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말씀

기도와 간구에 대한 소고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19-11-18 15:27
조회
63
 

기도와 간구에 대한 소고



'어떻게 기도하면 더 잘 할까?'
성도가 하나님께 더 잘 하고 싶은 마음 자체는 소박하고 좋다.
 처음 신앙생활 할 때는 이런 적극적인 태도도 중요하다.
  '어떻게 더 잘'에 인간의 욕망이 쫘악 깔려 있게 마련이다.

 복음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어떻게'와 '남보다 더 잘'이 없어지는 것이라는 생각한다.
이번 주일에 2부예배 기도를 해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해드릴까?'라는 양심적이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무언가를 더 해야만 나를 더 기뻐하신다'는 명제를 지녔기에 욕망과 욕심이 담겨있다.
 전제조건이 숨겨 있다면, 우리는 실질적으로는 복음을 약하시키거나 부인하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이 ㄷ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단지 사랑일 뿐, 더 큰 사랑도 더 작은 사랑도 없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이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은혜도 그러하다.
 우리는 더 큰 은혜를 바랄 수 있으나  하나님은 오직 은혜만 무한정 베푸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사랑하신다.
나 때문에, 내가 무엇을 잘 해서,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서 나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 분이 행하신 십자가 사건 때문에, 그가 아버지를 온전히 기쁘시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리스도로 인해 이루어진 온전한 복음에, 우리의 남루한 행실을 더하려 하면 절대로 안된다.
그러니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인간의 공덕이 무엇이 얼마나 필요하겠는가?

 하나님은 나를 더 사랑할 수 없을만큼 사랑하신다.
평소에는 조금만 사랑하시다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면 그 결과로 전보다 더 사랑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 피를 남김없이 쏟아내시고, 지옥에 내려가실만큼 철저하게 죽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한없이 완벽하게 사랑하신다는 증거이다.
 그러니 기도를 더 잘 해서, 더 열심히 해서, 더 쎄게 해서, 더 간절히 해서,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은 하나의 법칙이나 공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무엇이 있겠는가?

1) 기도는 행위가 아니라 상태이다.
'~을 하다'가 아니라 '~이다'라 하겠다.
기도는 '말하다'라기 보다는 '바라보다'이다.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것이다.
  말은, 해도 안 해도 마찬가지이다.

기도는 ‘하나님과만 함께’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닌 다른 그 무엇과도 함께 하지 않는 상태이다.
기도는 세상/피조물로부터의 물러남(retreat)이다.

2) 기도는 하나님과의 연애이다.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일어나는 모든 것이 기도에서 일어난다.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난다'는 자체이다.
 만남을 가능케하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듯, 하나님과의 만남에서도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는 게 좋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은 어디에서 언제 만나도 즐겁다.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우연히 만나면 더 놀랍고 기쁘다.
 예배 볼 때에도 길을 걸을 때에도, 성경을 읽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예배당 안에서도 집 안에서도, 우리가 '주여! 우리 아버지여!' 라고 부르는 순간에 우리는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할 때는 단 둘이 만나서 서로에게만 집중한다.
 기도도 하나님 외의 다른 것이 없어야 한다.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께만 집중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나의 연약함을 도와줄 시간(새벽에 등), 공간(예배당에서), 자세(무릎 꿇고) 태도(열심히) 들이 필요하기도 하다.
 걸으면서 집중이 잘 되면, 걸으면서 기도하면 된다.
 춤을 출 때 다른 것이 사라지면, 춤 추며 기도 하면 된다.
성경을 들을 때 하나님께 집중되면, 성경을 듣거나 읽어도 된다.
 하나님에 대한 어떤 생각을 할 때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면, 성경 구절을 묵상하며 해도 된다.

3) 데이트 할 때, 동생이나 친구 등은 데리고 오지 않는 것이 좋듯이, 기도할 때에도 소위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은 절제해야 한다.
 매번 데이트 할 때 마다 상대방이 요구사항을 제시하면, 그가 나를 사랑해서 나오는지 나에게 청구서를 내밀려 나오는지 헷갈리듯이, 기도도 그렇다.
 끊임없이 기도제목을 나열하고 휙 돌아서 나가버리는 자 앞에서 하나님이 무슨 신령한 교제를 하시겠는가?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도움을 요청함(ask)'이 없을 수는 없지만 눈치껏 해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제목을 내미는 것은 원칙상 '기도'가 아니라 '간구'이다.
 간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스스로 만드신 법칙을 위반하실 만큼 사랑하심을 보여 달라는 요청이다.
 예를 들면, 가족이 아플 때 그 질병의 진행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법칙(이것도 하나님의 공의입니다)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만드신 그 법칙에 개입하시지 않으면 그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이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요청이 간구인데, 하나님은 우리를 한량없이 사랑하시므로, 자연의 법칙을 변경하시면서까지 우리의 간절한 요구에 응답하실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랑으로 하시는 것을 우리가 권리로 요구할 수는 없다.
 우리는 단지 겸손히 부탁 드릴 뿐이다.

자꾸 기도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과 만나다 보면, 나중에는 사무적 만남이 되기 쉽다. 그러다가 기도꺼리가 없을 때는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친한 사람들은 꼭 할 말이 있어서 만나는 게 아니라, 할 일 없이 그냥 만나는 것이다.
 같이 있으면 좋으니까 만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얻어내서 만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이다.
기도가 거래가 되면 안된다.

4) 누구를 사랑하면, 내가 많이 말하는 것보다 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을 기뻐하듯 (그래서 저는 아내와 결혼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구구절절하게,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말겠다'는 감동적인 말은 이제 그만 두고, 부산하게 바쁜 내 마음과 내 입술을 닫고, 내 귀를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사랑히는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둘이 가깝게 앉아 있는 것이 더 행복하듯, 기도가 그렇다.
 내가 하나님께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분에게서 아무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가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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