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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여호와의 증인에 대하여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19-02-26 14:59
조회
75
여호와의 증인 비판

 

1) 발생 배경과 역사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단 운동은 19세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거쳐 초인적인 활동을 한 세 사람에 의하여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으며, 그들의 지도력은 강력하였다. 그들의 명칭은 아시아 43장 10절과 44장 8절에 있는 '너희는 나의 증인'이란 말을 인용하여 '여호와의 증인'이라 명명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여호와의 증인은 그들의 역사적인 계보를 아담의 둘 째 아들 아벨이 최초의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데서 시작하여 그 이후 이 땅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증인의 가장 으뜸이 되며, 그 후계자로는 럿셀, 러더포드, 노오르 등을 들고 있다.

 

(1) 창설자: 찰스 테즈 럿셀(Charles Taze Russel, 1852- 1916)

여호와의 증인은 현대교회에 나타난 대표적인 이단으로서 1852년 2월 16일 미국의 펜실바니아주 피츠버그 부근에서 태어난 ‘찰스 테즈 럿셀’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의 부모는 스코취, 아리쉬 계의 장로교인이었다. 15세에는 아버지를 따라 의복상을 경영하였고, 장로교회를 떠나 회중교회로 전입하였다. 그는 곧 장로교회의 핵심교리인 예정론과 최후 심판론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었으며, 결국 성경도 불신하는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성경 외에 다른 지침서를 찾던 중 예수재림파의 목사 벤델이 쓴 [성경주석]발견하게 되었다. 한 때 그는 벤델의 주석에 감동을 받아 다시 성경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다시 재림파의 예수재림론이 잘못된 것임을 인식하고 자신의 생각을 모아 [예수 재림의 목적과 방법]이란 책을 펴낸다. 이 책자는 호평을 받고 5만부가 판매되었다. 이와 함께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그를 목사라고 불렀으나 럿셀은 사실 정식 신학교육도 받지 아니했으며 스스로 성경공부반을 조직하여 그 회원들이 그를 목사라고 칭하는데 불과하였다. 그리고 그는 뉴욕에 있는 바보아(N.H. Barbour)와 함께 재림운동을 전개하였다(1876년). 그는 독특한 성경 해석 방법을 개발하여 1879년 시온의 파수대(Zion's Watchtower)라는 잡지를 출간하였다. 럿셀은 1914년에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후 [천년왕국의 여명]이라는 책을 연속으로 일곱 권이나 발행하였다. 이는 후에 [성경연구](Studies in the Scripures)라는 제목으로 개정되었다.

그는 1879년 악클레이(Maria F. Ackely)라는 여성과 결혼하였으며, 1913년 이혼을 하였다. 이혼의 사유는 럿셀이 '속임수, 이기주의, 독재, 다른 여성과의 비정상적인 행동'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그는 1916년 캘리포니아의 순회강연을 마치고 귀가 도중 텍사스 주의 팜파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1891년과 1900년에 유럽을 방문하여 런던에 여호와의 증인의 지부를 결성하였고, 1903년에는 독일, 1904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지부를 만들어 세계적인 종파운동으로 번져 나가게 했다. 1916년 이후 럿셀은 파수대의 지원으로 백만 마일 이상의 전도여행을 하였으며, 3만회 이상 설교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5만 페이지에 달하는 책들을 썼다고 한다.

 

(2) 과도기: 죠셉 플랭클린 러도포드(F. Rutherford, 1869-1942)

