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가슴아픈 귀중한 자료들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19-04-13 10:53
조회
73
 

◈우리역사에 가슴아픈 귀중한 자료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1950. 12. 16. 흥남,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하고자 부두에서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1950. 12. 19. 묵호.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를
묵호(동해)항에 내리고 있다.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1950. 12. 28. 끊어진 한강 철교. 오른쪽은 임시로 만든 부교.



▲1951. 1. 3. 한강 철교 부근의 언 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광화문 세종로 일대.







▲1951. 3. 1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왕십리 일대.
멀리 고려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역 일대.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경복궁, 수송동,
팔판동 일대.







▲1951. 3. 19. 구호 양곡을 먼저 탄 소년과
양곡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주민들.



▲ 1950. 10. 12. 원산. 학살된 시신들.



▲1950. 12. 11. 고단한 피난길.




▲1950. 12. 16. 폭격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1950. 12. 17. 보급품을 실은 화물 열차가 폭격에 불타고 있다.







▲1950. 12.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끝낸 후
임시 국회의사당인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신 국방장관은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라고 상대의 전력도
모른 채 큰 소리쳤으나 6.25 발발 후 서울시민은 팽개치고
몰래 서울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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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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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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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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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 하고 가시리잇고”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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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12. 북한군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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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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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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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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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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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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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7. 29. 야간전투후 주간 취침.ⓒ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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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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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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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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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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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새로운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입니다.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다듬었습니다.

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 조국에 남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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