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담

우리는 낮은 자 입니다.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20-03-20 20:00
조회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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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 11년을 맞은 김수환 추기경


이관순의 손편지[110]

2020. 03. 09(월)

 

우리는 낮은 자입니다.


신부 서품을 받아 한 성당의 사제가 되기 위해 떠나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비단

보자기로 싼 작은 종이상자를 내밉니다. 무엇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사제관에

 들어가거든 조용한 시간에 풀어보라고 이릅니다.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기도는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신부는 사제관

한쪽에 묻어둔 상자를 꺼내 보자기를 풀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누렇게 빛이 바랜 아주 작은 아기 옷, 배내옷이 들어 있습니다.

 그 속에 어머니 편지가 곱게 접혀 있었지요. 어떤 자리에 가 있더라도 늘

기억하라는 어머니의 기도입니다. “예전엔 나도 한없이 어리고 작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낮은 신부님이 돼 달라, 나도 그렇게 기도하겠다”

 는 글입니다. 편지를 읽던 신부님의 가슴도 뜨거워졌겠지만,

사연을 읽는 내 눈시울도 따라 붉어집니다.

 

광야 같은 세상길, 어디로 어떻게 걸어가다가 고단한 삶의 하룻밤을 쉬어야 할까.

그 가늠자를 선물한 이야기입니다. 뜨거움, 기쁨, 섬김, 눈부심, 그런 것으로

가슴 벅차오르는 사연을 마주한 지 언제일까? ‘누구처럼’ 살고 싶다고 희망을

안겨준 분들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봄날입니다. 우리는 모두 작은 자고,

 한없이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 사실을 잊고 살지는 않는지, 나도 어머니가

 주신 배내옷 한 벌 가슴에 품고 살 수는 없을까.

 

지난 2월로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11년입니다.

스스로 바보로 칭한 추기경은 일생을 배내옷을 품고 사신 분이지요.

마흔 일곱에 한국 최초,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된 후, 일생을 스스로 바보라고

 칭하며, 넉넉한 사랑으로 핍박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품어주고, 사회를

 향해 묵직한 목소리를 내던 그 모습은 아직도 울림을 줍니다.

 

모든 사람에게 긍정의 목소리를 전해준 분이 1951년 처음 사제복을 입었을 때

 선택한 성구(聖句)는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였고,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인사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였습니다.

 

그는 이 시대의 참 어른이었습니다. 최근 서울대교구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펴낸 ‘김수환 추기경’에는 세계 최연소 추기경에 오른 후 젊은 사제 김수환이

 미리 준비한 유서가 있습니다. 한 장짜리 사무용지에 또박또박 쓰인

한 장의 유서는 1971년 2월 21일 밤으로 마무리됩니다.

유서에는 “그리스도께서 가장 깊이 현존하시는 가난한 사람들,

우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등 모든 불우한 사람들 속에 저는 있지

못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저의 사랑의 부족을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말이 가슴을 덥혀줍니다.

 

열정이 넘치는 마흔아홉 살, 추기경이 일찌감치 유서를 준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일생을 통한 추기경의 고백이고, 다짐이 아니었을까.

 추기경은 잘못된 정치에도 묵직한 매시지를 날렸습니다.

정권의 수배를 받은 학생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명동성당 앞에서

 경찰에게 말합니다. 나를 넘고 지나가라, 그러면 뒤에 신부들이 있을

것이고, 또 넘어가면 뒤엔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준엄하게

불의를 거부한 어른이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이었어요. TV를 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추기경이 ‘사랑의 미로’를 부르는 모습을 본 겁니다.

그 소박함과 추기경도 보통남자라는 모습에 우리들 눈은 웃어도 마음은

뜨거움으로 뭉클했지요. 추기경은 종교의 편 가르기를 경계했습니다.

인생의 구원이라는 대명제 앞에 천주교, 불교는 더 이상 경계 대상이

아니라며, 어느 해 부처님 오신 날에는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

열린 음악회에 법정 스님과 나란히 앉아 화합의

아름다움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촛불, 반미시위 등을 둘러싸고 일부 급진파 종교인의 공격을 받던 2004년

 즈음입니다. 추기경은 자신의 색깔을 묻는 질문에 굳이 말하면 바꿔가는

 ‘보수(補修)’라고 뼈 있는 유머로 답했지요.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깜짝 선언을 합니다. “나도 출마합니다. 기호는 1번이고,

지역구는 전국구입니다.”

 바보 추기경의 유머는 늘 깨달음을 동반했지요. 정치권을 향해서는

“모든 이를 위해 목숨을 내건 예수님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하라”고 했죠.

 하지만 21대 총선을 앞둔 지금. 좌든 우든 고쳐보려는

 ‘보수(補修)’ 의 노력은 부족합니다.

 

마른 잎 서걱대는 삭막한 세상에서 한없이 낮은 자리를 찾아다닌 김수환 추기경.

 ‘내 탓입니다’를 선창해 사람들마다 자동차 뒷 유리에 스티커를 달게 한

그분의 따뜻한 리더십이 그립습니다. 아픔 있는 자에겐 “고통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입니다.” 위로하고, 젊은이에겐 “가끔은 칠흑 같은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바라보라.”고 등을 토닥이고, 삶의 길을 묻는 자에겐 ‘인간의

길이란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내면적으로 풍요롭게’ 사느냐에

 있습니다.” 라며 다독여 주었지요.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