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cms)손봉호 교수가 보는 양심적 병역거부

작성자
itmedia
작성일
2018-07-06 11:09
조회
98
 
588호2018.07.03
‘성숙의 불씨’는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에서
주 1회(화)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비양심적 병역기피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 제도 도입을 요청함으로써 양심적 병역거부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여러 선진국에서도 이미 시행되고 있고, 이처럼 개인의 양심이 존중될 수 있도록 한 것은 인권신장 과정에서 진일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우선 병역기피가 그 자체로 양심적이 될 수 있는가이다. 전쟁이나 국방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을 살상하는 것이 나쁘다는 나의 확신을 지키기 위해서, 나의 이웃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불의한 적에 의하여 억울하게 생명과 재산을 잃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인가? 만약 자신이 이웃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면, 국가가 자신에게 제공하는 다른 혜택도 거부해야 일관성이 있지 않을까? 이처럼 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에 이미 BC 1세기에 로마 철학자 키케로(Cicero)는 의로운 전쟁의 조건들을 제시했고,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루터, 칼뱅 등 기독교 신학자들도 기독교인과 전쟁참여 문제에 대해서 매우 많이 고민했다.


  그런 원칙이 있음에도 병역에 관한 한국의 특수한 문화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이번 월드컵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손흥민 선수에게는 병역을 면제해 주어야 한다는 소리가 버젓이 들릴 정도로 병역에 대해서 우리 문화는 부정적이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야말로 입대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병역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서양 전통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소위 "특혜를 입은 자의 의무(noblesse oblige)"란 것인데, 그 핵심은 기부를 많이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났을 때 앞장서는 것이다. 로마 제국에서는 전쟁이 나면 귀족들이 항상 앞장섰기 때문에 로마제국 말기에는 원로원에서 귀족의 비중이 초기에 비해서 1/5로 줄었다고 한다. 세계 1, 2차 대전에서는 영국의 귀족학교 "이튼 칼레지(Eton College)" 출신 2,000명이 전사했고, 최근에도 아르헨티나와의 포크 아일랜드 전쟁에서는 영국의 앤드류 왕세자가 헬리콥터 조종사로 참전했다. 6·25전쟁 때는 미군 장성의 아들 142명이 참전해서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했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상당수가 이런저런 핑계로 병역을 면제받은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의 양심적 병역면제와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면제가 같은 취급을 받을 수는 없다.


  어쨌든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으니 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빙자한 비양심적 병역기피를 막기 위한 제도가 잘 마련되어야 한다. 꼭 필요한 것은 진정한 확신으로 병역을 피하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을 정도로 대체복무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무기한도 배 이상으로 해야 하고, 근무처도 매우 힘든 곳으로 정해야 한다. 그래야 어렵고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병역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다른 사람들의 불평이 없을 것이고, 비양심적 병역기피자가 양산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비양심적으로 대체복무를 요청하는 경우가 완전히 없어지면, 그때 비로소 복무조건을 조금씩 완화함으로써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지나치게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 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부산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전 동덕여대 총장

·전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전 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 글 내용은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의 공식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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