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담

미물의 힘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20-10-16 06:48
조회
125

미물의 힘


타르바간은 몽골 북쪽과 시베리아 남쪽에 사는 들쥐의 일종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고 귀여운 이 동물이 세계 역사를 바꾸리라 상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 동물과 가까이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먹을 것이 귀해도 이 동물만은 건드리지 않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잘못 만졌다가는 큰 변고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이 동물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나름대로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13세기 징기스칸과 그 후예가 유라시아 대륙을 통일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럽의 상인들이 중국의 비단과 동방의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실크로드로 몰려들었다.


​남쪽과 북쪽 두 개의 비단길 중 많은 사람들은 덥고 언덕이 많은 남쪽보다 비교적 평탄하면서 덜 더운 북쪽을 선호했다.


 


그런데 이 북쪽 실크로드는 타르바간 군락지를 지나고 있었다.


​이를 처음 본 여행객들은 이들을 잡아 가죽을 벗겨 털옷을 만들어 입었고 폭신폭신하고 따뜻한 이 옷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옷을 입은 사람 중 하나가 몸 이곳저곳이 부풀어 오르며 악취를 풍기다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뿐 아니라 그와 접촉한 사람이 하나 둘씩 쓰러지다 급기야는 이들이 거쳐 간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


 


그 첫 희생제물은 중앙아시아에 있던 이식 쿨이었다.


​중국과 서방, 러시아와 중동을 잇는 교차로에 있던 이 마을은 1339년 역병이 돌면서 하루아침에 폐허로 변했다.


​그 다음은 이탈리아 제노바인들이 개척한 흑해 연안의 무역항 카파였다.


​마을주민들이 차례로 죽어나가는 것을 본 제노바 선원들은 1347년 배를 타고 시칠리아로 도주했지만


이는 이 역병을 유럽 전체로 퍼뜨리는 역할만 했다.


​이것이 중세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흑사병의 시작이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지만


이에 관해 가장 권위 있는 책의 하나로 꼽히는 ‘거대한 죽음’의 저자 존 켈리에 따르면


역병 전 7,500만에 달하던 유럽 인구는 그 후 5,000만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약 1/3이 사망한 셈이다.


​절대 인구수로는 제2차 대전을 제외하고 최고고 인구 비율로 보면 인류 사상 최악의 재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가장 많은 인류를 죽일 재난은 핵전쟁이 아니라 바이러스라는 일부 학자의 주장이 근거 있어 보인다.


 


역병은 인류 역사상 주기적으로 일어났다. 그런데 하필 왜 14세기 흑사병은 이토록 많은 사람을 죽인 것일까.


​그 첫 번째 이유는 타르바간에 붙어사는 쥐벼룩에 기생하고 있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


​(발견자 알렉상드르 예르생 이름을 따 붙여졌다)라는 바이러스가 아주 악성이기 때문이다. ​


다른 쥐벼룩 바이러스는 쥐벼룩이 물어야 감염되고, 물려도 물린 부위만 부풀고 말지만


이 바이러스는 몸 전체로 퍼지는 것은 물론이고 기침을 유도해 침으로도 타인에게 전파시키는 특징이 있다.


 


두 번째는 이 질병이 동서 교역로가 뚫린 후 발생했다는 점이다. ​


당시 몽골은 대륙 곳곳에 설치된 역참기지를 지칠 줄 모르고 뛰는 조랑말로 연결해 놓고 있었다.


 빠른 물자와 정보의 이동이 전염병의 세계적 보급을 쉽게 했다.


 


세 번째는 질병에 대한 무지였다. ​


병의 전염경로에 대해 알지 못하던 당시 유럽인들은 교회에 모여 하루 종일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교회는 절대 다수가 기독교인이었던 유럽 곳곳에 질병이 퍼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700년 전과 세상은 많이 달라졌지만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이번 바이러스도 흑사병처럼 야생동물의 위험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됐다.


​옛날 상인들이 타르바간을 잡아 옷을 해 입었다면 중국인들은 야생 박쥐를 잡아먹다 일을 만들었다.


​그 전이라면 특정지역에 국한됐을 역병이 몽골이 이룩한 세계화 바람을 타고 급속히 퍼진 점도 그렇고, ​


한국에서 특정 교회를 통해 전파된 점도 닮았다.


  700년 전 유럽과 지금과는 의학 수준이 비교할 수 없이 다르고 따라서 피해 규모도 훨씬 작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학이 발달하는 것과 비례해 바이러스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


인간과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세상 마지막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미주한국일보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200302/1298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