럿셀의 사망 이후 협회의 합법적인 고문이었던 죠셉 프랭클린 러도포드가 회장이 되어 과도기의 여호와의 증인을 이끌어 갔다. 그는 25세 때 여호와의 증인의 회원이 되었고, 변호사와 검사를 거친 법률가로서 조직과 행정에 뛰어난 수완을 보여 여호와의 증인 단체를 이끌어 갈 만한 적합한 인물이었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름이 채택된 것도 바로 그의 지도하에서였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의 본부를 뉴욕의 부룩클린으로 옮겼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신정 정치적 통치를 지향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여호와의 증인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의 맹세나 정부의 법률 등을 거절하기 시작하였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가톨릭교회와 개신교를 현대판 바벨론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1918넌 캐나다 정부는 위치타워의 문서를 판금조치하기에 이르렀다. 국가의 법을 불복종한다는 죄명으로 러더포드를 포함한 지도자들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여호와의 증인 교도들은 이에 구명운동을 전개하여 1년 후에 그들의 지도자를 석방시키는데 성공하였으며, 다시 브룩클린의 본부를 중심으로 포교활동의 열기를 한층 더하였다. 그들은 1919년 10월에 [황금시대](The Golden Ages)라는 잡지를 출간하였고, 1912년에는 [하나님의 하프](The Harp of God)라는 잡지도 출간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러더포드를 중심으로 행정의 조직화를 가져왔고, 방문과 증거에 역점을 두고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2차 대전 중에는 군복무 거부로 인하여 약 3500명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태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수는 증가하여 14만에 달했다. 과도기에 여호와의 증인의 대변자로 지대한 공을 세웠던 러더포드는 1943년 1월에 별세하였으며 새로운 지도자 나단 노오르에게 지도권을 넘겨주었다.

 

(3) 나단 노오르(Nathan Knorr)

러도포드가 사망한 후 그의 뒤를 계승한 노오르는 여호와의 증인의 회원을 11만 명 5천 명에서 2백만 명 이상으로 성장시키는 등 놀라운 성장을 가져왔다. 그는 개혁교회의 교인으로 성장했으나 16세 때 개혁교회를 떠나 알렌타운의 여호와의 증인집회에 참여하였다. 18세 때 그는 이미 전임설교자가 되었고, 부룩클린 본부의 직원이 되어 출판 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는 특히 전임자들 교육에 역점을 두어 1943년에 '길르앗 위치타워 성서학원'을 건설하여 강력한 자립지도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로 인해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기반을 쌓아 가기 시작하였으며 포교에 광적인 열심을 더했다.

이 당시 괄목한 만한 업적은 오늘날까지 가장 권위 있는 교리서로 인정받고 있는 [하나님은 참되시다]라는 책을 출간하였다(1946년, 1952년). 이 책은 1천8백만 부가 팔렸고 50여 나랏말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1958년에는 [실락원에서 복락원으로]라는 책이 출간되었고, 1961년에 드디어 그의 지도하에서 독자적인 성경을 번역하였으며 그것을 [새세계번역성경]이라 하였다. 이와 병행하여 노오르는 세계선교에 역점을 두어 54개국에 집회단을 결성하고 1961년에는 185개국에서 활동하도록 하였다. 현재로는 200여 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활동을 헌신적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4) 프레데릭 W. 프란쯔

1977년 노오르의 사망 이후 그의 뒤를 계승한 프란쯔는 노오르의 업적을 계속해서 전진시켰고, 노오르의 방식대로 사업을 추진시켰다.

 

(5) 한국의 전래

한국에 처음으로 전래한 사람은 1912년 후리스터(R.R.Hurister)이며, 그리고 1915년 내한한 멕켄지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주로 문서를 통한 선교활동을 했으며 특히 기독교인의 집을 호가 방문함으로써 세포조직적인 포교활동을 시도하였다. 1914년에는 ‘한국성경연구원’이란 이름으로 '시대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이 한글로 번역, 인쇄되어 일반에게 배포되었고, 경성우체국 사서함 제21호를 개설하여 문서전도를 했다. 1923년 위춰타워협회 뉴욕 부룩클린 본부는 한국에 인쇄공장을 설립하여 한국어로 번역된 문서를 한국에서 직접 인쇄할 수 있게 했고, 일본어, 중국어 문서도 인쇄를 했다.

1913년에는 큰 책, 소책자, 정기간행물 등이 모두 9,829 부나 출판, 배포되었다. 1933년 '여호와의 증인 천국정부만이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며, 구원이다'라고 여호와의 증인들이 전파하자 조선총독부에서는 협회 발행의 모든 서적을 압수하여 소각해 버렸다.

