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종말론 정리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19-06-14 14:48
조회
61

종말론    


종말론(Eschatology)은 개인과 세계의 종말에 관한 진리들을 정리한다.


종말론의 주요 성경 구절들은 마태복음 24장(재림과 그 징조들), 마가복음 9장(최종 상태의 지옥), 누가복음 16장(중간 상태의 지옥), 데살로니가전, 후서(재림, 부활, 휴거), 요한계시록(종말 사건들, 대환난, 재림, 천년 왕국, 천국과 지옥) 등이다.


종말론의 주요 주제들


1. 몸의 죽음과 그 후의 상태


2.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3. 죽은 자들의 부활


4. 천년왕국(千年王國)


5. 마지막 심판


6. 천국과 지옥


1. 몸의 죽음과 그 후의 상태


몸의 죽음은 개인의 종말이다. 몸의 죽음은 무엇이며, 죽은 후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종말론의 제1부는 몸의 죽음, 영혼의 불멸, 죽은 후 영혼의 상태 등에 관한 진리들을 정리한다.


 몸의 죽음


죽음의 의미


인간의 몸의 죽음은, 의학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는 심장의 박동 혹은 맥박이 멈추는 것 혹은 코의 호흡이 그치는 것을 의미하지만, 성경적으로는 영혼이 몸을 떠나가는 현상, 즉 몸과 영혼의 분리를 가리킨다. 전도서 3:20, 21,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도서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누가복음 8: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죽음의 원인


인간에게 몸의 죽음은 어떻게 혹은 왜 왔는가?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인간에게 죽음이 죄 때문에 왔다고 증거한다. 창세기 2: 16, 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로마서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여기에서 말하는 죽음은 포괄적인 깊은 의미가 있는데, 물론 육체적인 죽음을 포함한다. 창세기 3:19, (범죄에 대한 형벌 선언)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5장, "죽었더라. . . . 죽었더라. . . . 죽었더라." 고린도전서 15:21, 22,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 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성도의 죽음의 이유


인간의 몸의 죽음이 죄 때문에 왔다면,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데 왜 죽는가? 성도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도가 죽는 이유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아직 안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되면, 죽은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고 살아 있던 성도들은 죽지 않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어떤 이들은 성도들이 영은 구원받았으나 몸이 아직 구원받지 못하였고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그 몸이 죄값으로 죽는다고 주장한다. 성도들의 몸의 구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로마서 8:23, 24,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救贖)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그러나 성도들의 몸이 그 죄값으로 죽는다는 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赦罪)와 칭의(稱義)는 단지 성도의 영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영육 전체에 적용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육의 모든 죄를, 그리고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사하여 주셨고, 우리의 영뿐 아니라, 영육의 연합체인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몸이 그 죄값으로 죽는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생각이다.


그러면 성도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도의 죽음은 죄의 형벌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단순히 슬프고 두려운 사건이 아니다. 성도는 죽은 후 그 영혼이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성도의 죽음은 오히려 기쁨과 기대와 소망의 사건이다. 구원받은 성도들도 이 땅에서는 여러 가지 고난들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들은 단순히 슬픈 일들이 아니고 오히려 많은 유익이 있는 일들이다. 고난은 성도의 인격을 단련시킨다.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지막 훈련의 과정과도 같다. 그것은 성도에게 더욱 깨어 있게 하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게 하는 큰 유익을 준다.


 몸의 죽음의 중요성


몸의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사실이다.


첫째로, 몸의 죽음은 각 사람의 생애의 마침이 되며, 죽음으로 마감된 그의 일생이 하나님 앞에서 평가될 것이다.


둘째로, 몸의 죽음은 각 사람의 영혼에게 다른 세계로의 이전(移轉)을 의미한다. 의인은 죽을 때 그 영혼이 천국으로, 악인은 그 영혼이 지옥으로 들어간다.


셋째로, 몸의 죽음은 각 사람의 영원한 상태를 고정시키며, 그 후에는 그 상태를 변경시킬 수 없다. 몸의 죽음 이후에는 사람의 구원이 가능하지 않다. 누가복음 16: 26,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고정된 큰 간격이 있어]."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몸의 죽음의 이러한 중요성을 생각할 때, 각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할 것이다. 성도는 자신의 생애를 아름답게 마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매장(埋葬)인가, 화장(火葬)인가?


매장(埋葬)은 성경이 증거하는 가장 오래된 장례 방식이며 그리스도인의 부활 소망에 가장 합당한 방식이다. 화장(火葬)은 이방적 풍습에 기원한다. 칼빈은 말하기를, "죽은 자를 매장하는 풍습을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인정한 것은 그것이 새로운 생명에 대한 보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부득이한 경우에 화장을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성도는 매장을 가장 합당한 장례 방식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영혼의 불멸(不滅)


영혼의 불멸(不滅, immortality)이란, 인간의 몸이 죽은 후 그의 영혼이 계속 지정의의 의식(意識)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단순히 그 후손에 의해 혈통이 이어지거나 그에 대한 기억이나 그의 영향력이 후손들이나 다른 이들에게 남는 정도가 아니고, 그의 영혼 자체가 육신의 죽음 후에도 계속 의식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1, "사람들의 몸들은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며 썩는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들은 죽거나 잠자지 않는 불멸의 실존(實存)으로서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간다."


보편적 신념


인간 영혼의 불멸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일반적 신념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대체로 영혼의 불멸을 긍정하였다. 세계의 각종 종교들은 인간 영혼의 불멸을 인정한다. 고대의 헬라 철학자들도 인간의 영혼은 몸의 죽음으로 분해될 수 없는 불멸적 실체라고 말하였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이 영원을 갈망하는 것은 그것을 충족할 어떤 것 즉 영혼의 불멸을 암시하며, 봄에 만물이 소생하는 자연 현상도 영혼의 불멸을 암시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다른 이들은 우주의 도덕적 질서가 내세의 심판을 요구하며 이에 근거하여 영혼이 불멸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성경적 증거


인간 영혼의 불멸은 성경에 밝히 계시되어 있는 진리이다. 오늘날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영혼 불멸을 부정하지만, 성경은 다음 네 가지 사실들에서 인간 영혼의 불멸을 분명히 증거한다.


첫째로, 성경은 인간의 죽음의 묘사를 통해 영혼의 불멸을 증거한다.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영혼이 몸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는 것으로 묘사한다. 전도서 3:20, 21,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도서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성경은 또 죽은 사람의 영혼을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고 묘사한다. 창세기 15:15,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창세기 25:8,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모이매]". 이것은 분명히 영혼이 무(無)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열조들의 영혼들의 집결지를 암시한다. 분명히, 이러한 묘사들은 사람의 몸이 죽은 후 그 영혼이 계속 존재함을 증거한다.


둘째로, 성경은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한 말씀들을 통해 영혼 불멸을 증거한다. 성도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하여, 시편 73:24은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라고 증거한다. 영광 속으로 영접되는 영혼은 의식을 가진 존재임이 분명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영광이 그에게 영광이 되지 못할 것이다. 또 예수께서도 누가복음 23:43에서 함께 처형되던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낙원의 즐거움도 영혼이 계속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한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5:8에서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말씀했다.


악인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해서도, 시편 9:17은 "악인이 음부[지옥]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라고 증거한다. 또 예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다고 증거한다(눅 16:23). 악인의 죽은 후 형벌과 고통은 영혼 불멸을 전제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형벌과 고통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셋째로, 성경은 부활에 관한 말씀들을 통해서도 영혼 불멸을 증거한다. 다니엘 12:2은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겠고 어떤 이들은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며"라고 증거한다. 사도 바울도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증거하기를,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라고 하였다(행 24:15). 의인과 악인의 부활은 영혼 불멸을 전제한다.


넷째로, 성경은 심판에 관한 말씀들을 통해서도 영혼 불멸을 증거한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러한 말씀은 분명히 영혼 불멸을 전제한다.


 죽은 후의 상태


사람의 몸이 죽은 후부터 부활 때까지의 영혼의 상태를 중간 상태(intermediate state)라고 부른다. 이것은 몸이 부활하는 최종적 상태와 비교한 표현이다.


사람의 죽은 후 영혼의 상태에 대한 성경적 견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1에 잘 진술되어 있다: "의인의 영혼들은 그때에 완전히 거룩해지며 가장 높은 하늘로 영접되는데, 거기서 그들은 빛과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그들의 몸의 충만한 구속(救贖)을 기다리고, 악인의 영혼들은 지옥에 던지우는데, 거기서 그들은 고통들과 전적인 어두움에 머물며 큰 날의 심판 때까지 보존된다. 성경은, 몸과 나뉘인 영혼들을 위해, 이 두 장소들 외에 아무것도 인정치 않는다."


 의인들은 천국으로 영접됨


성경은 의인들이 죽을 때 그 영혼들이 완전히 거룩해져서 천국에 들어가 영광 중에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거기서 몸의 구속(救贖)의 날을 기다린다고 증거한다. 중간 상태의 천국과 최종 상태의 천국은 영광의 정도와 모습은 다를지라도 둘 다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영광의 천국이다.


구약의 증거들을 살펴보면, 우선 에녹과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하였다. 이들의 승천은 구약 성도들의 중간 상태에 대한 예증들이다. 창세기 5: 24,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열왕기하 2:11,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하늘로 갔다. 하늘은 분명히 하나님이 계신 천국 이외에 다른 곳을 가리킬 수 없다.


