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이슬람은 예수를 어떻게 이해할까?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19-03-18 18:13
조회
62
예수에 대한 이슬람의 이해

무슬림들은 극단을 피하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중간을 걷는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서 유대교인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것을 거부하고 있고, 기독교인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무슬림은 예수가 하나님의 위대한 예언자이며, 메시야라고 말한다.
무슬림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는 예수와 모든 선지자들을 믿는다”고 말한다.

무슬림들의 예수에 대한 정확한 이해, 즉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사이에 존재하는 예수에 대한 공통된 이해와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나님은 낳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아니 했나니”(수라 112:3) 그러나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이 메시아와 동일시되어질 수 없다.
하나님이 곧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 하는 그들에게는 저주가 있으리라 가로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벌을 막지 못하니 그 분의 뜻이라면 마리아의 아들 예수와 그의 어머니와 세상의 모든 것이 멸망하리라”(수라 5:9) 이러한 무함맏의 주장은 꾸란의 다른 구절들에서 예수에 대한 대단한 호평과는 대조되는 것이다. 본문은 예수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극단적인 적대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무함맏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붕괴하기 위해서 예수의 말도 꾸며냈다. “알라께서 ‘마리아의 아들 예수여, 네가 백성에게 나를 제외하고 너와 너의 어머니 마리아를 경배하라 하였느냐’ 하시니 ‘영광을 받으소서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할 권리도 없나이다 제가 그렇게 말하였다면 당신께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수라 5:119) 이것은 무함맏이 꾸며낸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예수 당시에는 마리아 경배에 대한 아무런 논쟁도 없었다. 또 본문에서 말하는 예수의 증언과 성경의 예수의 자신에 대한 확신과 말들 사이에는 무한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슬람은 예수님과 관련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들인, 예수의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속을 부인한다. 여기에는 예수를 특별한 영적 존재로 취급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면도 감추어져 있다. 수라 4:157 “그들은 (자랑스럽게) 알라의 을 선지자, 마리아 이사 마씨를 ‘우리가 죽였다’고 말했다….그들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또한 그를 십자가에 매달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이사 대신에 비슷하게 보이게 했고, 여기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으로 가득찬 자들이며, 어떠한 확실한 지식도 없이 단지 짐작만 하는 자들이다. 죽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꾸란에서 예수는 진리의 말씀 그 자체이다. 수라 19:34 “그들이 (즉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 의심하고 있는 예수 마리아의 아들은 바로 진리 말씀이다.” 물론 이곳에서 사용된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과는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 사이에 아무런 구별도 없다.

알라의 말은 단지 “있으라” 하면 있게 되는 능력 이상이 아니다. 또한 예수는 하나님의 영이기도 하다. 수라 4:171 “오 책이여, (예수를 신이라고 말함으로써) 너의 종교에 있는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마라! 알라 영광에 오직 진리의 말만 하라! 당연히 그 예수 그리스도 마리얌의 아들은 단지 알라의 선지자이고, 그의 마리얌에게 던진 말씀이고, 또한 그의 편에서 온 영일 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알라의 자신의 영도, 알라 자신과 동일시 되지 않는다.

예수는 단순히 알라에게서 보내진 영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는 영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육체적인 존재인가? 이처럼 무함맏은 예수님의 신성도 부인하고 있고, 인성도 부인하고 있는 셈이다. 무함맏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지만, 정확히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

꾸란에는 예수에 대해 15개의 장과 93개의 절에 걸쳐 언급되고 있을 만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예수에게 사용된 명칭들은 다음과 같다. 메시아(al-Masih : 11번), 예언자(nabi 수라 29:30), 사도(rasul 수라 4:157; 5:75), 마리아의 아들(Ibn Maryam : 33번), 하나님에 가까운 자들 중의 한 사람(min al-mukarrabin, 3:45), 현세와 내세에서 고귀한 분(Wadiih, 3:45), 축복받은 자(Mubarak 19:31), 그리고 진실의 말씀(Kawl al-hakk 19:35), 알라의 말씀과 영 등이다. 수라 43:61에서 예수는 때에 대한 표적이다. “당연히 (예수는 종말의) 때에 대한 표적이다.”

무함맏, 꾸란, 모든 무슬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는 전혀 이의가 없다. 하지만 왜 예수만 인류 역사상 처녀 탄생이라는 기적적인 방법에 의해 출생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질문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 이유에 대한 호기심을 갖도록 질문을 해야 하고, 또 동정녀 탄생과 선지자들의 예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언급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답변해 주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죄 없이 깨끗하게 출생했다는 점에 대해 꾸란은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수라 19:19 “(가브리엘이) 말했다. (두려워 말라) 나는 단지 너에게(마리얌) 한 깨끗한 아들을 선사하기 위하여 (온) 창조주의 사도일 뿐이다.”