1923년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조선총독부는 궁성오배와 신사참배를 예외 없이 여호와의 증인들에게도 강요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거부하여 전원 체포되었고 징역을 살면서 많은 신도들이 형기를 마감하기도 전에 옥사하고 출판물 등은 발행 금지되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형무소에서 풀려난 여호와의 증인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재건사업에 착수했고, 1948년 미국 본부와의 연락이 재개되어 문서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48년 8월 도날드 엘 스틸 부부가 내한하여 포교하다가 1950년 한국동란이 일어나 피난민들과 함께 남하 전도에 힘쓴 결과 1951년에는 대전, 군산, 전주, 대구, 부산 등지에도 여호와의 증인 회중이 조직되었고, 1953년에는 전임전도사 숫자가 407명이나 되었다. 이후에 여호와의 증인은 계속 증가하면서 성장하였고, 현재 본부로는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양기리에 대지를 확보하여 두고 있다.

 

2)여호와의 증인의 주장들

(1)성경관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경을 가장 탁월한 책으로 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첫째, 매우 오래된 책이고, 둘째, 2200여 년 전부터 다른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셋째, 성서발행 부수를 따라 잡을 수 있는 책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성경의 유일한 권위를 인정하고 있으나 사실상 성경을 단순한 그들의 교리서들의 보조자료 정도로 취급함으로 성경관에 있어서 기독교의 정통신앙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들 집단만이 성경의 진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전하고 사수할 수 있다고 주하고 있다.

“다른 어떠한 신학 체계도 성경의 모든 말씀을 본질적으로 조화시키는 주장을 하거나 혹 그것을 시도해 본 적이 없지만, 우리들은 바로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 그리고 파수대는 하나님께서 땅 위에 있는 인간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흘려 내보내주시기 위해 마련하신 유일한 집합적 통로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들은 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그 선전부와 함께 보이지 않게 교통하시는 성령의 보증을 받는다.”

 

이러한 주장은 자기들만이 성경의 진리를 독점한 것처럼 인식하는 이단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더군다나 성령의 독자적인 진리증거를 독점화 하는 주장도 이단들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이들이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는 이유도 그들의 주장과 신조 등을 확증하기 위한 자료로 성경을 사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그들의 간행물이나 신조문서를 성경보다 더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 삼위일체관

여호와의 증인은 여호와의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였으며, 사탄이라고 불리는 루시퍼가 하나님께 대적하여 점차적으로 경제와 정치와 종교적인 조직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유일한 대표자들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는 아리안적인 의미에서 여호와의 아들이므로 피조물임을 주장하였고, 때로는 천사장 미카엘과 동일시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세례 받은 이후에 오직 메시야가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성령은 거의 언급하지 아니하며, 삼위일체교리는 그들에게 존재하지 아니한다.

 

“예수님 자신이나 혹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믿지 않았다. 분명한 사실은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와 그 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진리를 배우지 못하게 하려는 사단의 궤계 중 하나이다”는 것이다.

 

이들이 3위 1체 교리를 부인하는 이유로서는 이 교리를 바벨론의 고대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인도나 애굽의 3신론의 영향을 받아 초대교회가 만들어 낸 교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그들은 여호와 이외에는 다른 신이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은 여호와 하나님과 동격적인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

 

(3) 예수 그리스도관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 중 신성을 부인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예수는 인간의 몸을 입은 하나님이 아니라 단순한 피조물로 보고 있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 된 인간으로서, 우주에서 두 번째로 위대한 인물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은 함께 초월적인 권위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예수는 하나의 신이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는 아니다.” 라고 하였으며, 또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었다면 예수님이 죽어 있는 그 시간 동안에는 하나님도 무덤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고 단언하였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하지 아니하며, 예수는 천사장 미카엘에 불과했고 루시퍼와는 형제지간으로 루시퍼는 하나님에게 줄곧 불순종한 반면 예수는 순종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은 그가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존재로 돌아갔기 때문에 더 이상 육체를 갖지 아니한 존재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영적인 부활만 믿고 있으며, 결국 이러한 입장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1914년 지상에 영적으로 임했다는 그들의 주장에 부합되는 원리를 이끌어 내는데 기여하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세 가지 존재시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들은 ‘인간이 되기 전의 상태’, ‘인간이 된 후의 상태’, 그리고 ‘인간 후의 상태’이다.

인간이 되기 전의 상태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시기로부터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때까지를 의미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그리스도는 로고스 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동등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피조물에 대하여 아버지의 대변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는 존재론적으로 하나님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음을 나타낸다.