또한 구약의 여러 구절들도 성도들이 죽은 후 영광과 안식의 세계 곧 천국에 들어감을 증거한다. 시편 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죽은 후 영접될 영광의 처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 천국 외에 어디이겠는가? 시편 16:10, 11, "이는 내 영혼을 음부[지옥]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49: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지옥 혹은 무덤]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이사야 57:2, "그는[그 의인은 죽어]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구약 시대의 선조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했고, 이런 교통으로 그들은 확실히 영생을 누렸고 천국에 들어갔다. 칼빈은 말하기를, "확실히 그들은 하나님의 영생의 나라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 안에 연합되었고, 그 연합은 영생의 복 없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기독교 강요, 2. 10. 7). 구약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했다는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신명기 33:3,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시편 73:23, 24,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 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편 119:103, 127,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 . .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신약은 동일한 사실을 증거한다. 누가복음 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아브라함의 품은 음부[지옥]와 대조되었고 어떤 이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과 같이 음부의 일부분이 아니다. 고린도후서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주님은 천국에 계신다. 빌립보서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히브리서 12: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하늘 곧 천국에!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낙원은 천국과 동의어로 생각된다(고린도후서 12:2, 4, "세째 하늘 . . . 낙원." 요한계시록 2:7,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 히브리서 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악인들은 지옥에 던지움


성경은 악인들이 죽은 후 그 영혼이 지옥에 던지워 고통의 형벌 중에 거하며 거기서 마지막 심판의 날을 기다린다고 증거한다. 악인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이 들어가는 지옥(쉐올 혹은 하데스 ؤՄՇՒ)과 마지막 부활후에 영육의 결합체로서 들어갈 지옥(게헨나 gԽՅՍՍՁ, 불못)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벌 장소이다.


구약은 악인들이 죽은 후에 지옥 곧 형벌의 장소에 던지움을 증거한다. 이사야 24:23,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에 모임같이 모음을 입고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라." 또 구약은 많은 구절들에서 악인들이 죽은 후 음부(陰府, 쉐올)에 들어간다고 표현하는데, 그 음부는 지옥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죽음이 포괄적 의미를 가지듯이, '음부'라는 말은 포괄적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죽은 자의 몸이 들어갈 곳 즉 무덤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또한 죽은 악인의 영혼이 들어갈 곳 즉 지옥도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구절들에서 무덤을 가리키지만, 다른 구절들에서 명백히 악인의 미래의 형벌의 장소 즉 지옥을 가리킨다. 물론 무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히브리어는 케베르 이다. 구약에서는 '음부'(쉐올)라는 말 외에 악인의 미래의 형벌의 장소를 가리키는 다른 말은 없다. 따라서 흠정역 영어성경(KJV)은 '음부'라는 말(쉐올)을 '무덤'(grave)으로 31회, '지옥'(hell)으로 31회, '구덩이'(pit)로 3회 번역하였다. 물론 정확히 구분하는데 어려움이 있겠으나 다음의 구절들은 대표적 예들이다.


 1. 무덤을 가리키는 구절들


창세기 37:35,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야곱이]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죽어, 혹은 무덤에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창세기 44:29, "너희가 이도 내게서 취하여 가려한즉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욥기 17:13-16, "내 소망이 음부로 내 집을 삼음에 있어서 침상을 흑암에 베풀고 무덤더러 너는 내 아비라, 구더기더러 너는 내 어미, 내 자매라 할진대, 나의 소망이 어디 있으며 . . . 흙 속에서 쉴 때에는 소망이 음부 문으로 내려 갈 뿐이니라." 시편 141:7,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같이 우리의 해골이 음부 문에 흩어졌도다." 전도서 9: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이사야 38:10, "내가 중년에 음부의 문에 들어가고 여년을 빼앗기게 되리라." 이 경우들에는 의인과 악인이 다 함께 쉐올에 들어간다.


 2. 악인의 형벌의 장소 곧 지옥을 가리키는 구절들


① 악인에 대한 형벌의 선언에 사용됨.


시편 9:17, "악인이 음부[지옥]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시편 55:15, "사망이 홀연히 저희[악인]에게 임하여 산 채로 음부[지옥]에 내려갈지어다." 이사야 14: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지옥]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만일 쉐올이 단순히 무덤이나 몸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뿐이라면 이 구절들의 선언은 무의미할 것이다.


② 형벌의 장소로 언급됨.


신명기 32:22,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음부[지옥] 깊은 곳까지 사르며." 욥기 26:6, "하나님 앞에는 음부[지옥]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가리움이 없도다." 음부와 멸망의 웅덩이는 동의어로 나타난다. 무덤이 멸망의 웅덩이인가? 잠언 9:18, "오직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가 그 곳에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음부[지옥]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잠언 23:14,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지옥]에서 구원하리라." 에스겔 31:16, 17; 32:21, 27, 애굽, 앗수르, 엘람, 메섹, 에돔의 왕들과 무리들, 즉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 음부[지옥], 지하 구덩이에 내려갔다. 이 구절들에서 음부가 단순히 무덤을 가리키기 어려움은 무덤에는 할례받은 자들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③ 영적, 영원적 죽음과 관계됨.


잠언 5:5, "그 발은 사지(死地)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지옥]로 나아가나니." 잠언 7:27, "그 집은 음부[지옥]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여기에 음부는 죽음과 관계되는데, 그 죽음은 단순히 몸의 죽음이 아니고 영적, 영원적 죽음이다. 왜냐하면 몸의 죽음은 의인도 당하기 때문이다.


④ 하늘 혹은 천국과 대조됨.


시편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지옥]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하늘과 대조되는 곳은 무덤이 아니다. 욥기 11: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지옥]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무덤은 그렇게 깊지 않다. 그러므로 여기 음부는 악인을 위한 형벌의 깊은 옥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신약도 동일한 사실을 증거한다. 구약의 쉐올에 해당하는 신약의 용어는 하데스이며, 신약에서 하데스는 주로 악인의 형벌의 처소 곧 지옥을 가리킨다. 그래서 흠정역 영어성경은 하데스를 '지옥'(hell)으로 10회, '무덤'(grave)으로 1회 번역하였다. 누가복음 16장의 말씀은 가장 명확하다. 누가복음 16:19- 31,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지옥]에서 고통 중에 . . .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 . .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 외에도, 마태복음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지옥]에까지 낮아지리라." 마태복음 16:18,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단순히 육신의 죽음의 문제이겠는가? 영적 죽음, 영원한 죽음(지옥의 형벌)이 문제가 아닌가? 요한계시록 1:18,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지옥]의 열쇠를 가졌노니."


성경에는 음부에 대한 말씀 외에도 악인들이 죽은 후에 형벌의 장소에 던지움을 증거하는 구절들은 있다. 베드로후서 2: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유다서 6, "또 자기 지위[혹은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잘못된 견해들


초대 교회에 유행하던 '제3의 장소설'


초대 교회에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어거스틴 등의 교부들은 의인들과 악인들이 다 지하 음부에 내려가며 단지 각각 구역이 다를 뿐이며 거기에서 의인들은 어느 정도 상을 받고 악인들은 어느 정도 벌을 받으며 거기에서 그들이 다 마지막 심판날까지 기다린다고 보았다. 그들에 의하면, 지하 음부는 의인과 악인에 대한 최종적 보응의 축소판이다. 또 터툴리안은 순교자들의 경우는 즉시 영광 가운데로 영접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제3의 장소설은 누가복음 16:19-31의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 확실히 배치된다. 이 이야기에서 음부와 아브라함의 품은 분명히 구별된다.


 천주교회의 연옥(煉獄, Purgatory)설


천주교회는 완전히 성화되지 못한 신자들은 죽은 후 연옥이라는 곳에 들어가 얼마 동안 불의 시련을 통하여 정화(淨化)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보속(補贖)이다. 천주교 교리서에는, "고백의 성사로 지옥의 [영원한] 벌은 언제나 사함을 받으나, 세상과 연옥의 벌까지 다 사함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 유한한 벌의 사함을 받기 위해서 신부는 보속(補贖)을 정해준다. 고해성사를 받은 사람은, 우리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죽으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자기 죄에서 오는 벌을 보상해야 한다"고 진술되어 있다. 또 그 책은 말하기를, "대죄(大罪)는 없으나 소죄(小罪)가 있거나 속죄를 다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천국으로 직접 가지 못하고 연옥에서 단련을 받는다"고 한다.


초대 교부들 중 어떤 이들은 때때로 정화의 불을 언급했으나, 대 그레고리 교황이 최초로 연옥의 교리를 명확하게 언급하였다. 연옥은 지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추측되었다. 이 교리는 외경 마카비 2서 12:42 -45에 의존한다: "유다(마카비)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은 이천 드라크마를 모아 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 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 . . 그가 경건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갸륵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이 연옥 교리는,


① 성경적 근거가 없는 인간의 헛된 고안물이다.


② 그것은 특히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성경적 복음 진리들에 배치된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인의 공로적 선행이나 교회의 독자적 권세라는 비성경적 교리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세말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인 위클리프와 후스, 그리고 종교 개혁자 루터와 칼빈은 이 연옥 교리를 강력히 반대하였다.


루터가 작성한 1537년의 슈말칼드 신조는, 교황을 "적그리스도," 미사를 "가장 크게 가증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연옥을 "용의 꼬리에서 나온 해로운 새끼 우상"이요 "사탄의 미혹"이라고 선언하였다. 칼빈은 연옥을 '사탄의 치명적 고안물'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로 만드는' 오류로 강력히 비평하였다.


 천주교회의 선조 림보, 유아 림보설


림보(limbus)라는 말은 '변두리'(border)라는 뜻으로서 지옥과 연옥의 변두리를 가리킨다. 천주교회에 의하면, 선조 림보(limbus patrum)는 구약의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구속을 완수하시고 거기에 내려오시기까지 기다렸던 곳이며 '아브라함의 품' 혹은 '낙원'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또 유아 림보(limbus in- fantum 혹은 limbus puerorum)는 그리스도인의 자녀나 이교도의 자녀나 간에 유아시에 죽은 모든 세례 받지 않은 자녀들의 영혼들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하나님을 뵈옵는 복도 없지만, 또한 지옥이나 연옥의 고통 같은 적극적 고통도 없다고 보았다. 그 영혼들은 영원히 그 곳에 거주한다고 한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림보 교리들은 인간적 고안물들에 불과하며 아무런 성경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 선조 림보의 근거로 제시되는 베드로전서 3:18-20은 난해 구절로서 이 교리의 근거가 되기에는 너무 불확실하다. 그 구절의 가장 적절한 해석은 그리스도께서 홍수 전에 생활한, 그리고 베드로 당시에 옥중에 있었던, 그 불순종자들에게 성령으로 노아를 통하여 전파하셨다는 것이다.


