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담

들러리 후보 창소부가 시장님 됐다.

작성자
신영삼
작성일
2020-10-28 14:33
조회
1538

현직 시장 어땠길래, 들러리 후보 청소부가 시장님 됐다






재선을 노리는 현직 시장과 시청 청소부가 선거에서 맞붙었다. 청소부는 시장의 무난한 재선을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진 후보였다. 그런데 결과는 청소부의 승리. 이 코미디 영화 같은 일은 러시아연방의 서부 코스트로마주 작은 마을 포발리키노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다.

24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포발리키노 시장 자리에 오른 마리나 우드곳스카야(35) 신임 시장은 한 달 전만 해도 행정청사에서 청소부로 일했다. 그는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남편과 두 명의 자녀와 함께 살며 4년째 시청 청소부로 일해왔다. 집에서 닭과 오리 등을 기르는 그는 인터뷰에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며 “나는 농사짓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런 그가 하루 아침에 시청 청소부에서 시장으로 광속 승진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전임 시장 니콜라이 록테프(58) 덕분이었다. 재선을 노리던 록테프 시장은 선거를 앞두고 자신과 겨룰 상대 후보가 필요했다. NYT는 “집권 통합러시아당이 사실상 항상 승리하고 선거가 조작되곤 하는 러시아에서는 민주주의적 선택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러시아와 다른 구소련 국가들에서는 종종 이같이 선거에서 패자 역할을 할 허수아비 후보들이 세워지곤 한다고 NYT는 전했다.

록테프 시장은 주민 300명이 채 안 되는 마을 곳곳을 다니며 상대 후보를 물색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다가 우드곳스카야를 발견했다. 록테프 시장의 설득으로 우드곳스카야는 시장 선거에 입후보했다. 록테프 시장과 우드곳스카야는 모두 선거 유세는커녕 선거 광고판, 선거 전단도 없이 조용하게 선거 운동 기간을 흘려보냈다.






마리나 우드곳스카야 러시아 포발리키노 신임 시장. /트위터

마리나 우드곳스카야 러시아 포발리키노 신임 시장. /트위터
그런데 선거 결과가 나오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허수아비’ 후보로 여겨졌던 우드곳스카야가 62%의 득표율로 록테프 시장을 누르고 시장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록테프 시장의 득표율은 34%에 그쳤다. 앞서 선거관리위원의 한 위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록테프 시장은 주민 누구도 우드곳스카야에게 표를 주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현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그만 됐다고 생각해 우드곳스카야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우드곳스카야는 당선 소식이 알려진 직후 크게 놀라워하며 “나는 준비되지 않은 가짜 후보”라며 “사람들이 실제로 내게 투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록테프 시장은 “사람들이 그를 뽑았다”며 패배를 인정했지만, NYT의 취재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다. 그녀의 당선 소식은 러시아 전역에서 화제가 됐다.

우드곳스카야 신임 시장의 첫번째 업무는 무엇일까. 우드곳스카야 시장은 주민들이 오랫동안 요구해 온 가로등을 마을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처음 선거 결과가 나왔을 때 “걱정되고 혼란스러웠다”고 했던 우드곳스카야 시장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선거에선 아무것도 예상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 이옥진 기자)