인간이 된 후의 그리스도는 그가 하늘에서 누렸던 모든 영광과 지위를 포기하고 세상에 오셨음을 의미한다. 아버지가 그리스도를 세 상에 보내실 때에 아들의 삶 전체를 정자로 만들어 처녀 마리아의 자궁 속에 주입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세상에 왔다. 그는 마리아로부터 완전한 인간성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한 본질은 받지 못했으며, 생명과 인격성과 삶의 패턴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정통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성육신한 것이 아니라 천상에서의 인간이 지상에서의 인간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극구 부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간 후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그의 사후 상태를 의미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하나님이 살리신 것이 아니라 불사의 영적 아들이었기에 부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활은 그의 생전에 가졌던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영적 아들로서의 부활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육체에 관해서는 천년왕국시기에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숨겨 놓았다고 주장한다. 부활 후에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제자들에게 보여 준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는 우주의 통치권을 가진 총리가 되어 이전의 자신의 모습인 천사장 미카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리스도를 천사와 사람 그리고 사람과 천사 사이를 오가는 존재로서만 인식하고 신성을 배제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4) 성령관

여호와의 증인은 그리스도의 신성만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격성과 신성을 모두 부인한다. 그들은 성령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의 종들을 감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능동적인 세력이라고 주장하였다. 성령을 하나의 세력만으로 인식하기 위해 성령의 인격성을 나타내는 성경구절들과 중요한 단어들을 고의로 왜곡되게 번역하기도하였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14:26절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는 말씀 중에 보혜사에 해당하는 단어를 인격을 나타내는 단어인 'whom'(누구)이라는 인칭 대명사 대신 사물을 나타내는 'which'(그것)를 사용한다. 이러한 실례는 그들이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는 [새세계번역성경]에 나타난다. 성령을 비인격적이고 신성과 같은 속성이 없는 단순한 능력으로만 나타냄은 성령의 독립적인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셈이 된다.

 

(5) 구원관

 여호와의 증인의 구원의 특성은 행위구원의 강조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구속원리를 정면으로 맞서는 주장으로써 그들의 문헌에 명기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근거로 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자기 자신을 바치는데, 이러한 헌신으로 인해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창설자 럿셀 자신도 사람들이 스스로 순종과 불순종의 여부에 따라 영생에 적합한 존재로 가늠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또한 ‘그리스도의 배상적 속죄설’을 주장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인류의 속죄의 원리는 그리스도의 피 흘린 속죄의 대가보다는 하나님의 자비와 넘치는 사랑에 의한 것으로 공의보다는 사랑을 더 강하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그리스도의 속죄의 만족설을 부인하는 결론을 가져오게 되었다.

 

(6) 종말관

여호와의 증인의 종말관은 지옥을 부인하는 등 가장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지옥을 부인하는 이유로는 지옥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반하여 모순되며, 그리고 비성서적이요 비이성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들의 구원의 대상을 ‘선택된 자들’(기름 부은 자)과 ‘다른 양들’ 또는 요나답스(Jonadabs)등 두 부류로 나눈다. 이들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로 무로 돌아가며 죽어서 아주 없어져 버린다. 그리고 이들에게 지옥이나 영원한 형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택된 자들’은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144,000명이요, 이들 외에 호별 방문하는 신자들을 ‘다른 양’이라 부르며 이들은 144,000명과는 달리 구원 얻기 위해 스스로 열심히 일을 해야 하며, 그것 때문에 이들의 전도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또 이들은 ‘아마겟돈 전쟁’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이 전쟁은 전 세계적인 것이며, 핵전쟁과 같은 참사를 가져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지상에서의 전쟁 외에 천국에서는 하나님과 사탄과의 사이에 대 전쟁이 발생하며, 이 전쟁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대항할 필요가 없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싸워 주신다는 것이다. 이 전쟁의 결과는 전 기독교인이 몰살되고 모든 국가들이 파괴된다. 그리고 20억 이상의 인구가 죽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그 증인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며, 오직 참된 여호와의 증인들만이 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이 전쟁 이후에는 천년왕국이 여호와의 증인들을 위해 예비 되어 있고, 이 기간에 선택된 자들인 144,000명은 바로 천국에서 통치할 것이며, 다른 양들에게는 영생에 들어가기 위한 대심판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며, 이 시기를 잘 넘긴 자들에게는 에덴과 같은 땅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마지막 시대를 예언하여 종말의식을 더욱 북돋우고 있다. 이들은 1914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미 하나님의 왕국이 시작되었으며, 144,000명은 이미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1975년은 인류 역사상 제 7번째의 1000년이 끝나는 해로 아마겟돈의 해로 간주한다. 그리고 2075년을 종말로 여기며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 새 땅에서 영생을 누리든지 아니면 멸망케 될 판결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7) 지상낙원