유아의 구원 문제에 관하여는 정통 교회 안에 두 가지 견해가 있다.


① 어떤 이들은 유아 시절에 죽는 모든 자들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보았다.


② 다른 이들은 언약의 자손들이 구원 받는 것은 확실하나 그 외의 경우는 불확실하다고 보았다.


바빙크, "언약의 자손들은 그들이 세례를 받았든지 안받았든지 간에 죽으면 천국에 들어간다. 다른 유아들의 최종 상태에 관하여서는 우리들이 계시를 받은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란 어떤 적극적인 판단을 삼가는 것이다." 벌코프, "아직 분별의 연령에 이르지 않은 이방인 자녀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성경상의 명백한 증거는 없다."


 영혼 수면설(psychopannychy)


영혼 수면설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부활 때까지 무의식적 수면 상태에 있다는 견해이다. 이 설은 성경이 죽음을 잠잔다는 말로 표현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마태복음 9:24,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요한복음 11:11-14,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데살로니가전서 5:13,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어떤 재세례파들, 소시너스파,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등이 이 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죽음 후의 상태에 대한 성경 말씀, 특히 누가복음 16:19- 31에 충돌한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 . .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성경은 의인이 영광에 들어가며, 악인이 형벌 아래 던지움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성경에 죽음을 잔다는 말로 표현한 것은 비유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죽음은 과연 잠자는 것과 외형상 비슷하고, 또 죽은 사람들은 부활의 날에 잠을 깨듯 깨어 일어날 것이다.


 멸절설(annihilationism)


멸절설은 악인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벌로 불멸성을 빼앗기고 없어져 버린다는 견해이다. 이 설은 성경에 악인이 멸망하리라는 말씀에 근거한다. 시편 52:5,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그러나 이 견해는 멸망을 멸절(滅絶)이라는 뜻으로 오해한 것으로서 성경에 계시된 지옥의 교리와 충돌한다(막 9장).


조건적 불멸설(conditional immortality)


조건적 불멸설은 하나님께서 영혼 불멸을 신자들에게만 은사로 주신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영혼 불멸의 성경적 증거들에 반대되고, 지옥 교리에도 배치된다.


 제2 시련설


제2 시련설은 구원을 위해 내세에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견해이다.


오리겐, 어떤 재세례파들, 슐라이엘마허, 고데 등이 주장하였다. 그러나,


① 이 견해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


② 더욱이, 이 설은 죽음이 사람의 최종적 상태를 고정시킨다는 누가복음 16:26의 말씀에 충돌된다. 누가복음 16: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고정된 큰 간격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③ 덧붙여, 이 설은 심판의 근거가 사람의 지상 생활이라는 성경 말씀에도 반대된다.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강령설(spiritism)


강령설은 무당(혹은 영매)을 통해 죽은 자들의 영들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예를 들어, 삼상 28장).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행위는 하나님께서 명백히 금하신 바이다. 신명기 18:10, 11,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주문으로 마법을 거는 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죽은 자를 불러내는 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  


2.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세계적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과 마지막 심판이다. 성경은 이미 세상의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야고보서 5:3, 8, 9,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 . .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 . .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베드로전서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요한일서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그러나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시대인 현 시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마지막 심판으로 끝마쳐질 것이고, 그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될 것이다. 종말론의 재2부는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자의 부활과 휴거, 천년왕국, 마지막 심판, 천국과 지옥 등에 관한 진리들을 정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들에게는 복된 소망이지만, 악인들에게는 두려운 사건이다. 디도서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데살로니가후서 1:7-9,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재림의 확실성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진리를 부정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에 반복하여 약속된 확실한 진리이다. 재림은 주 예수께서 친히 하신 약속이다. 특히, 마태복음 24, 25장은 재림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마태복음 24:30,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요한복음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또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시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밝히 증거하였다. 사도행전 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밝히 증거하였다.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전,후서의 특징적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친히 외치는 소리와 천사장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데살로니가후서 1:7, 8,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셔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보복하시리니."


사도 베드로와 야고보도 그의 서신들에서 각각 주의 재림을 증거하였다. 베드로전서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5:7, 8,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특히,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는데, 이 책의 대주제는 재림이다.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재림의 목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은 심판하시는 것이다. 그 심판은 악인에게는 형벌을, 의인에게는 보상을 줄 것이다. 사도신경,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마태복음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마태복음 25:31, 32,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데살로니가후서 1:7, 8, ". . .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데살로니가후서 2:8,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재림의 모습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첫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눈으로 볼 수 있게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에는 '은밀한 재림'이라는 관념이 없다. 마태복음 24:30,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사도행전 1:11,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 . . 그러하리라. 아멘."


둘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영광스러울 것이다. 초림(初臨)의 주님은 낮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의 주님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영광의 왕으로, 능력과 위엄의 심판자로 오실 것이다. 마태복음 24:30,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친히 외치는 소리와 천사장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며"(원문직역).


셋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갑작스러울 것이다. 깨어 있는 자들에게는 물론 그것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지만, 악인들과 형식적인 교인들에게는 그것이 뜻밖의 일처럼 갑작스럽게 닥칠 것이다.


주의 재림의 갑작스러움을 묘사하기 위해 성경에는 '도적같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마태복음 24:36-39, 42, 43, "그러나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 . .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 4,"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정확히 앎이라. . . .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대주의자들은 이 갑작스러움을 어느 때든지, 어느 순간에든지 오실 수 있다는 '임박함'(imminency)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주의 재림은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어느 때든지, 어느 순간에든지 오실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임박한 것은 아니다.


 재림의 시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마태복음 24:36,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복음 13:32, "아들도 모르고." 사도행전 1:6, 7,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주의 재림은 그 시간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것이다. 주께서는 도적같이 오실 것이다.


마가복음 본문에는 '아들도 모른다'고 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생각하기를, '아들도 모른다'는 말은 재림의 시간이 아들이 전달하라고 받은 내용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전달하라고 받지 못했다는 말과 무엇을 모른다는 말은 다르다. 우리는 이 말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계된 말로 이해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으로는 전지(全知)하시지만, 인성으로는 지식에 제한성을 가지신다. 그가 재림의 정확한 시간을 알지 못한다는 것도 그 제한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주의 재림의 시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감추신 것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도행전 1:7,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만일 2천년 전에 주의 재림의 시간을 2천년 후라고 알려주셨더라면, 많은 성도들이 해이해졌거나 낙망하였을지도 모를 것이다. 하나님의 이 비밀은 오히려 성도들에게 유익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재림의 날은 확실히 올 것이다.


 재림의 징조들


주께서는 자신의 재림 직전에 어떤 징조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4, 25장의 내용은 예루살렘 멸망의 시기와, 주의 재림과 세상 종말의 징조에 대해 묻는 제자들의 물음에 대한 주님의 대답이다. 매튜 풀은 주께서 여기에서 말씀하신 종말 징조들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책에서 확증되는 대로 예루살렘 멸망 직전의 상태에서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고 주석하였다. 두 사건은 별개의 것이지만, 서로 비슷한 점이 있다. 예루살렘 멸망은 회개치 않는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 즉 세상 종말의 그림자이었다. 물론 두 사건이 함께 예언되어 있기 때문에 해석상 어려움도 없지 않다.


사도 바울은 재림의 징조에 대해 이렇게 증거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혹 영으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말로나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 . . 이는 먼저 배도[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할 것임이니라"(살후 2:1-8). 사도 요한에게 주신 계시의 내용에는 주의 재림 전에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묘사된 대환난의 시대가 증거되어 있다(계 6- 19장). 이러한 성경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는 다음과 같은 징조들이 있을 것이다.


 1. 거짓 선지자들의 속임과 배교(背敎)


첫째 징조는 거짓 선지자들의 속임과 배교(背敎)이다.


거짓 선지자들의 속임


주의 재림 직전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들이 나타나 많은 사람들을 속이며 미혹할 것이다. 마태복음 24:4, 5, 11, 24,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 . .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 . .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 . .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시키리라." 데살로니가후서 2:9-12,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요한계시록 13:11-18,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 . .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 . . .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의) . . . 오른손에나 이마에 [짐승의] 표[666]를 받게 하고."


사실, 사도 시대의 말기에 벌써 많은 적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났다(요일 2:18; 4:1-3; 요이 7, 9). 또한,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멸망 때 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상 종종 이런 징조들이 나타난 때가 있었다. 종교개혁 때에도 그러하였다. 최종적으로 주의 재림 직전에도 그러할 것이다. 이 종교적 속임과 미혹은 그 어떠한 시험보다도 악하고 치명적이며, 교회를 혼란시킬 것이다.


이단(異端)은 기독교의 바른 교리들, 특히 근본 교리들로부터 탈선된 견해 혹은 그런 견해를 취하는 인물이나 집단을 가리킨다. 역사상 가장 대표적이고 뿌리 깊은 이단은 천주교회이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단번 속죄의 복음을 바로 붙들지 않고 사람의 선행(善行)과 세례 및 고해 성사를 구원에 본질적이라고 봄에 있어서 이단적이고(갈 1:8, 9), 마리아를 중보자, 보혜사, 기도의 대상, 세상의 여왕 등으로 높임에 있어서 우상숭배적이다.


또한, 19세기 이후 나타난 각종 이단종파들은 마지막 시대의 미혹들이다. 세계적 이단종파들로는 윌리암 밀러가 시작한 안식교죠셉 스미스가 시작한 몰몬교찰스 러셀이 시작한 여호와의 증인메리 에디에 의해 시작된 크리스챤 싸이언스문선명의 통일교 등이 있다. 이단종파 연구가 박영관 박사에 의하면, 오늘날 세계적으로 기독교의 이름을 가진 이단종파들은 유럽 50개, 미국 150개, 아시아 50개 등 도합 약 300개가 된다고 한다.


