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남진의 간증(17)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19-03-08 14:01
조회
77
범인은 사건 전 집에 찾아와 흉기로 위협하며 돈 달라 협박,
야단치고 보내…7년 뒤엔 고향집 방화
남진 장로(오른쪽)와 가수 나훈아가 1970년대에 함께한 모습.
남 장로는 1973년 나훈아 피습 사건의 배후로 오해 받아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1973년 6월 4일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서울시민회관 무대에서 나훈아가 피습을 당했다. 쇼가 끝나갈 즈음 나훈아가 세 번째 앙코르곡 ‘찻집의 고독’을 부르고 있을 때였다. 무대 위로 갑자기 뛰어든 김웅철이 깨진 사이다병을 휘둘러 나훈아의 왼쪽 얼굴에 큰 상처를 입혔다. 72바늘이나 꿰매는 대수술을 했다.
나훈아가 피습 당하기 며칠 전 김씨는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있던 내 집을 찾아왔다. 새벽에 눈을 뜨니 흉기를 들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나훈아를 찌를 테니 돈을 달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무엇보다 겁이 났다. 자고 일어났는데 모르는 사람이 흉기를 들고 서 있으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때만 해도 베트남전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돼 간이 클 때였다. 야단을 친 뒤 김씨를 돌려보냈다. 그 후 나훈아가 피습을 당했다.
배우 신성일의 매니저가 최근 TV방송에 나와 그 얘기를 했다. 김씨가 우리 집을 찾아오기 전에 신성일의 집에도 여러 번 찾아갔다고 한다. 신성일에게 돈을 요구했고 신성일은 사고가 나는 걸 방지하고자 용돈을 몇 차례 줬다. 그런데도 계속 찾아오니 경찰을 불렀고 다툼이 일었다. 김씨는 그 후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 사건을 두고 언론은 숱한 억측과 모함을 쏟아냈다. 내가 그에게 돈을 줬다느니 하는 기사까지 나왔다. 하지만 단언컨대 단 1원도 주지 않았다. 불쌍해서라도 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어넘길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 어떤 일도 쉽사리 넘어갈 수 없었다.
막상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억울하기보단 무섭다. 유명세가 있다는 건 이런 무서운 일에도 휘말릴 수 있다는 얘기다. 김씨는 정상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이북을 넘나드는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사회에 대한 반항심이 있었다. 연예인을 공갈하면 돈이 나올 줄 알고 신성일과 나, 나훈아를 차례로 협박한 것이다.
그는 1980년 목포에 있는 내 고향 집에도 불을 질렀다. 그때 조부모의 유일한 초상화가 탔다. 가끔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리울 때가 있지만 초상화가 없어서 볼 수가 없다. 나이 들어 생각하면 협박받은 일보다 초상화를 잃은 게 더 화가 난다. 다시는 그분들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세월이 지날수록 가슴이 아프다.
30여년 전 지인으로부터 그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들었다. 교회에서 좋은 반려자를 만나 결혼하고 자식도 낳고 잘살고 있다고 했다.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신앙인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여성을 만난 것 같아 나도 기쁘다. 신앙은 대단하다. 세상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전과자도 변화시키는 신앙은 축복이고 사랑이다.
정리=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