여호와의 증인들은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라는 그들의 교리책에 잘 나타나 있다. 요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우리가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추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우리에게 꼭 알 맞는 창조물입니다. 첫 인간 부부가 하나님께 불순중하여 영원히 살기에 합당하지 않음을 증명하였지만 하나님의 원래 목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사55:11; 시37:29). 정상적인 사람이 살기를 원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곳, 바로 이 땅입니다. 사람은 땅을 위하여, 땅은 사람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창2:9,15). 성서는 이렇게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사104:5) 땅이 영원히 존속하도록 만들어 졌다면 사람도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 욕망을 없게 하실 리 없음을 분명합니다(요한 1서 4:8).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려고 하는 낙원에는 행복할 만한 이유만이 있을 것입니다. 이 땅은 먹기 좋은 것들을 풍부하게 생산할 것입니다. 이 땅은 먹기 좋은 것들을 풍부하게 생산할 것입니다. 다시 굶주리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시72:16). 전쟁, 범죄, 폭력, 그리고 증오와 이기심까지도 완전히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시 48:8,9).”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마치 그들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땅에는 앞으로 모든 것이 잘되고 풍요롭고, 범죄가 없는 곳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분명히 이 땅은 그들의 주장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땅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땅도 인간의 범죄로 인해 오염되고, 모든 만물도 다 부패하였다. 그리고 공관복음서와 요한 계시록에 분명히 시대의 마지막과 이 땅에 임할 심판에 대해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인간이 최종적으로 거할 장소를 현재의 지구로만 보는 것은 최후의 심판과 영생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현세론자들의 이론과 같다.

 

(8) 영혼

여호와의 증인들은 영혼의 사멸을 주장한다. 이는 제 8장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제하에서 취급하고 있다.

 

“영혼은 죽는다: 사람과 동물 사이의 차이는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고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20과 30절은 하나님께서 물에서 살 '산 영혼'을 창조하였으며, 동물들을 '영혼으로서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 줍니다..... 동물들도 영혼이므로 동물들이 죽을 때 그들의 영혼도 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영혼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곧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도 죽습니다. 성서는 거듭 거듭 이 진리를 알려 줍니다. ....영은 우리의 생명력입니다. 그러나 죽음과 함께 생명력은 온 몸의 세포를 떠나고 그 몸은 썩기를 시작합니다.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께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사람의 영혼이 육체의 죽음과 같이 범죄로 인해 죽는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성경구절 에스겔 18:4,20절의 내용을 인용한다. 즉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는 구절을 인용한다. 그러나 이때의 내용은 영혼 자체가 죽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범죄한 인간의 생명이 죽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들이 사람의 혼을 동물의 혼과 동일시하는 것은 영생관념이 인체공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동물의 혼은 각혼이라 하여 그 동물이 죽으면 곧 함께 사라지지만 인간의 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것이고 사후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9) 지옥

여호와의 증인들은 전능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이 지옥과 같은 고통의 장소를 창조하실 리 없다고 믿는다. 사랑의 하나님이 지옥 같은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이 이치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불에 사르는 일이 하나님의 마음에 생각지도 않은 일이라면 그 분이 자기를 섬기지 않는 사람들을 보내기 위하여 불타는 지옥을 창조하셨다는 것이 이치적으로 들립니까? 성서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합니다.(요한1서 4:8) 사랑의 하나님이 영원히 고초를 당하게 할 것입니까? 스올 혹은 하데스는 죽은 자들이 희망을 가지고 쉬는 곳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착한 가람과 나쁜 사람이 모두 그 곳에 가서 거기서 부활을 기다립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들은 지옥을 철저히 상징적으로만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지옥 같은 것을 마련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0:10절에 나오는 '불 못' 등도 지옥을 나타내는 말로 인식하지 아니하며 ‘스올’이나 ‘하데스’ 같은 곳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죽은 자들이 희망을 가지고 쉬는 곳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에 맞도록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