한국의 이단종파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박태선의 전도관, 문선명의 통일교, 이유성의 새일 교회, 유재열의 장막 성전, 정명석의 애천 교회, 조희성의 영생교, 김기동의 베뢰아, 이초석의 한국 예루살렘교회, 박명호의 엘리야 복음선교원, 이장림의 다미 선교회, 이명범의 레마 선교회, 이선아의 밤빌리아 추수군, 박윤식의 대성교회 등.


이단종파들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① 이단종파의 교주들은 대체로 10대에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하나님과의 특별한 직접 교통을 주장한다. 한 보고에 의하면, 1986년 4월 30일 현재 한국에 재림주로 자처하는 자가 35명, 하나님으로 자처하는 자가 12명이라고 하였다.


② 이단종파들은 자기의 집단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배타적 주장을 한다.


③ 이단종파들은 절박한 종말 의식을 강조한다.


④ 이단종파들은 외부와의 교제를 단절하며 현실도피적 경향이 있다.


⑤ 이단종파들에는 빈번히 교주들의 부도덕한 사건들이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단종파들보다 더욱 파괴적인 미혹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천주교회나 이단종파들보다 더 배교적이다. 그것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성경의 근본적 교리들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그것은 성경의 신적 권위와 무오성,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처녀 탄생, 그의 기적들, 속죄의 죽음, 육체적 부활, 승천, 재림 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가 역사상 경험하지 못했던 가장 파괴적인 이단 사상이다.


 배교(背敎, apostasy)


배도(背道) 혹은 배교(背敎)는 신앙의 변절을 가리킨다. 많은 사람들은 이단들의 미혹을 받아 신앙이 변절될 것이다. 마태복음 24:4, 5, 10, 11,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 . .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데살로니가후서 2:3,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도(背道)하는 일이 있고."


현대교회의 상황은 배교적이다. 수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역사적 개신교회들인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루터교 등 거의 모든 대교단들에 들어와 그것들의 목사양성원인 신학교들을 장악했고, 젊은 목사후보생들의 사상을 부패시켰다. 16세기 종교개혁 때와 같이, 20세기 기독교회는 또다시 배교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예언의 성취이다(살후 2:3).


세계의 대교단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고의적으로 포용하거나 자유주의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교단들인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연합 감리교회(UMC),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미국 침례교회(북침례교회, ABC), 남침례교회(SBC) 등이 그러하다. 또 세계 기독교의 주류 교단들은 소위 세계교회협의회(WCC)에 가입되어 있는데, 이 단체는 배교적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 대한기독교감리회(기감측),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등이 교단적으로 자유주의적이고 배교적이다. 물론 그런 교단들 안에도 다수의 보수적 목사들과 교회들이 있겠지만 그 교단들의 목사양성원인 신학교들이 자유주의적이므로 그 교단들은 자유주의적이라고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2. 전쟁, 기근, 질병, 지진, 천재지변


주의 재림의 두 번째 징조는 전쟁, 기근, 질병, 지진 및 천재지변이다.


 전쟁들


주의 재림 전에 전쟁들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요한계시록 6:3, 4의 둘째 인과 붉은 말은 전쟁을 상징하였다. 요한계시록 9:13-16의 여섯째 나팔은 유브라데강 부근에서 2억의 군사가 동원될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언한다. 요한계시록 16:12-16의 여섯째 대접은 유브라데강이 말라 동방의 왕들이 들어옴으로 세계적 연합군이 형성되고 마침내 아마겟돈(므깃도 언덕)에서 마지막 대 전쟁이 일어날 것을 말한다.


역사상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전쟁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전쟁들 중에서도 20세기에 치룬 두 차례의 세계적 전쟁은 처참한 '대전'(大戰, Great War)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죽은 군인들만 거의 천만 명에 이르렀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군인들만 약 천7백만 명이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후 세계는 서방세계와 공산진영으로 서로 대립되었고 아직도 그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이 세계 공산화의 꿈을 버리기 전까지는 그러할 것이다. 한편,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종교적 갈등이 남아 있다. 만일 제3차 세계대전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아마 중동에서부터일 것이며, 그 전쟁은 핵무기와 화학-생물학무기들을 동원한 인류역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처참한 전쟁이 될 것이다. 현대인은 고도로 불안한 전쟁의 위험 속에 살고 있다.


 기근들


주의 재림 전에 또한 기근들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7, "처처에 기근들(리모이 ՋՉՌՏԿ)과." 요한계시록 6:5, 6, 세째 인의 검은 말은 흉년을 상징하였다.


기근들은, 옛날부터 있어왔지만, 근대에 들어와 세계적으로 더욱더 심해진 것 같다. 월드북 백과사전에 의하면, 1870년대에 남부 인도에서 약 5백만 명이 기근으로 죽었고, 중국에서는 9백만 명 이상이 죽었다. 1929년과 30년에는 중국의 황허강의 홍수로 인한 기근으로 약 2백만 명이 죽었다. 1943년 동부 인도 벵갈에 대 기근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50만 명 이상이 기근으로 죽었다. 1960년대 이후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남부 사헬 지역과 남부 아프리카, 특히 이디오피아 등에 기근이 심각하여 수백만 명이 죽었다. 물질 문명이 발달하고 먹을 것이 풍성한 세상 같아도, 지금도 지구 상에는 굶주리는 자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1998년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에 8억 2,800만 명이 기아 상태에 있으며 해마다 1,800만 명이 굶주림과 이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질병들


주의 재림 전에 또한 질병들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7, "기근들(리모이)과 온역들(로이모이 ՋՏՉՌՏԿ--전통본문)과." 요한계시록 16:2은 첫째 대접을 쏟을 때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난다고 증거하였다. 요한계시록 16:10, 11은 다섯째 대접을 쏟을 때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할 것이라고 증거하였다. '헌데'와 '종기'는 원문에서 같은 말이다.


역사상 수많은 전염병들이 있었다. 1300년대에 '흑사병(Balck Death)'으로 불리운 림프선종의 역병으로 유럽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한다. 1603년과 1665년 사이에 같은 병으로 영국 런던에서 15만 명이 죽었고 1894년 후 약 20년 동안 인도에서는 천만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오늘날 고혈압과 당뇨와 암 등의 무서운 현대적 질병들뿐 아니라, 특히 음란과 동성애로 인한, 매독과 임질 등의 성병과, 아직 치료약이 없는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 결핍증)의 확산은 매우 위협적이다. 에이즈는 '20세기의 흑사병'이라고 불리우는데, 1981년 처음 보고된 이후 2001년까지 약 20년 간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 총수는 약 2천백만 명에 이른다. 2001년 12월 현재, 전 세계에 에이즈 감염자수는 약 4천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유엔 에이즈 계획(UNAIDS)은 향후 20년 간 약 7천만 명이 에이즈로 사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1918-1919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flu)으로 사망한 자는 약 2천만 명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아시아 조류독감은 스페인 독감과 비슷한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고 있어서 사람 간에 전염되는 살인 바이러스로 돌변할 위험이 크며, 그럴 경우 엄청난 사망자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지진들


주의 재림 전에 또한 지진들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7, "지진들과." 요한계시록 6:12은 여섯째 인을 떼실 때 큰 지진이 나며 천체에 큰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11:13은 두 증인의 승천 후 큰 지진이 나서 성 10분의 1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7천 명이라고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16: 17-20은 일곱째 대접을 쏟을 때 큰 지진이 있어 큰 성 바벨론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또 큰 우박이 있을 것이라고 증거한다. 큰 지진의 힘은 약 1억 8천만 톤의 티엔티(TNT) 폭탄과 같은데,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의 약 만 배의 힘이라 한다.


월드북 백과사전에 의하면, 역사상 대지진들과 사망자수는 다음과 같다: 주후 526년 시리아 안디옥(터어키) 25만 명, 1268년 소아시아 실레시아 6만 명, 1290년 중국 북동부 10만 명, 1556년 중국 중앙부 솨안키(산시성) 83만 명, 1667년 코카시아(소련 남서부) 8만 명, 1693년 이태리 카타니아 6만 명, 1730년 일본 혹가이도 13만 7천 명, 1737년 인도 칼커타 30만 명, 1755년 포르투갈 리스본 6만 명, 1783년 남부 이태리 5만 명.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대지진들이 더욱 빈번해졌다. 20세기에 5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지진들은 24개 이상이 되며, 그 중 2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것은 14개나 된다. 최근 50년 간 전 세계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7 이상의 강진은 500여 회라고 한다. 한국도 1970년과 1980년대 연간 지진 발생 건수가 20-25건이었다가 2000년 40-45건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20세기에 5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지진들을 꼽아본다면, 1908년 이태리 멧시나 7만 5천 명, 1920년 중국 중앙부 간서 20만 명, 1923년 일본 도오꾜-요코하마 14만 2,802명, 1932년 중국 중앙부 7만 명, 1935년 인도 쿠에타(지금은 파키스탄 지역) 6만 명, 1970년 페루 침보테 6만 6,794명, 1976년 중국 북동부 헤베이 24만 명 등이다.


최근에 일어난 지진들의 장소와 사망자 수를 보면, 1988년 아르메니아 2만 5천 명 이상, 1990년 이란 서북부 카스피해 인접지역 2만 5천 내지 4만 명, 1993년 인도 7,601명, 1995년 일본 고오베 6,424명, 러시아 사할린도 네프트골스크 2천 명 이상, 1998년 아르메니아 2만 5천 명, 아프가니스탄 3,500명, 아프가니스탄 5천 명, 1999년 터키 1만 5천 명, 대만 2천 명 이상, 2003년 12월 이란 남동부 밤(Bam)시 부근 4만여 명, 2005년 10월 파키스탄 카슈미르 부근 약 4만여 명 등이다.


 천재지변


마태복음 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또 요한계시록 8장의 일곱 나팔 재앙들의 예언은 주의 재림 직전에 천재지변이 일어날 것을 보인다.


첫째 나팔의 재앙은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는 것이다. 그 불로 인해 땅의 3분의 1과 나무들의 3분의 1과 모든 풀들이 태워질 것이다. 그것은 지구 전체에 대 화재 사건이 될 것이다.