꾸란은 다른 예언자보다도 ‘이사’로 알려진 예수에게 한결 더 영예로운 칭호를 붙인다. 예수는 종, 말씀, 예언자, 사도, 표징, 증인, 의, 긍휼, 축복자, 알라의 측근자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꾸란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지만 그 외의 다른 교리들과 신앙적 전통에 의해 전승된 신조들, 즉, 동정녀의 잉태와 이에 대한 통고, 크리스마스, 심지어는 성모승천에 관한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알라는 각 민족에게 특별한 예언자들을 보내주었는데, 예수도 그 중의 하나이다(수라 19:31; 4:156, 169 참조). 예수는 자신의 예언자적인 사명을 기적을 통해 입증시키며 이적을 행하려 하였는데, 이에 대한 예는 다음과 같다. 예수는 요람에서도 이미 성장한 사람의 권위를 갖고 장성한 사람처럼 이야기 하였다(수라 19:30; 3:46). 진흙으로 새의 본을 떠서 숨을 불어넣어 알라의 승낙으로 새가 되게 하였다(수라 3:49). 나면서부터 맹인과 문둥병자들을 고쳐주셨다(수라 5:110). 그는 하나님의 허락으로 죽은 자를 살리셨다(수라 3:49). 사도들의 요청으로 그는 준비된 식탁을 하늘로부터 내려오게 하였고, 이는 그들에게는 축제이며 그의 사명을 증거하는 식사였다. 무함맏에게 있어서도 예수의 사역은 특별한 것이었다. 예수의 사역과 능력에 비하면 무함맏은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무능력함은 아랍 우상 숭배자들이 기적으로 그의 선지자직을 증명하라는 여러 번의 요구를 한 번도 들어주지 못하는데서 또렷이 나타나고 있다.

무함맏, 꾸란, 모든 무슬림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마씨흐)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전혀 거부하지 않는다. 꾸란과 그들의 이해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한 이름과 같이 불려진다. 그리스도의 특별한 신분이나 사역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무함맏은 어떤 특별한 단어의 의미와 성격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으며, 한 번도 해석을 해 주지도 않는다. 꾸란에서 예수의 메시야에 대한 명칭은 아무런 개념 없이 단순히 하나의 이름처럼 출생 때부터 사용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종일 뿐만 아니라 그의 소유물이다. 예수도 꾸란에서는 다른 예언자들처럼 보통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종 예수라고 말하는 것처럼 피조물에게 붙여지는 알라의 종, 즉 노예(abd)였을 뿐이다. 수라 3:59 “당연히 예수의 예는 알라에 따르면 정확히 아담의 예와 같다. 그를 흙에서 창조하여 후에 “있어라!” 라고 했다. 그래서 그가 있었다.”

수라 19:33은 꾸란에서 예수님의 출생과 죽음과 부활을 매우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내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는 다른 구절들과 첨예하게 대조되는 구절로써 무슬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하고, 꾸란의 허구성과 모순을 드러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수라 19:33 “내가(예수) 태어난 날에도, 죽을 날에도, 다시 부활할 날에도 평화와 안전이 있을 것이다.”

무함맏이 예수를 언급할 때는 항상 마리아와 함께 언급하는데, 심지어는 한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왜냐하면 무함맏에게 있어서 예수는 항상 마리아에게 종속되어 있고, 문법적으로 마리아의 아들 예수, 예수 마리아의 아들, 그리스도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항상 둘을 ‘단수 주격’으로 사용하고 있다. 무함맏은 이 둘 사이를 거의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데, 바로 이 때문에 삼위일체에 마리아를 포함시키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단 꾸란에서 마리아를 언급할 때 한 두번 예수를 언급하지 않고 모세의 아버지 이므람의 딸로 등장시킨다.

꾸란에서는 무함맏이나 무슬림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한 용어들이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 무슬림들은 꾸란에 여러 번 언급된 메시야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와 역할에 대해 거의 지식이 없기 때문에, 구약을 통해 메시야의 의미와 예언과 사역, 그리고 예언의 성취에 대해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이슬람교의 교리에 의하면 예수가 다시 재림하는 것은 인정되지만 기독교 교리에서처럼 영광스러운 심판주로서 자기 왕국을 건설하거나 그 앞에 만인이 무릎을 꿇게 될 주권을 가진 주님으로서가 아닌 그저 평범한 예언자로 이 땅에 이슬람을 철저히 확립시키기 위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예수가 다시 재림하면 돼지를 모두 죽이고 십자가와 십자가가 달린 건물들은 모두 부수고, 그가 기독교인들에게 이슬람교를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더라도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섬긴 것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무슬람들은 예수가 결코 죄인이 아니며, 위대한 기적들을 행하였고, 지금도 하늘에서 살고 있고, 이 땅으로 다시 올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러나 선지자 이상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선지자들의 인장이라고 불리는 무하마드의 권위가 예수의 권위를 능가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꾸란에 언급된 예수의 재림에 대한 구절은 수라 43:61 “당연히 (예수는 종말의) 때에 대한 표적이다.” 이다. 최근에는 예수의 재림과 관련하여 또 다른 거짓말을 지어내고 있는데, 예수가 재림하여 그를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중재와 심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역할은 무함맏의 역할보다 아래에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무함맏은 성경이 말하는 적그리스도이다.

*옮긴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