로 나라를 부흥 시켰으나 도적이 들끓었고 종교는 부폐했으며 육적 영적 음난이 창궐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인지 호세야서에 ‘음행’ 이란 단어가 16회나 나온다. 여로보암이 죽은뒤 왕위 쟁탈전과 정치적 음모가 끊임없이 나타났으며 백성들은 더욱 탐욕과 착취로 타락하여 결국 앗수르에게 B.C 722년 점령 당하여 호세야는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 아모스 *


​아모스는 호세야와 같은 방법으로 그의 사역 연대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그는 그의 사역 연대가 여로보암 2세와 유다의 웃시야가 다스리던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아모스의 사역연대의 시작은 B.C 763-753년경이 된다.아모스의 집은 유다 였지만 그의 사역은 이스라엘 에서였다. 그의 사역 연대는 호세야와 비슷 하므로 시대적 상황은 거의 같을것이다. 아모스는 호세야보다나이가 많았을 것이고 먼저 사역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 시대는 유다와 이스라엘 모두가 국력이 신장해 있었던 때로 두나라의 영토를 합치면 거의 솔로몬 시대에 가까울 정도로 부강하던 때였다.


* 요 나 *


​요나의 연대는 여로보암 2세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왕하 14:25 에서 그의 관한 언급을 통하여 결정될 수 있다. 요나 선지자가 사역한 때는 앗수르에 있어서는 흥왕하기전의 쇄퇴기였던것 같다. 즉 티글랏빌레셀이 일어나 왕위를 떨치기 이전인것 같다. 그러므로 그는 B.C 783년경 사역한것으로 보여진다.


​요나가 살았던 곳은 이스라엘 이었지만 이미 이스라엘의 역사적 배경은 호세야와 아모스 선지자를 설명하면서 이미 설명하였음으로 그의 사역지였던 니느웨의 배경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니느웨는 당시 앗수르의 수도는 아니었지만 앗수르의 가장 큰 도시였다. 당시 앗수르는 정치적으로 후계자 선정 문제에 있어서혼란 스러웠었고 아스루단 3세가 후계자에 오른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져 갔으며 열병과 일식이 임하여 백성들을 공포심으로 사로 잡았던 때이다.


* 이사야 *


​이사야는 자신이 활동하던 시대의 왕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으며 그 이름은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다. 그는 웃시야 왕이 죽던해에 하나님의부르심을 받고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는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북 이스라엘이 아닌 남 유다에서 사역하였다. 웃시야 왕이 죽던해에 사역이 시작되었음으로 여로보암 2세가 죽은뒤 사역을 시작하였을 것이다.이사야는 B.C 470년경부터 B.C 680년까지 이르는 약 60년간 사역 하였으며 호세야의 사역 기간과 비교해보면 호세야가 사역을 시작한지 약 20년후에 사역을 시작하여 호세야가 사역을 끝마친 후에도 약 30년간 그의 사역이 계속 되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축복아래 여로보암 2세가 영토를 넓혔던 것처럼 유다 영토를 확장 할 수 있었으며 그의 아들 요담에게까지 그영향이 미쳐 암몬에게 3년간의 조공을 받기도 하였지만 아하스가 통치한 이후부터 여호와의 길을 떠났으며친 앗수르 정책을 펴며 우상을 섬기었고 심지어는 성전문을 폐쇄하여 백성들이성전에서 예배드릴수 없게 하였다. 이런 죄악된 상황은 히스기야 왕에 와서수정되어 성전의 폐쇄되었던 문을 다시 개방하였으며 다시 모세의 율법데로 제사를 드리기 시작하였고 이방의 모든 의식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이런 개혁에 회복의 기미를 보였으나 그의 아들 므낫세의 섭정에 다시 우상을 들여 왔으며 많은 무죄한 피를 흘렸다. 이사야는 므낫세의섭정때 그의세력에 반대하여 죽음을 당했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 미 가 *


​미가 1:1에서 볼수 있듯이 그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의 사람이다. 이시대는 이사야 선지자와 맞먹는 시대인 것이다. 미가는 이사야 보다는 더 젊은 예언자 였다. 그의 사역 연대는 이사야와 비슷 한정도로 알뿐 정확학한 연대를 알긴 어렵다. 전통적 견해로 1:1 말씀을 토대로 B.C 740-700년 경으로 보면틀림없을 것이다.


​이 때는 앗수르가 세력을 얻고 자기의 군대를 몰아 세계정복을 시작할때이다. 사방의 나라들은 앗수르의 위협에 떨던때로 수리아의 수도인 다메섹은B.C732년에 앗수르의 장중에 들어 갔고 10년후에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포로가되어 망하는 비극을 맞았다.이런 위기를 바라본 미가는 동시에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경고하고 예언한다. 미가는 소 선지자들 가운데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동시에 메세지를 전파하였던 유일한 이물이다.