둘째 나팔의 재앙은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다. 그 일로 인해 바다의 3분의 1이 피가 되고 바다의 생물들의 3분의 1이 죽고 배들의 3분의 1이 파괴될 것이다.


셋째 나팔의 재앙은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강들과 물샘에 떨어지는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큰 별은 강들과 물샘들의 3분의 1을 쑥과 같이 쓰게 만들 것이며 그 쓴 물을 마시는 자들은 죽게 될 것이다. 넷째 나팔의 재앙은 해와 달과 별들의 3분의 1이 어두워지는 것이다. 빛의 양이 줄고 어두움이 늘어남으로써 지구 전체의 온도는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천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소행성이란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태양 둘레를 공전하는 수십만개의 작은 별들을 가리키며 지구에 근접하는 것들로 지구 전체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은 240개 가량이라고 한다. 2002년 7월 조선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2002 NT7이라는 소행성은 직경이 2km로 추정되며 초속 약 28km(시속 약 100,800km)로 달리고 있는데 2019년 2월 1일에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것의 충돌 충격은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원자폭탄 2천만 개의 위력이라고 하며 그때 엄청난 먼지 구름이 대기권을 덮으므로 태양이 가리워 1년 이상 겨울이 지속될 것이며 충돌 지점의 국가들이 초토화 되는 것은 물론 대규모 해일이 일어나고 오존층이 파괴되므로 2년 간 자외선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생물체들에 돌연변이와 암과 백내장 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3. 적그리스도의 나타남과 핍박


주의 재림의 세 번째 징조는 적그리스도의 나타남과 핍박이다. 성경은 주의 재림 전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어떤 정치적 인물일 것이다. 요한일서 2:18, 22,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敵)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데살로니가후서 2:3, 4,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背道)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하나님처럼)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요한계시록 13:1-7,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 . .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초대교회 때의 로마 황제, 중세시대의 로마 교황는 예비적 징조 혹은 단계이었다. 그때 진실한 성도들은 고난과 핍박을 당하였었다. 20세기 초 우리 선조들은 일본 통치시대의 신사참배 강요와 이북 공산당의 핍박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주의 재림 직전에 세계적 전제국가, 아마 공산국가의 통치자의 출현으로 이 예언은 절정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이 때 진실한 성도들, 즉 짐승의 표(666)를 받지 않는 자들은 심한 미움과 큰 핍박과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4. 세계복음화와 이스라엘의 민족적 대회심


주의 재림의 네 번째 징조는 세계복음화와 이스라엘의 민족적 대회심이다. 주의 재림 전에 세계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복음화란 세계에 복음이 널리 증거되어 택한 백성이 다 구원얻게 되는 것을 말한다.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은 세계복음화이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의 배교적 상황으로 인하여 낙망치 말고 성실히 이 일에 힘써야 하겠다. 세계복음화는 교회의 최대의 과제이다.


온 세상에 복음이 충만하게 전파되어 충만한 수의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민족적 대회심이 있을 것 같다. 로마서 11:25, 26,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이 종말의 때에 이스라엘 민족의 대규모적 회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온 이스라엘'이 선택된 충만한 수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적, 국가적 대회심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재림 혹은 휴거의 날자를 안다고 주장하는 자들


주장의 근거들


어떤 이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혹은 휴거의 날자를 예측하거나 혹은 단정하여 말하였다. 예를 들어, 한국의 이장림 목사와 다미 선교회는 1992년 10월 28일에 주 예수께서 공중에 재림하시고 신자들은 휴거된다고 말했었다. 그들의 잘못은 시간이 지나자 판명되었지만, 다시 그런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들의 주장의 잘못된 근거들을 검토해보자.


첫째로, 그들은 인류 역사의 제7,000년은 안식의 시대이라고 해석하였다. 6일간의 창조후 제7일의 안식일이 있었듯이, 성경에 하루가 1,000년 같다고 하였으므로(벧후 3:8) 6,000년 인류 역사가 끝난 후 제7,000년에는 안식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7년 대환난 기간이 있으므로, 1999년-7년=1992년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 곧 휴거의 해가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둘째로, 그들은 제70회 희년이 인류 역사의 완성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들은 율법을 받고 성막을 세운 때를 주전 1450년으로 잡고 그때로부터 계산하여 주후 2000년은 70회 희년이 되므로, 1999년-7년=1992년이 휴거의 해가 된다고 보았다.


셋째로, 그들은 마태복음 24:32-34의 말씀이 그것을 보인다고 해석하였다. 그들은 무화과나무가 입사귀를 내는 것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가리키며, 그 후 한 세대는 1948년+1년+50년(한 세대)=1999년이며, 따라서 1999년-7년=1992년은 휴거의 해가 된다고 보았다.


넷째로, 무엇보다도 그들은 주의 공중 재림 곧 휴거의 날자를 하나님과 천사들의 직접 계시들에 근거하였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과 천사들의 직접적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반박


그러나 이상의 근거들은 다음과 같이 반박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로, 인류 역사 제7,000년의 안식이나 제70회 희년 등에 대한 생각은 그럴 듯한 추측에 불과하며 성경의 명확한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


둘째로, 7년 환난 기간이란 신약에 근거하지 않으며, 다니엘 9장의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긴 간격을 두는 세대주의적 해석에 근거하는데, 그것은 확실한 해석이 아니다.


셋째로, 마태복음 24:32- 34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상징한다는 해석은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왜냐면 그 본문의 병행구절은 무화과나무가 입사귀를 내는 것과 여름, 이 모든 징조들과 재림이기 때문이다. 무화과나무가 입사귀를 내는 것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은 이 구절의 병행론에 맞지 않는다.


넷째로, 무엇보다도 우리는 성경 외의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들을 인정할 수 없다. 더욱이, 그 직접적 계시들이 성경의 명확한 말씀과 충돌될 때에야 두말 할 것도 없다. 주께서는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다(마 24:36).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진술과 같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이전 방식들이 신약이 완성된 사도 시대 이후에는 끝났다고 믿는다.


 재림의 실제적 교훈들


예수께서는 자신의 재림을 약속하시면서 깨어 있으라고 교훈하셨다. 마태복음 24:42, 4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 . .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깨어 있는 것은 정상적 신앙 생활을 의미한다. 즉 성경에 계시된 대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고, 성경의 교훈대로 바르게 사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의 정상적 신앙 생활의 주요한 요소는 거룩과 사랑의 삶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우리가 거룩과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3:12, 13,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너희 마음을 거룩함에 흠이 없게 세우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성도의 유일한 소망이며 그의 재림을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므로, 성도는 어떤 환경과 처지 속에서도 참고 재림의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 특히 고난과 핍박 중에도 참고 견디어야 한다. 히브리서 10: 36, 37,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이는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3. 죽은 자들의 부활



죽은자들의 부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몸의 부활의 교리를 부정한다.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의 교리는 기독교의 근본교리에 속한다. 히브리서 6:2,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라." 사도신경,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마지막 날에, 살아있는 자들은 죽지 않고 변화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죽은 자들은 본래의 몸과 같은 몸들을 가지고 일으킴을 받을 것인데, 그것들은 비록 다른 특질들을 가질지라도 결코 다른 몸들이 아니며 그들의 영혼들과 영원히 다시 결합될 것이다"(32:2).


 부활의 대상   


마지막 부활의 대상은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이다. 모든 의인들뿐 아니라, 모든 악인들도 포함된다의인들은 영생(永生)의 복된 부활이요, 악인들은 영벌(永罰)의 심판의 부활이다. 죽은 자들의 부활은 구약과 신약의 분명한 진리이다. 출애굽기 3:6,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마태복음 22:29-32,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 . .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다니엘 12:2, "자는 자 중 많이 깨어 영생을 얻을 자도 있고 영원한 수욕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요한복음 5:28,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사도행전 24: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을 강하게 증거한 장이다. 요한계시록 20:12-15에는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부활의 때


부활의 때는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에 따라 두 가지의 견해로 나뉜다.


무천년설이나 후천년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의인들과 악인들이 모두 동시에 부활한다. 이것을 '일반 부활'이라고 부른다.


한편, 역사적 전천년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의인들이 부활하고 천년왕국이 있고 그 후에 악인들이 부활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의인들의 부활의 때와 악인들의 부활의 때는 천년의 간격이 있다. 즉 이 견해는 두 번의 부활 사건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부활체의 성격


부활체는 본래의 몸과의 동일성을 가진다. 즉 부활이란 죽은 그 몸이 다시 사는 것이다. 부활의 본래적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2, ". . . 모든 죽은 자들은 본래와 같은 몸들을 가지고 일으킴을 받을 것인데, 그것들은 비록 다른 특질들을 가질지라도 결코 다른 몸들이 아니며 그들의 영혼들과 영원히 다시 결합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체와 본래의 몸의 동일성을 부정하려는 여러 이론들은 부활에 대한 의심과 불신앙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현대판 사두개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부활체는 본래의 몸과 다른 변화된 특질을 가질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3, "불의한 자들의 몸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치욕을 위해 일으키심을 받을 것이지만, 의인들의 몸들은 그의 영으로 영예를 위해 일으키심을 받고 그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을 닮게 될 것이다." 의인들의 부활체는 영광스러운 몸일 것이다. 고린도전서 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우리는 '신령한 몸'에 대해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영이 아니고, 그렇다고 현재와 같은 육도 아니다. 고린도전서 15:51, 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빌립보서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 17, "주께서 친히 외치는 소리와 천사장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 . . 공중에서 주를 만나기 위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갈 것이며." 위의 말씀들은 의인들의 부활체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같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광스런 몸이 될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악인들의 부활체는 심판을 받을 몸일 것이다. 다니엘 12:2, "자는 자 중 많이 깨어 영생을 얻을 자도 있고 영원한 수욕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요한복음 5:28,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휴거(携去, Rapture)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 죽은 성도들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변화되어 공중에 끌어 올려 재림의 주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공중에 끌어 올림을 받는 것'을 휴거(携去, rapture)라고 말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17, "주께서 친히 외치는 소리와 천사장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공중에서 주를 만나기 위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갈 것이며." '휴거'라고 불리우는 이 주제는 보수적 교회들 안에서 특히 세대주의자들로 인해 현대적 변론의 문제가 되었다. 휴거가 있을 것인가? 있다면, 그것은 대환난 전인가, 후인가?