 

(10) 부활

여호와의 증인들은 부활에 대한 견해도 자신들의 주장대로 이해한다. 그들은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다 같이 부활한다는 것을 믿고 있으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난 후에 고의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부활하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악인이 부활하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을 지상에서 배울 기회를 갖게 하기 위해서 부활시킨다는 것이다. 그들의 부활교리가 얼마나 아전인수 격인가는 다음과 같은 그들의 주장에서 알 수 있다.

 

“누구나 부활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서는 예수를 판 가룟 유다는 부활을 받지 못할 것을 알려줍니다. 유다는 고의적으로 악을 행함으로 '멸망의 자식'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요17:12)...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성령을 거슬리는 죄를 짓는 사람들을 부활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이어 14만 4천 명이 다음으로 부활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첫째 부활’, 혹은 ‘이른 부활’을 받게 됩니다. 이 부활을 언제 있을 것입니까? 성서는 '그리스도의 임재'라고 알려줍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는 1914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로 갈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첫째 부활의 날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은 누구나 마지막 때에 되어지는 것이다. 악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고 선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것이다. 악하다고 해서 부활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14만 4천명이라는 숫자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우를 범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상징적인 숫자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1914년을 부활의 날로 잡아 놓고 이때부터 부활이 시작되었다고 하며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부활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성경적인 근거로 디모데후서 4장 8절을 들고 있다. 그러나 디모데후서 4장 8절은 이미 부활이 시작되었음을 시사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부활은 미래적인 사건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3) 비 판

여호와의 증인은 많은 기독교의 교리를 부인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기독교에 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는 그들이 선포한 예수의 재림날짜의 불발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874년에 재림했다고 발표했다가 1914년으로 변경하는 소동까지 벌였다. 그렇게 되자 이들은 육체적인 재림을 부인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은 영적인 재림이라 하였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요한계시록 1:7절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왜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의 말씀에 상반되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허구성은 창시자에 의하여 더욱 드러난다. 럿셀이 고소당했을 때 그는 증언대에서 거짓말이 탄로 났는데 신약성경의 원어인 희랍어를 아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였으며, 몇 자 읽어 보라고 했을 때 거짓말을 했다고 실토하였다. 또 그는 안수 받은 목사라고 했다가 그 후에 그런 사실이 없음을 시인하기도 하였다.

 