< B.C 7Th의 예언자( 나훔,스바냐,하박국,예레미야) >


* 나 훔 *


​나훔은 8Th의 예언자들과는 달리 그가 사역하던 시대의 왕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사역 연대는 그의 예언서의 내적 증거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할것이다. 그의 예언서 3:8-10에 “노아몬”이 나온다. 이 “노아몬”은 에굽에있는 데베이다 이 때 니느웨는 강한 세력을 갖고 있다가 B.C 년에 아슬바니팔에 의하여 함락되었다. 그리고 B.C 606년에는 나보팔폴라살에 의하여 함락되었다. B.C 612년에 바벨론과 메데의 연합군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하였다. 나훔서 예언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멸망당하기 이전에 선포한 것으로보여지며 이런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사역 연대는 B.C 663-612년경으로 보여진다.


​나훔서는 어떻게보면 요나서의 속편으로 볼 수 있다. 두 책들이 같은 윤리적맥락에서 니느웨의 역사를 취급하고 있으며 요나가 니느웨의 회개를 기록했다면나훔은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여러 세기동안 앗수르는 명성을얻고 있었고 B.C 8Th 초엽만해도 앗수르의 최대 도시였던것이 사실이다.


​나훔은 요시아의 선한 통치때 사역 했지만 그 이전의 므낫세와 아몬의 통치는다른 열방보다 더 악을 저지른 왕들이었다. 그러므로 나훔 선지자도 그 영향아래 있었던 것이다.


* 스바냐 *


​스바냐는 자신의 사역 연대가 요시아왕(B.C 640-609)이 다스리던 때라고 비교적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다.(습 1:1) 스바냐는 그의 예언서를 요시아가 개혁을시작한 B.C 621년 이전에 기록하였음이 분명한데 그 이유는 요시아 왕에의해 폐지된 우상 숭배에대한 경고가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스바냐가 살던 시대는 나훔이 살던 시대와 같은 시대로 히스기야왕 이후의 므낫세와 아몬의 통치 시대였을 것이다. 므낫세의 통치는 경건한 부친 히스기야를따르지 않고 그의 조부인 아하스의 길을 따라 악을 자행했다. 성전안에 바알제단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힘놈 골짜기에서 그의 자녀들을 제물로 드리는일을 서슴치 않았다.그의 아들 아몬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아 계속해서 악을 자행해 왔지만 2년만에 그가 죽임을 당하므로서 그의 아들 요시아가 왕위에 오르게된 것이다.


* 하박국 *


​하박국의 사역 연대 역시 그의 예언서의 내적 증거에 근거하여 정할수밖에 없다. 하박국은 어떤 왕의 통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박국1:6-11을 보면 하박국의 시대가 어떠한 때였는가를 보여주는데 여러가지 견해가있다. 첫번째로는 갈대아 사람들이 유다를 침입하기 전 이라는 것이다. 둘째로는 갈대아가 B.C 625년에 세력을 잡기 시작하여 B.C 539-538년까지 세계역사를주름잡았으니 하박국은 당시 칼케미스 전쟁을 소재로 예언했고 그는 여호야김당시에 예언했다는 것이다. 끝으로 카일과 델리취는 B.C 650-627년으로 잡는다. 그이유는 하박국 서지자는 니느웨를 먼 안목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역사를소개하고 있는것이다.세으견중 여호야김시대에 하박국은 사역한것으로 보여진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간섭없이 언제까지 부폐한 정치가 계속되어 무죄한 백성들을 착취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통스럽게 질문 하는것으로 보아 여호야김 시대로 대략 B.C 608-600으로 볼 수 있다.


​요시야왕은 유능한 왕이었다. 그는 전격적인 개혁을 도입했고 통치력을 이스라엘 동쪽까지 확대시켜 유다의 영향력을 확장시켰다.그러나 그는 스스로 무리하여 자신의 죽음을 가져오게 되었고 뒤를이어 둘째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에오르게 되었지만 곧 엘리야긴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으며 그의 이름은 여호야김으로 바뀌었다.여호야김은 동생 엘리야긴보다 두살위로 25세에 왕위에 올랐다.여호야김은 하나님앞에서 악을 행하였으며 통치에 있어서도 무능력했다.그는예레미야의 말을 듣지않고 오히려 그의 예언서를 불태웠다.


​바벨론이 중동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예루살레에까지 침공하여 많은 젊은이들을 포로로 잡아깠다. 그 포로들중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포함되어 있었다.