 환난 전(前) 휴거설


환난 전 휴거설이란,


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공중에의 은밀한 재림과 지상에의 영광의 재림의 두 단계로 이루어지며,


② 그 두 사이에(이 기간을 7년이라고 봄)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후,


③ 그리스도인들이 대환난 전 즉 주께서 공중에 은밀히 재림하실 때 죽은 자들은 부활하고 산 자들은 변화되어 하늘로 들리움 받는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대환난에 참여치 않는다.


이 견해의 근거로 제시된 중요한 점들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① 재림의 돌연성. 예수 그리스도는 곧 혹은 어느 때든지 오실 수 있기 때문에 대환난 후에 오실 수 없고 대환난 전에 오셔야 한다.


② 대환난 시대의 성격. 요한계시록 6-19장에 묘사된 대환난 시대는 하나님의 진노의 시대이다. 요한계시록 8:13, "땅에 있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면한 자들이므로(롬 5:9) 거기에 참여할 수 없다.


③ 교회라는 말이 안나옴. 요한계시록 4-19장에서 교회라는 말은 안나오고 성도라는 말만 나오는데, 이것은 대환난 기간 중 교회가 휴거되고 이스라엘 백성만 남기 때문이라고 본다. 요한계시록 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요한계시록 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그러나 이 견해는 다음과 같이 비평된다.


첫째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갑작스러운 것이지, 반드시 어느 때든지 오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재림 전의 징조들과 대환난에 대해 말씀하셨고 그 후에 있을 자신의 재림을 말씀하시면서 '도적같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재림의 갑작스러움 혹은 돌연성의 개념에 근거하여, 재림이란 대환난 후일 수 없고 대환난 전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문맥적 오류이며 논리적 비약이다.


둘째로, 대환난 시대가 하나님의 진노의 시대라는 말은 악인들을 향한 표현이지 신자들을 향한 표현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대환난 시대에 성도들이 있고 더욱이 그 환난 중에도 성도들에게 피할 길이 있다고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9:4, (황충 재앙)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들만 해하라." 요한계시록 16:2, (첫째 대접)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그러므로 환난 시대를 묘사하는 '진노'라는 말은 악인들을 향한 표현이지 성도들을 향한 표현이 아니다.


셋째로, 신약시대에는 성도와 교회가 같은 무리를 가리킨다. 신약시대에는 성도가 곧 교회요 교회가 곧 성도이다. 로마서 1: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 . .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대환난 시대에 남아 있는 성도들은 신약교회의 한 지체나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더욱이, 요한계시록은 교회에 주신 책이므로 이 책의 내용이 교회와 상관 없다고 보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넷째로, 무엇보다 주님의 재림을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의 두 단계로 구별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성경에 밝히 계시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두단계적 사건이 아니고 볼 수 있는 단일한 사건이다. '공중에의 은밀한 재림'이라는 개념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성경에 밝히 계시된 그리스도의 재림은 볼 수 있게, 영광스럽게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실상, 휴거에 대해 언급한 데살로니가전서 4:16의 구절은 은밀한 재림 때가 아니라 '시끄러운' 재림 때에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증거한다.


이중적 혹은 두 단계적 재림설은 교회 역사상 19세기 초에 처음으로 나타난 견해이다. 최초의 주장자는 1812년 스페인어로 영광과 위엄 중에 오실 메시야라는 책을 쓴 칠레 출신 예수회 신부 임마누엘 라쿤자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1826년 영광과 위엄 중에 오실 메시야라는 제목으로 스코틀란드 장로교 목사 에드워드 어빙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다. 그 후 1830년 4월 스코틀란드 포트 글라스고우에서 마가릿 맥도날드라는 한 젊은 여자는 예언과 환상을 통해 은밀한 공중 재림과 부분적 휴거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세대주의의 본산지인 영국 플리머스 형제단 운동의 핵심적 지도자인 죤 다비는 에드워드 어빙과 잘 아는 사이이었고, 마가릿 맥도날드와도 교제가 있었다. 다비는 1879년에 쓴 그의 편지에서 주께서 성도들을 위해 오시는 은밀한 공중 재림의 진리는 1827년에 그를 자유케 한 진리이었다고 기록하였다. 다비가 채택한 이 견해는 스코필드와 그의 관주 성경을 통해 미국과 세계에 널리 퍼졌다.


 부분적 휴거설


부분적 휴거설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은밀히 재림하실 때 오직 승리적 신앙 생활을 했던 신자들만 휴거되며 지상에는 대환난이 있어 승리적 신앙 생활을 하지 못했던 신자들이 그 환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것은 환난전 휴거설의 한 변형된 형태이다.


주장자들은 그들의 견해의 근거로 몇 개의 성경 구절들을 제시하였다. 누가복음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히브리서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관계 없이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요한일서 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고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이 견해는 다른 성경 구절들과 조화되지 않는 것 같다. 고린도전서 15:51, "우리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부분적 휴거설은 마치 개신교적 연옥설과 같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 사람에게는 구원과 멸망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이지 그 중간은 없다.


 환난 중간 휴거설


환난 중간 휴거설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은밀히 재림하시고 7년 대환난이 시작된 후, 그리스도인들은 환난 기간 중간, 즉 전 3년 반 직후에 휴거된다는 견해이다. 환난전 휴거설의 또 하나의 변형된 형태이다.


주장자들은 그들의 견해의 근거로서 요한계시록 11:3-12에 나오는 두 증인이 신약교회를 상징하고 그들의 승천은 곧 교회의 휴거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에 대한 환상은 상징적 내용이다. 계시록의 다른 여러 부분들과 같이 그것에 대한 해석도 독단적이기 어렵다고 본다. 아마 이 두 증인은 여섯째 나팔 재앙 후 환난시대 동안에 사역하는 두 인물을 가리킬 것이다. 여하튼, 환난 중간 휴거설의 근거는 계시록의 상징적 사건에 대한 한 해석에 근거하므로 확실한 근거가 되기 어렵다.


 환난 후(後) 휴거설


환난 후 휴거설이란, 대환난 시대가 지난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회적으로 영광스럽게, 눈으로 볼 수 있게 다시 오실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죽은 자들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자들은 변화되어, 하늘로 들리움 받아 재림의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견해이다. 이것이 성경적이며 역사적인 견해이다. 전통적 종말론은 어느 파의 것이든지 주의 재림의 단일성과 재림시의 휴거를 믿었다. 단지 세대주의적 휴거론의 등장으로 휴거에 대한 여러 견해들이 나뉜 것이었다.


그러므로 전통적, 성경적 개혁신학에서 휴거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휴거는 성도들이 재림의 주님을 영접하는 사건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대주의 신학에서처럼 '대환난을 피하기 위한' 사건이거나 그런 의미에서의 복된 소망이 아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17, "이는 주께서 친히 외치는 소리와 천사장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아있는 자들은 저희와 함께 공중에서 주를 만나기 위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갈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가 주와 함께 항상 있을 것임이니라." 마태복음 24:31,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4. 천년왕국(千年王國)


천년왕국(millennium)의 문제는 요한계시록 20:1-10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요한계시록 20:1-10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요한계시록 20장의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인가, 아니면 무엇을 상징적으로 보이는 것뿐인가? 또 그것은 시간적으로 요한계시록 19장에 이어지는 어떤 사건을 나타내는가, 아니면 시간적 전후 관계가 없는 독립적 어떤 사건이나 사실에 대한 묘사인가?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신약 다른 부분들, 특히 복음서들와 바울 서신들의 말씀들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천년왕국의 해석에 대하여, 무천년설, 후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등 네 가지 견해가 있다.


 무천년설(無千年說, Amillennialism)


무천년설이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이 문자적으로 '천년' 동안의 지상 왕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단지 신약교회 시대에 대한 상징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이것은 어거스틴, 루터, 칼빈, 카이퍼, 바빙크, 벌코프 등이 가졌던 견해이었다.


무천년설의 근거로 제시되는 바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신약의 다른 곳에 천년왕국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는 성경이 전체적으로 의인과 악인의 부활과 심판을 동시에 일어날 사건으로 묘사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5:28, 29,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다니엘 12: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마태복음 13:40-43,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의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 데살로니가후서 1:7-9,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베드로후서 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모든 것이 불타버리리라]. . . .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나 무천년설은 다음과 같이 비평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요한계시록이 종말 예언에 있어서 독특한 성격과 권위를 가지기 때문에, 비록 신약의 다른 곳에 천년왕국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할지라도 천년왕국은 가능하다고 본다. 요한계시록 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더욱이, 요한계시록 22:18, 19에서 주께서는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말씀들을 가감(加減)하는 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셨다.


둘째로, 요한계시록 20장의 본문에 6번이나 반복하여 언급된 '천년'을 단순히 신약교회의 시대라고 해석하는 것은 근거가 매우 약해 보인다.


셋째로, 무엇보다 무천년설은 요한계시록 20:2, 3의 '사탄의 결박'에 대해 적절하게 해석하기 어려워 보인다. 요한계시록 20:2, 3,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과연 신약교회의 시대가 여기 묘사된 대로 사탄이 결박된 시대라고 묘사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요한계시록 6-19장의 환난 시대가 사탄의 활동과 미혹이 존재하는 시대이며 그것이 신약교회의 시대에 포함되어야 할 것인데, 그렇다면 그 시대가 어떻게 동시에 천년왕국의 시대로 묘사될 수 있는가?


