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의사 이야기
아프리카 여의사 이야기 |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평생 교감이나 교장 자리도 마다하고 아이들 앞에서 교편을 잡으셨지요. 하루 종일 재잘대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버지는 더없이 행복했다고 했습니다. 정년 퇴임을 하신 후, 아버지는 학생들이 그리운지 저녁이면 앨범을 펼쳐 들고 30년 전 처음 만났던 학생들 얘기부터 그리운 옛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정말 말썽꾸러기였지… 하루라도 안 싸울 날이 없었단다. 그래도 심성은 착하고 붙임성도 좋아서 나만 보면 떡볶이 사달라며 날마다 조르곤 했지….” “유진이는 참 의젓하고 밝은 아이였지. 아프신 홀어머니와 힘들게 살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지. 아프신 어머니 때문에 늘 의사가 되겠다고 말하곤 했었단다. 내가 가끔 유진이 집에 찾아가서 몰래 고기며 쌀이며 문 앞에 놓아두곤 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산책을 다녀오시던 아버지가 쓰러지셨습니다. 폐암 말기였습니다. “한평생 칠판에다 쓰고 닦고 하시더니 폐암이 되셨구나.” 그때 만큼은 아버지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지요. 그러나 아버지 병세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이루시는 날들이 잦아지고, 가래 끓는 소리도 거칠어졌지요. 마침내 대화를 나주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나빠졌습니다. 그때 마침, 진료받던 병원에서 왔다며 여의사 한 명이 저희 집을 찾아 주었습니다. 여의사가 오는 날이면 아버지도 유난히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자식들도 감히 못하는 일을, 젊은 여의사가 지극 정성으로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폐암 말기 환자였기 때문에 가래에서 악취가 심했습니다. 그러나 여의사는 개의치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빨아내기를 몇 십분 정도 하자, 가래 끓는 소리가 잠잠해지고 아버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몇 달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나는 여의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아프리카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온 편지였습니다. "선생님, 저 유진이에요. 선생님이 너무나 예뻐해 주시던 유진이요, 가끔 저희 집 문앞에 쌀이며 반찬이며 돈이며 놓고 가셨던것 저는 다 알고 있었어요." 이 소식을 알면 제일 기뻐하실 선생님을 수소문해 찾았을 때, 많이 아프시다는 걸 알았어요. "침상에 누워 계신 선생님을 뵈었을 때 의사가운을 입은 저를 보시며 비록 말씀은 못하셨지만 ‘어서 오렴’하고 반겨 주시듯 제 손을 꼭 잡아주신 선생님…저 알아보신 거 맞죠?" 나는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그 여의사의 편지를 아버지 묘소에 고이 놓아 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