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담

아버지와 아들의 다른 인생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20-07-13 05:59
조회
103
 








 


※친일 아버지와 애국자 아들의 다른인생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


명성황후가 일본인 낭인(무뢰배)들에 의해 시해된 일입니다.


명성황후가 시해되던 날 일본 낭인들과 일본 공사 미우라에게 길 안내를 한 사람은 조선인 우범선입니다.


그는 당시 조선 황실의 별기군 대대장 이었는데


황궁을 지켜야 했던 군인이 오히려 적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이 일로 보복을 두려워 한 그는 일본으로 망명해 일본 여자


(사까이 나까)와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여섯 살 되던 해,


조선의 자객에 의해 우범선은 일본 현지에서 피살됩니다.


어릴적 아버지를 잃은 그의 아들은 고된 생활 속에서도 일본인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농림성에 취직을 합니다.


그러나, 창씨개명과 일본 국적 취득을 반대하다 결국 사표를 내고 도끼이 종묘회사


의 농장장으로 직장을 옮깁니다.


해방 후 일본에서 채소나 과일의 종자를 수입했던 우리나라는


우범선의 아들이 육종학 (종자개발) 전문가 임을 알고


그의 귀국을 적극적 으로 추진합니다.


그는 처자식,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고 홀로 귀국해 한국 농업과학 연구소 소장에 취임합니다.


그뒤 그는 제주도 감귤, 강원도 감자, 병충해에 강한 무와 배추의 종자를 개발해 한국 농업의 근대화에 커다란 업적을 남깁니다.


그러자 한국 정부에서 그에게 농림부 장관직


을 제안했으나 거절하고, 종자개발에만 헌신했습니다.


농업 근대화의 뛰어난 공적을 인정받은 그는 1959년 대한민국 문화 포장을 받습니다.


그가 다름아닌 씨없는 수박으로 잘 알려진 우장춘(1898~1959) 박사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삶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역사적 아이러니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