 후천년설(後千年說, Postmillennialism)


후천년설이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며 그 천년왕국 후에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후천년설에 의하면, 그 천년왕국은 신약교회 시대의 후기(後期)에 있을 기독교 황금시대를 가리킨다. 이 견해는 어거스틴, 촬스 핫지, 윌리암 쉐드, 로버트 댑니, 벤자민 워필드 등이 가졌던 견해이었다. 전통적으로, 장로교회 혹은 개혁교회는 천년왕국에 대하여 무천년설 혹은 후천년설을 취하였다.


후천년설의 근거로 제시되는 바는 무천년설에서 제시된 것들을 포함한다. 즉, 신약의 다른 곳에 천년왕국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과 성경이 전체적으로 의인과 악인의 부활과 심판을 동시에 일어날 사건으로 묘사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거기에 더하여, 후천년설은 요한계시록 20장 본문의 '사탄의 결박'을 좀더 적절히 해석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들에 의하면, 천년왕국은 신약교회시대 전체가 아니고 그 시대 후기에 기독교 복음이 꽃피고 기독교가 온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시대를 상징한다.


그러나 후천년설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어려움을 가진다.


첫째로, 후천년설은 성경의 말세의 징조들과 조화되지 않는 것 같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말세에 어려운 시대, 믿음이 없는, 배교적인 시대가 올 것을 말한다. 마태복음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디모데후서 3:1, 2, "말세에 고통하는[어려운] 때가 이르리니 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디모데후서 4:3, 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요한일서 4:1, 3,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 . .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둘째로, 후천년설은 요한계시록 19, 20장의 사건들의 순서에 조화되지 않는 것 같다.


요한계시록의 사건들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대환난시대(6-18장),


② 그리스도의 재림(19:11-16),


③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멸하심(19:19-21),


④ 천년 동안의 사탄의 결박(20:2),


⑤ 첫째 부활(20:4, 5),


⑥ 천년 동안의 왕노릇(20:4, 6),


⑦ 천년 후 사탄이 놓여 땅의 백성들을 미혹하여 전쟁케 함(20:7-9),


⑧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함(20:9),


⑨ 사탄이 불못에 던지움(20:10),


⑩ 마지막 심판(20:11-15).


그러나, 후천년설은 ④, ⑤, ⑥, 즉 천년 간 사탄의 결박, 첫째 부활, 천년 동안의 왕노릇을 ①, 즉 대환난시대보다 앞에 두며(즉 대환난을 재림 직전의 징조로 봄), ⑦과 ⑧, 즉 천년 후 사탄이 놓여 땅의 백성들을 미혹하여 전쟁케 함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함을 ①과 ②, 즉 대환난시대와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일한 사건으로 보아야 할 것이지만, 그것은 본문의 해석상 매우 부자연스럽다.


셋째로, 후천년설은 특히 1, 2차 세계대전 이후 현 시대의 불안한 상황과 조화되지 않는 것 같다. 21세기는 밝은 전망보다는 어두운 전망을 가지고 있다. 현대는 핵 전쟁의 위협과, 인구, 식량, 자원, 공해, 및 마약과 동성애 등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있다. 이것은 신약교회시대 후기의 복음의 황금시대라는 관념과 조화되지 않는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전천년설(前千年說)이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천년왕국 전에 주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전천년설에는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있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란 천년왕국을 유대인들의 천년왕국, 즉 구약적 성격의 천년왕국으로 본다. 이 견해에 의하면, 구약 중에서 특히 이사야(사 65:20, 25)와 에스겔 등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들은 천년왕국에서 문자적으로 성취되며 예루살렘 성전은 재건되고 짐승들을 잡아 드리는 제사들과 구약의 절기들은 회복된다고 한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들은,


첫째로, 요한계시록 19, 20장을 시간 순서로 보아서 19장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20장에 예언된 천년왕국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구약의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는 것이다. 세대주의의 특징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문자주의를 고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루어질 천년왕국의 성격은 구약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몇 가지 반론과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 같다.


첫째로,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에 대한 문자적 해석은 그러하다 할지라도, 신약의 그 외의 부분들은 전체적으로 천년왕국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고 또 예수께서 재림하심으로 의인과 악인이 동시에 부활하고 동시에 마지막 심판을 받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을 쉽게 무시할 수없을 것이다.


둘째로, 특히 구약 예언들에 대한 지나친 문자적 해석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본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은 일반적으로 건전한 해석 원리이지만, 성경의 예언들과 상징들에 대하여는 문자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신약 자체는 때때로 구약을 영적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바울은 갈라디아서 3:29에서 예수 믿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점은, 신약이 구약시대의 성전 제도, 제사들, 절기들 등에 관한 소위 의식법(儀式法)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인하여 폐지된 규례들로 선언한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2:16, 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히브리서 8: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신약시대 말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후 천년왕국시대에 구약의 성전 제도와 제사들, 절기들이 다시 부활될 것이라는 구약 예언들의 문자적 해석은 신약 계시의 빛 아래서 용납되기 어렵다. 구약의 의식법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폐지되었는데, 어떻게 다시 그 그림자와 같은 법들에 규정된 의식들이 그것의 실체(實體)가 오신 이후에도 행해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세대주의적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역사적 전천년설(Historical Premillinnialism)


역사적 전천년설은 주님의 재림을 천년왕국 전에 있을 것이라고 보는 점에서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같으나, 천년왕국을 신약적 성격의 나라로 보는 점에서 세대주의적 견해와 다르다. 이 견해는 초대교회에 저스틴,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등의 교부들이 가졌던 견해이었기 때문에 '역사적' 전천년설이라고 불리운다. 근대에 벵겔, 고데, 랑게, 알포드, 엘리콧, 잔 등 성경주석가들이 이 견해를 취하였다. 한국 장로교회는 초대 평양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 이눌서(레이놀드) 선교사에 의해 전천년설을 전수받았고 그 후 총회신학교에서 오랫 동안 조직신학을 가르쳤던 박형룡 박사에 의해 이 견해가 전수되었다.


역사적 전천년설의 근거는 이 견해가 요한계시록의 본문에 가장 적합한 해석일 것이라는 점이다.


요한계시록의 사건들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대환난시대(6-18장),


② 그리스도의 재림(19:11-16),


③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멸하심(19:19-21),


④ 천년 동안의 사탄의 결박(20:2),


⑤ 첫째 부활(20:4, 5),


⑥ 천년 동안의 왕노릇(20:4, 6),


⑦ 천년 후 사탄이 놓여 땅의 백성들을 미혹하여 전쟁하게 함(20:7-9),


⑧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함(20:9),


⑨ 사탄이 불못에 던지움(20:10),


⑩ 마지막 심판(20:11-15).


이 사건들을 문자적 순서로 보면, 사탄이 결박되는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후, 즉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지옥 불못에 던지운 직후이다. 재림의 주께서 사탄으로 하여금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심으로 온 세계에는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이다.


천년왕국에서 심판의 권세를 받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할 자들(4절)은 누구인가? 그들은 순교자들과,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자들 곧 참된 성도들이다.


첫째 부활(5절)은 예수 믿는 성도들의 부활이다. 그러면 둘째 부활은 악인들의 부활을 가리킬 것이다. 또 부활한 성도들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그때에 세상에 남아 있는 믿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이 8절에 나오는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이며 마지막으로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둘러 전쟁을 일으킬 자들이다.


그러나 역사적 전천년설에도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요한계시록 외의 신약은 전체적으로 천년왕국에 대해 침묵한다. 또 신약의 종말론에서 천년왕국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매우 약하여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과연 그런 임시적, 그러나 천년 동안의 긴, 왕국이 필요하며 의미가 있는 것인가? 더욱이, 신약이 전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의인과 악인이 다 부활하고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점은 천년왕국에 대한 문자적 신념을 약화시킨다.


천년왕국은 성경의 교리 중에서 매우 난해한 문제이다. 세계 장로교회의 전통적 견해는 무천년설 내지 후천년설이었고, 한국 장로교회의 전통적 견해는 역사적 전천년설이었다. 고(故) 박형룡 박사는 이런 어려움을 인식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천년기를 중심으로 하여 갈라진 재림 삼론은 교파의 구별 없이 정립(鼎立, 솥발과 같이 대립함)하여 개인들의 자유 취사를 기다리게 된다. 그것은 대교파들의 신경(信經)들은 이 삼론에 대하여 취사를 행하지 않은 고로 아무라도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이것들의 시비(是非)를 결정하기 곤란한 때문이다. 다른 여러 가지 근본적인 신념들에서 서로 동의하는 같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도 재림과 천년기 문제에 대해서는 삼론의 정립(鼎立)함을 피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과 신도들은 이 삼론의 하나를 자유로 취하되 다른 이론을 취하는 자들에게 이해와 동정으로 대하여야 할 것이다."


5. 마지막 심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하시는 일은 마지막 심판의 일이시다. 그는 심판주로서 오시는 것이다. 마지막 심판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마지막 대 사건이다. 구약의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것은 마지막 심판의 예표이었다(벧후 3:6, 7).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은 벨릭스 총독에게 장차오는 심판을 강론하였다(행 24:25). 히브리서 6:2은 마지막 심판이 기독교의 근본 교리에 속함을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끝에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한 큰 사건으로서 흰 보좌에 앉으신 이의 심판 광경이 기록되어 있다(계 20:11-15).


심판주


마지막 심판 때에 심판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신약은 이 사실을 밝히 증거한다. 세례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메시야께서 장차 "손에 키를 들고 자기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증거하였다(마 3:12).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심판을 아들에게 다 맡기셨다고 증거하셨고(요 5:22) 그가 다시 오실 때,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나누듯이, 영생할 자들과 영벌을 받을 자들을 나누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5:31-48). 사도 베드로는 예수께서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재판장이심을 증거하였다(행 10:42).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셨다고 증거하였다(행 17:31). 고린도후서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심판대를 '그리스도의 심판대'라고 표현한 것은 예수께서 마지막 심판 때에 심판자가 되심을 나타낸다.