이제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집중적으로 검토해 보도록 하자

(1) 성경해석의 오류

여호와의 증인들이 근본적으로 범하고 있는 오류는 그들의 성경해석 문제이다. 그들도 성경의 궁극적인 원리를 주장하지만 그들의 신조를 확증하기 위한 참조문헌으로 성경을 사용하고 있으며, 결국은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예를 들면 그들이 사용하는 [새세계 성경번역]에는 요한복음 1:1절에 나타나는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구절을 이 말씀은 하나의 신(a god)이셨다'라고 번역하였다. 그들은 어떤 번역판은 '그 말씀(The Logos)은 신적이었다' 라고 번역하였고, 또 다른 번역판은 '그리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라고 번역하였으며, 어떤 번역판은 '그리고 그 말씀이 하나의 신(a god)이었다'라고 번역하였다.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에 대해 요한이 기록한 내용을 충분할 정도로 검토해 왔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검토할 시기가 아니라 이 여러 가지 번역판들 중에 어떤 것이 옮은 것인지를 결정할 입장에 처해 있다. 그리고 그 결정은 바로 우리의 구원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입장은 터무니없게도 그리스도를 피조물의 위치로 전락시키면서 '하나의 신(a god)'으로 해석하지만 헬라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해석이 얼마나 잘못된 해석임을 쉽게 간파하게 된다. 이들의 주장이 지닌 오류가 보다 더 확증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알기 위해 헬라의 쓰임새를 비교해 보도록 하자. 그들은 요한복음 1:1절에 데오스(하나님, 헬라어)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상반절의 데오스는 정관사를 동반하고 하반절의 데오스는 정관사를 동반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관사를 동반하는 경우에는 데오스가 여호와를 의미하는 하나님이란 뜻이지만 무관사일 때는 하나의 신(a god)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구절은 그 말씀은 하나의 신이셨다 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1:18절까지 보면 데오스가 정관사 없이 사용된 예가 무려 6회나 나오며 이들은 다 여호와 하나님이란 의미가 너무나 자명하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는 번역에 따르면, 6절의 상반부의 경우 한 신(a god)으로 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낳으니..라고 번역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12절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의 신의 자녀'로 해석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하필이면 1절의 경우에만 데오스라는 단어를 하나의 '신'으로 번역하려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우며, 너무나 자신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성경을 왜곡되게 번역하고 인용하고 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또 그들이 인간 사후의 영혼의 존재를 거부할 때 사용되는 용어인 ‘네페쉬’라는 히브리어도 요용하고 있다. 그들이 영혼의 사멸을 주장한 에스겔 18장과 여호수아서의 본문에서의 네페쉬는 일반적인 '사람'을 뜻한다. 특별히 여호수아서의 본문에서 나타나는 네페쉬는 여호수아가 남부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가나안 원주민들의 성읍과 왕을 칼로 치는 것에 대한 묘사인데 이는 본문에서 분명히 사람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날에 여호수아가... 칼날로...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한 사람(네페쉬)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10:28-29)라고 번역함이 옳은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할 뿐이며 언제라도 그들의 입장에 따라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2) 삼위일체

 여호와의 증인들이 교리적으로 크게 범하고 있는 오류는 무엇보다도 삼위일체의 교리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삼위일체를 믿지 아니하는 결정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초대교인들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믿지 아니했다’고 하며, ‘삼위일체의 교리는 사탄의 궤계’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들은 ‘삼위일체의 교리는 주전 3세기 초에 고대 바벨론의 이교도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적인 유산이다’고 주장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단 한 분의 하나님이시며 영원 전부터 존재하며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창조자’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실상 성경에 성자가 성부와 일체된다고 가르치는 곳은 하나도 없으며 바로 그 반대로 가르친다. 그것은 성자가 성부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그는 성부 보다 낮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성부 보다 낮은 지위에 계셨기 때문에 그가 성부 하나님과 동등 될 욕망이 없었다(빌2:6)고 말해준다. 또 그가 이 세상에 계씨는 동안에 자기의 뜻대로 하실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고 또 그의 아버지는 착하시기만 하시고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요14:48)고 말씀하심으로 계속하여 성부의 우월하심을 주의하게 하셨다. 예수님이 승천한지 오랜 후에 바울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시요 성자는 영원히 그의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에게 복속될 것이다(고전11:3,15:28)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반대된다. 성부나 성자는 두 개의 다른 존재나 하나님이 아니라 본질과 신령한 요소가 하나라고 가르치며 아들과 아버지는 일체이심을 가르친다. 분명히 성경은 여호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며, 그것은 삼 인격적이고 본질은 하나의 영적인 존재이심을 천명한다(마 3:13-17, 28:19; 고후 13:13).

 

(3) 그리스도의 피조성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피조물로 보지만 이것은 성경의 주장에 어긋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조성을 내세우기 위해 요한복음 14:28절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 온다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다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와 요한계시록 3:14절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를 인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판이하다. 우선 요한복음 14장 28절에 '아버지가 나보다 크심이니라' 라는 의미는 그들의 주장처럼 그리스도가 하나님 보다 낮은 존재이며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 복종하는 의미로써 자신의 신분을 낮추셨던 표현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계시록 3장 14절의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라는 표현도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산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도리어 그리스도가 창조사역의 주관이시며 창시자란 의미로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하나이신 하나님 자신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요1:1; 골 1:15-19, 2:9; 요일 5:7,8).

