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전 국정원장이 본 김정은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18-12-10 13:52
조회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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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호 前 국정원장이 본 김정은


“제가 직접 고모부를 죽이려고 준비한 말뚝을 위성사진을 통해 보기도 했어요.

사람을 말뚝에 매어놓고 십이 미터 앞에서 고사포로 산산조각을 내 버렸어요."



​서초동 네거리에 북의 김정은 환영단을 모집한다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출근하는 대법원장 승용차를 향해 화염병을 던진 기사가 나오고 창원에서는
민주노총에게 엊어 맞아 떡이 된 기업체 임원 사진이 사회면 구석에 크게 부각되고 있다.

기업체의 사장은 맞아도 되나 보다. 신고받은 경찰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현직 국정원장이 남북한 사이를 열심히 왕래하면서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을
이따금씩 보도를 통해 보기도 한다.

국정원장이면 북한과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거의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문득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정권의 이병호 국정원장을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2018년 8월 2일 오후 4시. 거친 뙤약볕 아래 서울구치소 사동(舍棟)들은

녹아내릴 것 같았다. 폭염 경고가 발령되었다.
구속된 이명박 대통령이 더위를 견뎌내지 못하고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기사를 봤다.
서울 구치소 변호인 접견실의 구석 유리박스 안에서 이병호 전 국정원장을 만났다.
나의 앞에는 눈동자가 탁하고 허공에 널린 빨래처럼 힘이 빠져나간 노인이 앉아 있었다.
눈에 눈꼽이 가득 끼어 있고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이병호 씨였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나이가 많았다. “몸이 어떠세요?” 나는 건강부터 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주위가 빙빙 돌아요. 한참 있어야 좀 괜찮아져요. 의무실에
갔었어요. 온통 몸에 문신한 건달 애들 사이에 줄을 서 있으면 다리가 후들거려요.

한나절을 기다려 의사를 만났는데 그 태도가 너무 냉랭해요. ‘
전에 당뇨약이나 고혈압 약을 먹었으면 그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죠’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내쫓아요. 여기 들어온 지 한 달 반 정도 됐는데 몸무게가
5킬로나 줄었어요.”

그는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골짜기로 떨어져버린 것 같았다.
그는 국고 손실죄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청와대에 예산지원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외부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시죠?” 내가 권했다.

“수갑을 차고 나가 세상에서 창피를 당하기 싫어요.”
“사동의 몇 층에 계셔요?”

직사열을 받는 구치소 사동의 꼭대기는 폭염 속에 난로같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사동의 3층 꼭대기에 있었어요.

그런데 워낙 폭염이 계속되니까 구치소 측에서 2층으로 옮겨줬어요.
일층이 더 나은데 거기는 일반죄수들이 많아서 방이 없다고 그러네요.”
이미 혼이 반쯤 빠져나간 것 같은 약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여기서 죽지 마세요. 예전에 변호를 하면서 감옥 안에서 죽는 사람도 봤어요.
대통령에게 뇌물을 바친 혐의로 구속된 은행장을 변호했었는데 징역을 살던
중에 죽었어요.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형사소송법은 70세 이상의 노인의 경우는 건강을 체크하고 위험할 때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었다.

팔십 노인인 이병호는 바로 그런 상태였다. 그러나 정권의 핵심에 있었던 그는 법의
보호에서 예외일 게 틀림없었다. 권력측에서는 어쩌면 그가 죽어도 상관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국정원장으로 김정은 제거를 시도했던 사람이다.

“칠십대 중반에 왜 국정원장이 되셨습니까? 어떤 철학을 가지고 뭘 하시려고
했습니까?” 그는 단지 관직이 좋아서 갈 사람은 아니었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그는 월남전에서 소대장을 마친 후 정보기관에 들어갔다.
그 후 해외 정보요원으로 30년을 보낸 정보전문가였다.
그가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을 했다.

“제가 지키려고 한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죠. 자유민주주의죠.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남한의 좌익들에 대해 그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체 국정원 요원에게 우리 앞에는 북한과의 ‘마지막 전투’라는
민족적이고 역사적인 과제가 놓여있다고 선언했어요.

자유민주주의의 최후 승리를 가져오는 체제경쟁의 마지막 과정이었죠.
한반도에서 지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이루고 불쌍한 북한 주민을
생지옥으로부터 구해내야 한다고 했어요.
저는 그것이 저와 국정원에게 부여된 역사적 소명이라고 인식했어요.”

“지금 정권은 북한과 평화공존으로 가자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틀린 생각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내가 반론을 제기했다.

“북한의 존재 목적은 김일성 때부터 혁명이었습니다.
노동당 규약에 나와 있듯이 모든 것의 끝은 남조선 혁명입니다.

그게 북한의 정체성입니다. 김정일 때도 그렇고 김정은도 그렇습니다.
남조선 혁명이 빠지면 북한은 빈껍데기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북한은 지금도 혁명을 버릴 수가 없는 겁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혁명이 성공하면 그 순간부터 고생이 끝난다고 세뇌해 왔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평화공존이라면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의 사고로는 용납될 수 없는 관념이죠.”

“북한의 김정은은 어떤 인물입니까?”
“제가 직접 고모부를 죽이려고 준비한 말뚝을 위성사진을 통해 보기도 했어요.
사람을 말뚝에 매어놓고 십이 미터 앞에서 고사포로 산산조각을 내 버렸어요.