천사들과 성도들은 마지막 심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돕는 자들이 될 것이다. 마태복음 13:41, 42,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고린도전서 6:2, 3, "성도들이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 . . 우리가 천사들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심판의 대상


마지막 심판의 대상들은,


첫째로, 사탄과 악령들이다. 그들은 타락하고 변절한 천사들이다. 선한 천사들은 심판에서 제외된 듯하다. 사탄과 악령들이 심판을 받을 것을 보이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마태복음 8:29, "저희가[귀신 들린 자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마태복음 25:41,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고린도전서 6:3, "우리가 천사들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베드로후서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유다서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요한계시록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심판의 대상은 또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그들 가운데는 그 때에 살아 있는 자들이나 이미 죽었던 자들이 다 포함된다. 사도행전 10:42,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디모데후서 4: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베드로전서 4:5,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진술할 것이니라." 요한계시록 20:12-15,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심판의 대상인 모든 사람들 속에는 일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도 포함된다. 마태복음 25:34,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로마서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전통본문). 고린도후서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예수께서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은 심판대에 서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뜻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요 5:24).


심판의 때


마지막 심판의 때는 죽은 자들의 부활 직후 어느 때일 것이다. 요한복음 5:28, 29,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계시록 20:12, 13,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 . .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마지막 심판은 단일한 사건일 것이다. 신약에서 마지막 심판의 날은 복수명사 '날들'로가 아니고 단수명사 '날'로 언급되어 있다. 사도행전 17:31,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로마서 2:5-7, 16,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 . . .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베드로후서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유다서 6, "큰 날의 심판까지."


세대주의자들은 '세 차례의 마지막 심판'을 주장한다.


첫째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심판으로서 대환난 전 휴거 후에 있고,


둘째는 이방 민족들을 위한 심판으로서 대환난 후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 때에 있고,


셋째는 악인들을 위한 심판으로서 천년왕국 후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마지막 심판을 세 종류나 세 차례로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심판의 근거


마지막 심판의 근거는 사람의 행위이다. 사람은 그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전도서 12:14,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로마서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고린도후서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요한계시록 20:12,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 . .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람의 행위란 이 세상에서의 그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포함한다.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까닭없이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빈 머리']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태복음 5:28, 2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요한계시록 2:23,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마지막 심판은 또한 사람들이 가진 진리의 지식의 정도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누가복음 12:47, 48,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마지막 심판의 근거로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사람들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태도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3:18, 36, "저를[독생자를] 믿는 자는 심판[정죄]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정죄]을 받은 것이니라. . . .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복음 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마태복음 25:35, 36, 48,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심판의 성격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다. 로마서 2:5,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의 심판은 또한 철저하다. 사람의 은밀한 말과 행위들은 다 철저하게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전도서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로마서 2:16,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마태복음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들에게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그 심판의 결과, 악인들은 영원한 지옥의 불못에 던지울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 교리의 유익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모든 사람이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할 확실한 이유이다.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마지막 심판은 또한 성도들이 세상에서 부당하게 고난과 핍박을 당할지라도 낙심치 않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로마서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데살로니가후서 1:6-9,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6. 천국과 지옥


마지막 심판의 결과로서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이다그것은 온 인류의 최종적 상태요 인류 역사의 마지막 단계이다. 그것은 영원한 세계이다.


 천국


천국의 두 측면


성경에서 천국(天國) 혹은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인 면과 미래적인 면이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천국의 이 두 면을 '은혜의 나라'와 '영광의 나라'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천국의 현재적인 면은 교회와 거의 동일시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씨앗과 같이 뿌려졌고 이미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중생(重生)함으로 그 나라에 들어갔고 또 계속 들어가고 있다. 따라서 교회와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불리운다. 다니엘 2:44, "이 왕들의 때[로마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마태복음 11:12, "세례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마태복음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3:24-30,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태복음 13:31, 32,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태복음 13:41, "인자가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마태복음 13:45, 46,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태복음 13:46-50,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누가복음 17:20, 21,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 .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골로새서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요한계시록 1:6, "우리를 나라[혹은 왕들]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러나 천국의 충만한 영광은 아직 미래에 있다. 영광의 천국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나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해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성도들은 지금 그 나라의 영광을 바라며 기다리고 있다. 마태복음 25:34,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누가복음 21: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고린도전서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욕하는 자나 강제로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빌립보서 3:20, "우리의 시민권(폴리튜마 ՐՏՋԿՔՅՕՌՁ, 나라)은 하늘에 있는지라." 디모데후서 4:18ヌ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베드로후서 1:11, "이와 같이 하면, 우리 주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요한계시록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하니." 요한계시록 22:5, "저희[하나님의 종들]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미래적 천국의 영광


미래의 영광의 천국은 성경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묘사된다. 이사야 65: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마태복음 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사도행전 3:21,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 베드로후서 3:12, 13,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體質)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義)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께서 다시 창조하신 세계이든지, 아니면 현재의 세계를 새롭게 하신 세계일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곳이다. 로마서 8:18, "장차 . . . 나타날 영광." 고린도후서 4:17, 18,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 베드로전서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베드로전서 5:10, "영원한 영광." 베드로후서 3:11,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 요한계시록 21:1- 22:5에는, 천국이 죄와 눈물과 죽음과 병과 저주가 없고 생명과 아름다움과 영광으로 충만한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21:2, 10-27,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 . .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수정같이 맑은 벽옥 같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 . . 그 성을 측량하니 12,000스다디온(약 2,200km)이요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144규빗(약 65m)이니 . . .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순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12보석) . . .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 . .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천국은 단순히 영적인 세계가 아니다. 그곳은 변화된 영육이 영원히 살 처소이다. 마태복음 26:29,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새 포도주]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 22장은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의 열두 가지 열매를 증거한다. 성도들의 부활체는 완전하고 영광스러울 것이다. 영화된 성도들이 천국에서 영생하는 것은 충만한 영광의 삶일 것이다.


 미래적 천국에서의 상급


성경은 하나님의 상에 대해 많이 말씀한다. 히브리서 11:6,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 마태복음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누가복음 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빌려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누가복음 14:13-14, "잔치를 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불구자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고린도전서 9: 24-25,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 . .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빌립보서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히브리서 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히브리서 11:26,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특히, 하나님께서는 복음 사역자들에 대해 상급을 약속하셨다. 고린도전서 3: 8, 14,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 . .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일)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요한이서 8,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않고 온전한 상을 얻게 하라"(전통본문). 마태복음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누가복음 19: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마태복음 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누가복음 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주시는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혹은 의인의 부활의 때라고 표현되었다. 마태복음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네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누가복음 14:13-14, "잔치를 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불구자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누가복음 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천국]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지옥


지옥이라는 헬라어(게엔나 gԽՅՍՍՁ)는 '힌놈의 골짜기'(게 힌놈)라는 뜻으로 본래 예루살렘 서남쪽의 힌놈의 골짜기를 가리켰다. 그곳은 우상 숭배자들이 자기 자녀들을 불태워 몰록에게 제사드린 곳이었다(대하 28:3). 그곳에는 예루살렘의 쓰레기들을 태우는 불길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곳에 대한 명칭이 악인들의 형벌의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성경적 증거


마태복음 3:12,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까닭 없이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29, 30,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5:41, 46,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마가복음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44, 46, 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마가복음 9: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뿌리듯함을 받으리라." 누가복음 12:4, 5,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겁내는 자들, 비겁한 자들]와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


 지옥에서의 고통의 성격


지옥에서는 후회, 자책, 실망, 기갈, 불만족, 허탈, 악한 감정들, 무질서, 난폭 등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있을 것이다. 특히, 지옥의 고통은 불의 고통으로 묘사된다. 마태복음 25:41, "영영한 불." 마가복음 9:43, "지옥 꺼지지 않는 불." 요한계시록 21:8,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지옥의 영원성


지옥의 고통은 어느 일정 기간 동안의 고통이 아니고 영원한 고통이다. 마태복음 25:41, 46, "영영한 불 . . . . 영벌[영원한 형벌]." 데살로니가후서 1:9, "이런 자들[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지옥의 영원성은 다음 몇 가지 점들에서 확증된다.


첫째로, '영원한'(아이오니오스 Ձד՞ՍՉՏՒ)이라는 말의 본래의 문자적 의미이다.


①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디모데전서 1:17, "만세의[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죽지 않으시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② 영생과 천국도 영원하다. 요한복음 3:16, "영생." 베드로후서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이와 같이, 지옥도 영원하다.


둘째로, 영원한 멸망은 영생과 나란히, 병행하여 사용된다. 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영원한 형벌]에, 의인들은 영생[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러므로 천국과 영생이 영원한 것처럼 지옥도 영원하다.


셋째로, 지옥의 묘사가 그것의 영원성을 증거한다. 마가복음 9:43, "지옥 꺼지지 않는 불." 마가복음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요한계시록 20:10,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이러한 묘사들은 확실히 지옥의 영원성을 증거한다. 박형룡 박사는 말하기를, "설혹 무리하게 한 걸음을 사양하여 아이오니오스 Ձד՞ՍՉՏՒ를 '유구한 시대'라고 해석한 들, 그것이 영벌을 반대하는 자에게 유리한 무엇이 될 이유는 없다"고 하였다.


 지옥 교리의 중요성


지옥 교리의 중요성은 다음 몇 가지 점들에서 증거된다.


첫째로, 지옥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선언하신 진리이다(마 10:28; 막 9:43, 48, 49; 눅 12:4, 5). 윌리암 쉐드는,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멸망의 교리에 대해 책임을 지셔야 할 분이시다"라고 말하였다. 주께서 친히 말씀하신 이 진리를 그 누구도 부정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둘째로, 지옥 교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에 대한 바른 개념을 준다.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죄악을 미워하시며 죄인을 벌하신다. 이사야 26:9,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예레미야 30:24, "나 여호와의 진노는 내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셋째로, 지옥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가치를 알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은 속죄는 죄인을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해 내신 것이었다.


넷째로, 지옥 교리는 죄인들에게 회개와 믿음의 정당한 동기가 된다. 로버트 맥케인의 지옥에 대한 눈물어린 설교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였다. 지옥은 회개의 정당한 동기이다. 


/옮겨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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