* 예레미야 *


​예레미야 그는 그가 사역하던 당시의 왕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36:1-2에 여호야김 4년에 여호와 께서 예레미야에게 명령하시기를 요시아의 날로부터그때까지의 그에게 나타낸 모든 예언을 두루마리를 취하여 그 책에 써서 전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의 사역 연대를 비교적 정확히 알수 있다. 그의 예언은 그의서기관인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술을 받아적은 것이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13년인 B.C 627년 처음으로 계시를 받았으며 백성들이 바벨론포로로 잡혀 갈때까지그의 사역을 계속하였다. 예레미야가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에 대한 언급이 없는것은 그들의 통치기간이 잛았기 때문일 것이다.예레미야가 죽은 연대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B.C 580년경에 죽은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사역은 B.C 627-580년간 약 47년여 동안이라고 볼 수 있다.


​예레미야도 위의 선지자들과 동시대의 선지자로 그 역사적 배경은 거의 비슷하다. 그의 경고는 여호야김왕 에게 그의 예언서가 불살리우게 되어 박해를 받기도 했으나 그의 사역은 계속되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기의 때에 활동한 예언자 였다. 당시 신흥 바벨론이 메대와 연합하여 B.C 612에 앗수르의 니느웨를 함락하고 B.C 619년에는 하란을 탈취하여 앗수르의 붕괴를 가져왔고 B.C 626년 수투디아인의 침략으로 팔레스타인은 고통을 겪었고 B.C 588년에 바벨론은 유다를 침략하고 B.C586년에 예루사렘을 함락하여 유다가 멸망했다.


< 포로시대의 예언자(다니엘,에스겔) >


* 다니엘 *


다니엘은 그 자신이 사역한 연대를 비교적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는 앞에서도 언급한바 있듯이 느브갓네살왕이 예루살렘을 침공 했을때 그 자신과 세친구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다니엘의 유수는 B.C 605년에 있었고 10:1에 고래스왕 3년에 네가지 환상이 그에게 임했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래스 왕이B.C 539년 가을에 바벨론을 정복한지 3년 후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다니엘은적어도 B.C 536년까지 약 69년동안 유수 생할을하며 사역을 한것으로 보여지며이사야와 같이 직업적 예언자는 아니지만 이사야보다 더 오랬동안 사역하였다.


다니엘은 3개의 큰 제국에서 살며 사역 하였다. 다니엘서 1장에 보면 그는 느브갓네살왕의 궁중에서 교육을 받게 된것으로 보인다. 바벨론 제국은 B.C605-539년까지 존립했고 이기간에 유다는 멸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되었다. 다니엘 말련에는 성 바벨론 제국이 멸망되고 고래스 대왕에 의해 폐르시야 제국이 세워졌다. 폐르시야 제국은 포로민들로 하여금 본국에 귀환하도록 하였고 유다인의 첫번째 귀환은 스륩바벨과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의 인솔하에B.C 536년에 이루어졌다. 다니엘서는 메데파사, 희랍, 로마의 흥망성쇠와 그 후의 세상열국 그리고 그리스도의 왕국의 도래까지 포함하고 있다.


* 에스겔 *


에스겔 역시 자신의 사역연대를 정확히 언급하고 있다.그는 B.C 597년에 있었던 유수때 포로로 끌려갔다. 이것은 에스겔 33:21에 증명되고 있다.에스겔의예언의 시작은 유다왕 여호야긴포로생활 제5년 즉 B.C 592년경이고 그의 마지막예언이 포로생활 27년째인 B.C 570년경에 선포된것으로 볼 수 있어서 그의 예언사역 전체기간은 약 22년 정도라 볼 수 있다.


에스겔은 예레미야와 더불어 재사장 출신의 선지자들이다.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 즈음에 일어나는 사건들과 관련해서 적극적으로 예언활동을 펼친 반면 에스겔은 이런 사건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주로 이와같은 일들을 포로생활을하고 있는 백성들과 관련시켜 글로 저술하는 활동을 하였다. 에스겔은 아직젊은 때 바벨론 구대로 인해서 유다왕 여호야긴과 함께 B.C 579년경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으며 이때는 예루살레 멸만 11년 전이었다. 에스겔은 바벨론으로잡혀가서 그발 강변에 위친한 텔 아비브에 거주 하였고 이때와 같은 시기 즉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 했을 무렵인 b.c 588년경에 에스겔 선지자의 처는별세 하였다.에스겔이 바벨론에 가서 예언사역을 시작하고 진행했을 때에도예레미야 선지는 예루살렘에서 아직 예언사역을 예루살레 파괴시까지 계속 하였으니 에스겔과 예레미야는 어떤 의미에서는 동시대 선지자들이다.