그 형도 공항에서 독극물로 죽였죠.
테러분자를 도주시켜 완전범죄를 저지르려는 것을
대한민국 국정원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했죠.

지금 북한은 화재시 집에 있는 김일성 사진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고 죽이고
땅에 떨어진 밥풀을 주워 먹었다고 때려죽이고 김일성의 어록을 외우지
못했다고 총으로 머리통을 쏘는 지옥입니다. 그래도 북한 주민들이 반발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김일성 때부터 김씨가는 단순한 제사장 정도를
넘어서 하나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죠.

북한 전체가 광신도로 구성된 집단입니다. 그들의 구원이 되는 길은 남조선
혁명이구요. 이런 구조 속에서 협상하고 평화공존이 될 거라고 보십니까?
절대 안 됩니다.

저는 국정원장을 하면서 일단 김정은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다음 김씨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북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북한경제의 숨통을 트게 하면서
남북의 평화공존 협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봤던 거죠.
그게 거의 다 이루어질 수 있는데 박근혜 정권의 운명이 먼저 끝이 난 거죠.
지금 대한민국의 좌파 정치인들은 북한의 인권은
이웃 국가의 내정 문제니까 간섭하지 말자고 하죠. 그건 껍데기만 본 거예요.”

같은 대한민국에서 전 정권 국정원장의 시각과 현 정권 국정원장의 시각이
백팔십도 다르다. 정보기관은 국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전 정권의 국정원장과 현 정권의 국정원장이 북한과 김정은을 보는 눈이
전혀 다른 것 같다. 생각이 다르면 눈에 들어오는 것도 달라지는 것일까.

 


판검사의 법 왜곡



검사나 판사의 법 왜곡이 한 인생을 파멸시키는 경우가 있다.
존경받던 한 사회명사가 횡령죄로 기소된 사실이 언론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하루아침에 그는 평생 쌓아온 것을 잃었다. 검사는 한 공익단체를 맡고 있던 그의 사무직원이 공금을 횡령한 사실을 알았다. 이름 없는 잡범 한두 명 잡는 것보다 거물을 잡아 이름을 날리고 싶었다. 형을 가볍게 해 준다고 유혹하면 잡범들은 무슨 모략이라도 협조한다.

검사의 공명심과 승부욕이 허위를 만들고 과녁이 되어버린 그는 늙은 고목같이 쓰러졌다. 그는 민주화 투사였다.

5.16혁명 후 당국의 강제노동을 고발했다가 간첩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나이 칠십에 그가 처음으로 한 단체의 회장을 맡은 것이 화근이었다. 잘못이 없는 그는 판사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빌지 않았다. 그 태도가 판사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는 괘씸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판검사가 법을 왜곡해 다른 법률을 적용해 버린 것이다.

그에게 불행은 세 박자로 왔다. 구속될 무렵 아들이 죽었다. 재판 뒷바라지를 하던 아내가 죽었다. 혐의가 풀려 석방된 그는 빈집에서 혼자 지내다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작가였던 그는 빈집에서 판검사의 법왜곡을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리려고 했었다.

정권이 바뀌면 법의 해석이 극에서 극으로 가기도 한다. 전두환 정권시절 법원은 광주에서 시위하던 시민들을 폭도라고 했다. 정권이 바뀌자 사법부는 그 시민들이 민주화운동을 한 거라고 했다. 다시 시대가 변해 전두환이 군사반란으로 재판을 받게 되자 판사는 광주에 모였던 분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헌법기관이라고 했다.

정권이 바뀌면 그 도구가 된 정치판검사에 의해 지난 정권의 사람들이 악의 화신이 되기도 한다. 현재진행형인 사례도 있다. 지난 수십년간 세금으로 걷은 특활비를 대통령, 국정원장, 국회의원, 대법관들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나누어 가지기도 했다. 적폐였다. 바뀐 이번 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도덕성이다.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정권의 비서실장과 국정원장들만 죄인으로 찍었다. 그러나 막상 그들에게 적용할 현실의 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 같다. 때마침 회계실무자의 횡령을 중하게 처벌하는 규정이 있었다.

검찰은 전직 국정원장들을 모두 회계실무자로 간주해 그들을 국고손실죄로 기소했다. 법원 역시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장들을 회계직원으로 보고 징역형을 선고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국정원장을 유가증권을 취급하는 회계직원으로 거는 것은 법의 왜곡 같다. 법해석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판사나 검사가 그렇다면 그런 걸로 살아왔지만 이상하다.

검사와 판사가 찍는 사람만 죄인인 현실도 공평하지 않다. 결정적인 증거를 외면하면서 마음대로 한쪽에 유리하게 재판을 하는 판사도 봤다. 법의 여신이 든 칼이 녹슬고 저울이 기울면 사법정의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법원과 검찰이 과거 수많은 사건에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냈는데도 정작 판검사들이 책임을지지 않았다.

독일은 법관이나 검사가 재판이나 수사 중인 사건을 처리하면서 법을 왜곡해 당사자 일방을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만든 경우 징역형에 처하도록 형법에 규정하고 있다. 이제 우리사회도 사법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판검사가 잘못하면 형사책임도 지고 손해도 배상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억울한 눈물을 뽑은 판검사는 공소시효 없이 나중이라도 그 댓가를 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