 

(4) 부활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부활을 부인한다. 럿셀은 사람인 예수는 영원히 죽으셨다고 하였으며, 주님의 육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 주님의 육체는.... 초자연적으로 무덤에서 옮겨졌으니 그 이유는 이러하다. 즉 그의 시체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의 제자들의 신앙에 제거할 수 없는 장애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썩었거나 분해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행2:27,31). 그것이 변하여 가스가 되었는지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훌륭하게 기념하는 기념물로 어디 남아 있는지... 이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없다. 또 럿셀은 주장하기를 기독교 신자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주님의 영광스러운 영체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요셉의 무덤에 묻혔던 그 몸과 꼭 같고 또 저희가 주님을 영광 가운데 볼 때에 십자가에서 찢긴 상처를 보아서 그를 알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니 이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반드시 육체적인 부활이며 그것이 없다면 기독교의 복음의 전파가 헛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에서의 부활은 불멸하고 썩지 아니하며 영광스럽고 권세가 있고 신령할 뿐 아니라 초자연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부활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의 몸과 동일한 모습으로 부활하셨고 제자들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육체였다. 분명히 '못 자국'과 '창 자국'이 있었다.

그들이 육체의 부활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근거로 주장하는 성경구절은 베드로전서 3:18절 “육체로는 죽이심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으니이다.” 그러나 이 말은 육체는 죽었고 영은 살았다는 자구적인 의미가 아니라, 육체적으로는 인간의 몸을 입은 자로서 죽임을 당했으나 영에 의하여 다시 사셨다는 의미이다. 즉 성령이 죽은 자들을 일으키는 일을 하였듯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는 표현이 아니라 그의 영과 육이 영에 의하여 다시 사셨음을 암시하고 있다. 사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그를 영으로 본 줄 알고는 자신이 영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 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쁨으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눅 24:39-43).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육체적으로 부활하셨고 또 그대로 승천하셨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는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했으며, 계시록에서 요한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혔던 그 분과 동일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육안으로 보리라고 강조했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에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계1:7)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는 행위는 그의 구속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행위이며, 복음 자체를 부인하는 이단들의 대표적인 특징들이다. 초대교회에서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들을 통해 동일한 경험을 한 바울은 이러한 점을 잘 간파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아니했다면 저희가 전하는 것도 확실히 헛것이요 저희의 믿음도 헛되다고 했으며, 그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전 15:12-19).

 

(5) 행위구원

 여호와의 증인들은 행위구원을 강조한다. 그들은 인간의 노력이 없는 그리스도의 구원은 영생의 기초로 불합당하다고 주장한다. 럿셀은 분명히 인간이 자의에 의한 순종과 불순종에 따라서 영생을 얻고 못 얻고가 판가름 난다고 주장한다.

 

“이 세상 신에 의하여 어떤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어두워졌으며 어떤 사람들은 아주 어두워져 버렸다. 그들은 사망과 동시에 어두움에서 회복되어서 자신으로 하여금 순종하거나 불순종함으로 영생을 받을 가치가 있게 하거나 혹은 없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성숙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살만한 가치가 없게 하는 자들은 다시 죽게 될 것이다. 곧 둘째 사망이다 ..... 개인이 자신하여 배교한 결과로 오는 사망은 종국이 되니 이 죄는 결코 속죄함을 받지 못할 것이니 그 벌 제 2차 사망은 영원한데 (영원히 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사망이다) 이 사망은 부활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고 아담이 실패한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일생의 삶을 통해 흠 없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말하는 ‘흠 없이’란 그리스도의 속죄의 의미를 믿고 받아들임으로써가 죄가 없어져 무흠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자력으로 무흠, 완전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의 이러한 주장과는 반대로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라고 했으며,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요 3:8)라고 했다. 사람이 스스로 아무리 의로워지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롬 3:23)고 했으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의인이 없으며, 하나도 없다고 선포하므로 성경은 분명히 흠 없는 존재가 스스로 없음을 밝히고, 인간의 허물인 죄악은 원초적으로 타인에 의해 씻기워질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4) 결론

의의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 여호와의 증인은 정통 기독교가 믿고 있는 중요한 교리들을 신론에서부터 구원론과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을 굴절시키거나 거부함으로 그리스도의 대적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련한 책자와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호별 방문을 통해 특히 믿는 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들의 거짓 가르침은 성경 말씀을 오용하거나 왜곡시킨 데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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