< 포로기 이후의 예언자(학개,스가랴,말라기) >


* 학 개 *


학개 역시 에스겔 처럼 자신의 사역 연대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1:1에“다리오 왕 2년 유월”이라 했는데 이는 B.C 520년에 해당하는 해석이다.학개는 또한 그에게 계시가 임한 다른 세 경우의 정확한 날짜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들 모두는 다리오왕 2년에 발생하였다.그러므로 그가 기록한 모든 예언의 내용은 B.C 520년 4개월 동안의 기간중에 여호와께로부터 그에게 임하였다. 다니엘은 B.C 535년경까지 바벨론에 살며 사역하였는데 학개의 사역은 이보다 약15년후에 유다에서 시작된 것이다.


유다 백성이 세번에 걸쳐 포로로 잡혀갔던 것처럼 예루살렘과 유다로 귀환 할때도 세번에 걸쳐 귀환하였다. 첫번째 귀환은 폐르시야가 바벨론을 점령한 직후스룹바벨에 의해 인도 되어졌고 두번째 귀환은 이보다 80년뒤 아닥사스왕 7년인B.C 458년에 에스라에 의해 인도 되었다. 마지막 세번째 귀환은 두번째 귀환보다 13년뒤 아닥사스왕 20년인 B.C445년에 느혜미야에 의해서 인도 되었다. 귀환한 사람들은 먼저 해야 할일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로 알았고 곧 재건사업이 시작 되었다. 이것은 귀환 첫해 7월에 시작되었는데 기초공사는 빠르게잘 진행되어 순조롭게 마쳤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의 반대로 성전재건은 더이상진행될 수 없었고 성전 기초만 놓여진체 학개가 사역을 시작한 다리오왕 2년까지 16년동안 방치 되었다.


* 스가랴 *


하개와 스가랴는 동시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세번에 걸쳐 계시를 받은 때를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첫번째 계시는 B.C 520년 다리오왕 2년 8월에 임했으며 두번째 계시는 이보다 3개월 후임 같은해 11월에 임하였고 세번째 계시는 이보다 약 2년후인 B.C 518년 다리오왕 4년9월에 임하였다. 네버째 계시는그 시기가 정확하게 언급 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B.C 480년 이후에 주어진것으로 보인다.


학개와 스가랴는 동시대 인물이였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적 배경도 서로 일치한다. 하나님께서는 중단된 성전 건축에 대한 촉구를 B.C520년 6월에 두달후 8월에 스가랴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계시다. 성전재건은 B.C 520년 두 선지자들의촉구로 다시 시작하여 B.C 515년 3월에 완성되었다.


* 말라기 *


히브리 마지막 예언자인 말라기는 자신의 사역 연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않다. 그의 연대 역시 그의 예언속에서 찾아 보아야만 한다. 첫째 유대인들이포로 귀황후 기록 한 것이요 둘째 이미 성전을 재건하여 제사를 드리며 기록한것이 분명하며 사회적 형편이 에스라,느혜미야 시대적 형편과 비슷하다.그러므로 그의 사역연대는 B.C 5Th 후반부터 사역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본서의 내용으로 보면 종교적,사회적 타락과 퇴보 무었보다도 종교생활의 회의적 반응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포로기 직후의 시대상에서 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처를 보여주는듯 하다.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바벨론이 망하고 본국으로귀환하여 성전이 재건되면 메시야왕국이 실현 되리라 믿었다. 이런 기대에 실망하여 냉소주의와 불신앙이 팽배한 시기였다. 이같은 절망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각성 시키는데 말라기의 교훈이 필요 했다.


[맺는 말]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의 때는 모두 힘들고 어려웠을때이며 종교와 사회가 불안하고 썩어 있을 때 였다. 많은 선지자들을 이런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찾을것을 강조 하고 있으며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지금의 시대를 볼때 B.C 7Th경 많은 선지자들이 나와 두나라의 마지막을 경고하던 때 처럼부폐하고 하나님을 떠나있고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와있다.


우리에게는 따로선지자가 없고 선지자들의 예언보다 던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서가그일을 대신하여 주고 있으며 우리에게 회개와 하나님에게로의 회복을 촉구하고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해 주고 있다. 이제 우리의 모습들이 하나님에게로 향하여야 하겠고 우리에게있는 우상들을 없에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말이다. 선지자들을 어려운 상황 가우데서도 그들의 신앙을 지키며 백성들에게 예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하였다.


​우리도 어려운 이때에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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